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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Nov 01. 2024

아들아, 우리는 왜 이러냐?

Copilot 이 그려놓은 그림



벌써 한 시간째다.

그 좋아하는 드라마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ㅡ당신 설거지 좀 해줘.

ㅡ조오오오오옿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안해(이렇게 쓴다)


ㅡ뭐야! 또 전화야!


그릇 하나하나 빡빡 씻어서 건조대에 엎어놓고 행주까지 깨끗하게 빨아서 널어놓는다. 화타식 숭늉차를 끓여서 물병에 따라놓는 걸로 설거지를  마친다.


방문을 열어보니 침대에 드러누워 목하 통화 중이시다.


ㅡ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 300g을 넣고 볶아. 적당히 볶아지면 저번에 준 묵은 김치 반포기를 고기 위에 덮어. 그리고 양념을 넣는데.....


딸에게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김치찌개가 끓고 나면 손주들 이야기를 할 거고,

요즘 물가가 비싸다느니, 커피 내려서 마시는 이야기, 집안 청소, 시장에 다녀온 이야기 등....,,  끝도 없이 이어질 거다. 내가 봐서는 할 필요도 없고, 해봐야 쓸모도 없는 하찮은 이야기를 모녀간에 저렇게 쏟아붓고 있다. 재밌을까.



나는, 할 게 없는 나는 창 너머로 짙어지는 어둠이나 바라보다가 시들해진다.


저 어둠 너머로는 뭐가 있을까.


혼잣말이나 내뱉으며 우두커니 서 있다. 며칠을 혼자 있어도 조금도 심심하지 않은데, 아내가 딸내미와 시시덕거리고 있다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워질까. 납득할 수가 없다.


ㅡ아들, 뭐 하냐?

ㅡ일하고 있는데요.

ㅡ아, EBS 교재 집필?

ㅡ아뇨. 교과서 작업요.

ㅡ그래? 어서 해라.

ㅡ네.


아들에게 전화해 봤지만 이게 전부다. 왜 우리는 할 말이 없는가. 아내와 딸은 하루에 두 번씩, 세 번씩 통화해도 할 말이 많은데, 아들과는 어쩌다 한 번 전화하는데도 할 말이 없는 걸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생긴 물리적 거리는 그렇지 않아도 데면데면했던 우리 사이를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껄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아들은 그 흔한 사춘기도 별 탈 없이 넘겼고, 나름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들어갔다. 입학등록금만 지원해 주었고 과외, 학원 강사를 하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때는 잘했다고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문제였다.


결혼할 때까지는 자식과 부모가 같이 살아야 한다. 용돈을 놓고 힘겨루기도 해보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걸로 큰소리도 나면서 자식과 부모가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때로는 부모와 자식으로, 어느 때는 친구로 겯고틀며 부대껴봐야 한다.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아들은 서울 사람이 되었고, 제 몸과 마음의 근본을 이루어 준

전주는 즐기는 여행지가 되어 갔다. 전화기를 넘어야 하는 대화가 제대로 익을 리 만무하며, 얼굴 보고 하지 않는 이야기에 깊이가 담기기나 하겠는가.


나와 아들이 필요한 말만 주고받을 때, 딸과 아내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부럽다.


아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 걸 알지만,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건 부인할 수 없다.


ㅡ아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마. 아들은 며느리 하고 잘 지내는 게 최고야. 다 큰 아들  앞에 나서는  좋지 않아. 아들이 나에게로 온다면 받아들여도, 내가 먼저 아들에게 가면 그게 간섭이고 억압이야. 내가 겪어보니 그래.


1년 전에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가 하는 말이다.


ㅡ며느리 보기 전에 아들하고 많이 놀아.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결혼하면 더 이상 아비노릇하려고 들지 말고.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ㅡ그럼.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결혼하면 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남편인 거지. 각자의 삶을 살아야지.


이건 아내와도 여러 번 다짐했던 내용이다. 친구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다.



부자간父子間은  이래저래 참 어렵다. 거리를 가져야 하고, 거리가 없기도 해야 하는. 그래도 피붙이이기에 온 마음이 다 쏠리는 아들. 그윽이 바라보는 아버지.

누가 이심전심이라고 했을까.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싫다. 적어도 아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나는 이구전구以口傳口가 되고 싶고, 이신전신以身傳身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남자들이 지니고 있는 Y염색체는 부자간의 간격을 은근히 벌려 놓고 있는 걸까. 그리고는 이심전심이라고 몰아가는 걸까.


오늘도 아들과 나의 전화선은 얼어붙어 있다. 재밌는 건 아내도 똑같다는 것이다. 나보다는 통화가 길어지기는 하지만 5분을 넘기지는 못한다.

그런가 보다. Y염색체가 문제다. XㅡY도 그런데 YㅡY는 당연하지 않을까.


ㅡ당신은 왜 나한테 사랑한다고 안 해?

ㅡ이 사람이.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마음이 중요한 거지.


이게 남자라면, 아들과 나의 통화도 그런 거겠지. 이심전심. 전화선이 잠들어 있어도 마음으로 통하고 있는 거겠지.


창밖으로 어둠은 두꺼워지고 있고, 아내와 딸은 통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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