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출제 위원장은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의 문항을 고르게 출제했다”라고 말했다.
출제하는 입장에서는 변별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능 국어 시험은 총 45문항이 출제되는데 35문항은 2점 문항, 10문항은 3점 문항이다. 바로 이 3점 문항이 변별력을 위해 출제되는 문항이다. 이 3점 문항 중에서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초고난도의 문항을 출제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항을 소위 ‘킬러문항’으로 부른다. 뭔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학생들을 끌어들이려는 학원가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카르텔”을 말해도 수능 시험은 변별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항을 출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출제 위원장의 발표와 다르게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런 문제가 출제되었다. 바로 독서 영역의 8번(오답률 81.5%), 7번(오답률 72.7%), 16번(69.4%) 문항이다. 7~80% 학생들이 틀린 문제가 초고난도 문항이 아닐까?
ㅡ한국은행에 근무하는 경제학 박사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
ㅡ만유인력을 전공한 물리학 박사도 풀지 못하는 문제
ㅡ국어 시험이 아니라 과학시험
시험이 끝나고 나면 꼭 등장하는 세평이다. 그런데 올해는 별 말이 없다. 언론에서 쉬웠다고 말하기 때문일까.
수능 시험의 본래 이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즉,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국어 영역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대학에서 교과서를 읽었을 때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를 평가하려는 것이 수능시험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출제하기 위한 지문은 다양한 내용을 담게 된다. 독서 영역의 경우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과 관련된 지문을 이용하여 글의 독해 능력을, 문학 영역은 현대시, 고전시가, 현대소설, 고대소설 작품을 이용하여 문학 감상능력을 평가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내용이 지문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지문이 경제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도 경제학의 지식을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학의 어떤 내용을 설명하는 지문을 제시하고 읽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 박사는 이 문제를 국어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학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경제는 쥐뿔도 모르고 뒷주머니에 시집이나 꼽고 다니던 국어 교사들도 지문을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접근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다 알다시피 수능시험은 특이하게도 EBS에서 2월에 출판하여 강의하는 수능특강(독서, 문학,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4권과 약 6월 경에 출판하여 강의하는 수능완성(독서+문학+언어와 매체, 독서+문학+화법과 작문) 2권에서 출제한다. 물론 그대로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 실려 있는 지문을 변형하기도 하고 새로운 지문을 제시하여 출제한다. 그러나 출제 문항의 유형은 항상 반복되어 출제한다.
이번 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항은 8번 문항이다. 지문의 길이가 길고 담겨 있는 정보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문항은 80%의 학생이 틀렸다. 시험 문제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2021학년도(2020년 시행)부터 매년 수능 시험에 똑같은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물론 그 이전에도 출제되었다.) 수능시험을 응시하려는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대비했어야 한다. 매년 같은 방법으로 정답을 찾아가는 문제가 출제되는데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틀렸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출제자? 교사? 학생?
사실 유형에 관해 공부한 학생이라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 허망하게 답을 찾았을 것이다. 지문이 없어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거의 정형화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문제 푸는 요령만 익히는 공부를 한 학생들이 정답을 찾는 방법을 제시해 보겠다. 나도 40년 가가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뒤에 2021학년도 ~ 2025학년도까지 문제를 제시해 놓았으니 한 번 비교해 보면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지문에서 제시한 사람들의 견해나 주장을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지를 묻고 있는 정형화된 문항이다. 풀이방법도 정형화되어 있다. 재밌는 것은 출제자들이 선택지에 제시해 놓은 내용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만 가려내면 되는 것이다.
부정형 문항이므로 다섯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는 틀렸고, 네 개는 맞다는 것이다. 선택지의 내용은 지문과 <보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지문에 나온 사람이 자기의 견해를 바탕으로 <보기>를 해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항의 선택지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지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고 뒷부분은 <보기>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다. 따라서 앞부분이 지문의 내용과 맞는지, 뒷부분은 지문의 내용에 맞게 <보기>의 내용을 해석하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부정형 문항이므로 두 부분이 맞지 않는 선택지가 정답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를 보자.
8. (가), (나)를 이해한 학생이 <보기>에 대해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가), (나)를 이해한 학생 => 선택지의 내용이 지문의 내용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기>에 대해 보인 반응 => 지문의 내용과 일치하는 반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 기>
A 마을은 가난했지만 전통문화와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며 이웃 마을들과 조화롭게 살아왔다. 오래전, 정부는 마을의 경제 발전을 목표로 서양의 생산기술을 도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마을 사람들은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이 발전을 이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했다. 이에 정부는 마을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마을의 역량으로 달성할 수 있는 미래상을 지속해서 홍보했다. 이후 마을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경제적 이권을 두고 이웃 마을들과 경쟁하며 갈등하게 되었다. 격화된 경쟁에서 A 마을은 새로운 기술의 수용만을 우선시했고, 과거에 중시되었던 협력과 나눔의 인생관은 낡은 관념이 되었다. 젊은이들에게 전통문화는 서양 문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문제는 <보기>의 내용을 자세히 확인할 필요가 없다. 선택지에 출제자가 제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① (가)에서 한성순보를 간행한 취지는 서양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데에 있다는 점에서, <보기>에서 정부가 서양의 생산기술 도입으로 변화하게 될 마을을 홍보한 취지와 부합하겠군. (18.5% 학생들이 선택)
앞부분 : 한성순보 간행 취지 => 서양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데 있다.
뒷부분 : 서양의 생산기술 도입으로 변화하게 될 마을을 홍보하는 취지
한성순보 간행 취지와 정부의 홍보 취지는 부합하지 않음. 정답.
너무 쉽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나요?
② (가)에서 개화당의 한 인사의 개화 개념에 내포된 개화의 지향점은 통치 방식의 변화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보기>에서 정부가 서양의 생산기술을 도입하며 내세운 목표와 다르겠군.(28.0% 학생들이 선택)
앞부분 : 개화의 지향점은 통치 방식의 변화
뒷부분 : 서양의 생산기술을 도입한 목표 – 마을의 경제 발전(보기에 명백하게 제시) 박은식의 견해와 다름.
③ (가)에서 박은식은 과학과 구별되는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므로, <보기>에서 젊은이들의 자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는 가치관 정립을 위한 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보겠군.(16.9% 학생들이 선택)
앞부분 : 과학과 구별되는 철학의 중요성 강조
뒷부분 : 자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이유를(보기에서 서양 문화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김) 박은식은 당연히 철학이 부재하여 가치관 정립을 못했다고 볼 것임. 박은식의 견해와 일치함.
④ (나)에서 옌푸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술과 정신적 자질을 강조했으므로, <보기>에서 마을이 기술의 수용만을 중시하면 마을 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보겠군.(25.7% 학생들이 선택)
⑤ (나)에서 장쥔마이는 과학적 방법의 한계를 지적했으므로, <보기>에서 마을이 과거에 중시했던 인생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문제는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겠군.(10.9% 학생들이 선택)
앞부분 : 과학적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뒷부분 :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장쥔마이의 견해와 일치함.
이런 문항을 출제하는 이유는 지문에서 읽은 내용을 다른 사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해 보려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교재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묻기에는 최적의 문제인 것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말하자면 인물의 견해나 주장을 담고 있는 지문에서는 그 인물의 견해나 주장을 다른 사람의 견해나 주장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항상 출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수능 시험에서 매년 출제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수능특강 교재에는 이러한 문제가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나름의 문제풀이 방법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이러한 문제를 보는 순간 풀이 방법이 그냥 몸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아도 발걸음이 자동으로 디뎌지지 않는가.
매년 반복되어 출제되는 문제 유형이고, 이번 문제는 지문의 밀도가 높지 않고 <보기>의 내용이나 선택지가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도 80% 학생들이 못 풀었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학생들이 국어 공부하는 시간을 별로 할애하지 않고, 또 하나 공부하는 방법도 모른 채 무조건 문제만 풀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 선생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불가사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