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장금 Oct 07. 2021

내가 예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몇해전의 일이다.


약속 없던 어느 불금에 폰이 울렸다.

"간단 하게 산책 갈래?"

기대했던 불금을 채워줄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넘 반가운 옆집 언니의 전화였다.

"산책요? 예 ~ 좋아요. 10분 있다 나갈게요"

간단하게 산책이라면 "학교 운동장이나 몇바퀴 걷자"고 하겠구나 생각하고

막 떡지기 시작한 머리는 대충 묶어서 가리고 맨 얼굴에 후질근 츄리닝을 입고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그런데 산책 가자던 언니가 아찔한 하이힐을 또깍거리며 좍~ 빼입고 나오는게 아닌가.

"아니... 산책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언제? 한잔 할래(산책 갈래)? 했지 "

"아 ... 저는 산책하러 가자는 줄 알고...몰골이 이런데..." 가서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올게요"

"아이고 뭘~ 됐어! 넌 기본이 예뻐서 츄리닝도 이뻐. 그냥 가자!!"
'그래, 어차피 언니랑 둘이 한잔하는건데 뭔 상관이야' 그렇게 언니와 함께 택시에 몸을 실어 번화가로 갔다.


근사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어느정도 취기가 오를즈음 언니가 아는 어떤 여자분에게 전화가 왔고,

통화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우리와 합류하길 원한다고 해서 나는 흔쾌히 동의 했다.


잠시 후 한눈에 봐도 넘나 멋지고 매력적인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 언니에게 이야기 엄청 많이 들었어요. 성격 좋고 이뿌시다구..."

그제서야 내 몰골이 기억났다.

"아 ~ 제가 평소엔는 오늘보단 쫌 나은데...오늘은... 어쩌다 보니 몰골이 이렇네요 ㅎㅎㅎ"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녀는 나를 첫눈에 반한듯 너무 너무 맘에 들어했고

우린 오랜 친구처럼, 술기운까지 더해 아주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서 몽롱한 기분으로 어제를 회상했다.

'내가 그녀에게 인사만 잠시 했을 뿐 호감을 살만한 말이나 행동을 전혀 안했는데

그녀가 나를 왜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을까?'


그제서야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평소 멋지고 이쁘다고 언니에게서 과장된 설명을 들은 나를 실제로 보니 하나도 안 멋지고 하나도 안 예뻤기 때문이다. 맨 얼굴에 츄리닝 패션이었지만 꾸며봐야 거기서 거기인 외모 ㅋㅋ.


여자들은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어떤 이유에서든 나보다 이쁘면 적군이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제서야 조금은 부족한 재산, 조금은 부족한 외모, 조금은 알아주지 않는 명예,

조금은 부족한 체력, 조금은 부족한 말솜씨를 지니고 있어야 행복하다는 플라톤의 말이 생각났다.


얼마전 업무 협력차 내 또래의 여자분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예쁘고 날씬한 외모에 성격도 좋고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남편의 직업도 빵빵했다.

호탕한 성격의 그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시원시원 밥도 잘 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흠잡을게 없던 그녀를 사람들은 탐탁해하지 않았다.

나조차 그랬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정이 가지 않았다.

나보다 좀 덜 예쁘든지 나보다 업무 능력이 좀 떨어지든지 나보다 좀 어려운 형편이기라도 했으면

아마 금세 마음을 열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술자리에서 만난 그녀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래 맞어.

소시적엔 남들보다 잘나고 우월한게 무조건 좋은줄 알았는데

불혹을 넘기고 보니 조금은 부족한 지금의 내가 참 좋다.

사람들 속에 더불어 살기엔 조금은 부족한 내가 훨씬 낫다는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핑계만은 결코 아니다.


예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비를 받지 않겠다던 택시 기사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