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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수능 국어 17번 문항

수능 국어의 문제는 무엇일까

by 힘날세상

결국 풀어 봤다. 아니 풀어 볼 수밖에 없었다.


2026학년도 수능 국어 시험 문제가 정답이 없는 것 같다고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수능 국어 시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대부분 국어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 지문의 내용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언론은 무조건 그들의 주장을 퍼 나르고.


수능 국어 시험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렇게 어려운 지문을 제시하는가?

2. 문제를 왜 그렇게 비틀어서 제시하는가?

우리가 흔히 ‘수능’이라고 하는 시험의 정확한 명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즉,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국어 시험은 대학 교재를 읽고 그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인문, 사회, 기술,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문을 작성하여 출제한다. 어떻게 보면 국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 출제되는 이유이다.


국어 시험 문제의 출제자들은 국어과 교수, 국어과 교사들이다. 그들은 앞에서 말한 인문, 사회, 기술, 과학, 예술 영역의 지문을 직접 작성한다. 시험 문제 출제를 염두에 두고 작성하는 것이다. 즉,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 좋게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책과 같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서술 내용을 비틀고, 애매하게 진술하기도 한다. 문제화하기 쉽게 말이다. 즉 문제를 위한 지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시험에는 언제나 변별력이 뒤따른다. 쉬우면 쉽다고 비난받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지탄을 받는다. 쉽게 출제하면 한 문제 틀리면 끝장이라고 비난하고, 어렵게 출제하면 이렇게 어렵게 출제하니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몰아붙인다. 거기에다 ‘입시 카르텔’이라는 무서운 말로 출제자들에게 몽둥이를 들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수험생들은 EBS에서 발행하는 교재로 EBS 방송을 들으며 공부한다. 모든 고3 교실에는 교과서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다 EBS 방송교재로 가르치고 공부한다. 거기에서 연계해서 출제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교재를 보면 수능 국어 시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지문과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이번 17번 문제가 이의가 있다고 제시한 철학과 교수는 학자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지문의 내용을 깊이 파고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지문의 내용이 초고교급으로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 동조하는 어떤 강사는 지문에는 언급도 되어있지 않은 '질적 동일성'이니 '수적 동일성'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면서 교수의 주장에 동조한다.


수능 국어 시험 문제는 오직 지문에 언급된 내용만을 근거로 답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문제를 풀어보자. 지문은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첫 단락만 제시했다.


[14~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 그중 ‘나’를 ‘자아’라고 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17.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보 기>

갑 :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을 : 그렇지 않아.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본래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야. 비록 프로그램은 신체가 없지만 우리 두뇌와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사고 기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거든. 인격의 동일성은 어떤 가정도 두지 않고 이러한 사고 기능의 동일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해.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칸트 이전까지의 견해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갑의 입장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칸트 이전까지의 유력한 견해의 입장에서는 갑의 입장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므로 옳지 않다고 할 것이다.


2019학년도 소위 '오버슈팅'에 관한 경제 지문이 출제되었을 때도 한국은행 박사들도 틀린 문제라고 비난받았는데 그 문제도 지문 내용을 근거로 답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수능 시험에서 3점짜리 문항은 지문 내용을 다른 사례에 적용해 보는 형태인데 지문의 이해도를 판단하는 데는 아주 좋은 문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험의 8번, 12번 문항도 같은 맥락이다.


수능 국어 공부 방법은 자기만의 독해법을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제 풀이 방법(공식이라고 말하고 싶다)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국어 공부의 방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능 시험을 위한 일종의 편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초딩 2,4 학년 손주들에게 글을 읽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연습과 사실에서는 부연 내용과 사례를, 의견에서는 주장과 근거를 찾아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문단의 핵심 문장을 찾고, 그것을 이용하여 전체글을 요약하는 연습을 요구한다.



수능시험에서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과목은 영어나 수학이 아니라 항상 국어였다. 그것은 국어가 어렵게 출제되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국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 2, 4학년 손주들이 공부하는 국어 문제집을 보고 놀랐다. 제목부터 국어가 아니라 국어 독해력, 비문학독해라고 되어 있다. 지문과 문항을 보니 수능시험 문항과 흡사한 유형이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은 국어에는 관심이 없다. 교단에 있을 때 흔히 들었던 말은 국어 때문에 큰일이다는 것이었다.


시험문제를 탓하지 말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


시를 가르치고 문제풀이를 가르쳤던 입장에서 수긍이 가고 찔리는 게 있다. 바로 최승호 시인의 말이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88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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