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리는데 "차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 왜 차비를 안 받아요
"난 딱 하루만 못 생겨 봤음 좋겠어." "뭔 소리냐? 못생긴 게..." "그럼 나머지 날은 맨날 이쁠 거잖아"
나는 평생 동안 예뻤던 적이 없다. 딱히 못 생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저 그런 얼굴로 이쁜 족속?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뭔가 부당한 대우를 덜 받을 것 같아 좋은 성격을 소유하고자 일부러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이쁘면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쁜 애들은 타고난 그대로의 성격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이 본인에게 맞춰주기 때문에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못 생긴데다 까칠한 성격까지 숨기지 않으면 아무도 안쳐다 봐 줄걸 일찍부터 인지했다. 그래서 뾰족함을 숨겨가며 둥글동글 살았다.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사람들은 어느새 "못 생겨도 성격은 참 좋아." "못 생겨도 정말 매력적이야."라는 말을 했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게 그냥 내 성격이자 매력이 되었다.
을쭈 반백년을 살았다. 이젠 그렇게 예뻤던 친구들의 미모도 다 거기서 거기다. 나이가 들면 미모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성격은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젊은 날 이쁘지 않았던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젊음이나 미모에 대한 상실감이 더 컸을것 같아서 ...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ㅎㅎ.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나에게 한눈에 반했다며 데쉬했던 사람도 두어 명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나랑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채로 내게 반했기 때문에 정말 나를 예쁘다고 판단했던 게 확실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젊음 그 자체로 눈부셨던 예쁨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그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선한 인상에 약간 마르고 적당히 샤프했다는 정도. 만약 그 사람이 지금 같은 사무실의 동료라 해도 본인이 함구한다면 모를 정도로 생김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아르바이트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큰 병원의 원무과였다. 나는 정직원들이 퇴근한 원무과에서 간단한 안내 외 병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수동으로 병실에 돌려주고, 주차장에 문제가 생기면 차를 빼 달라는 방송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알바 시간에 임박해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00 병원으로 가주세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후다닥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겨우 시간 맞춰 출근을 하고 정규직 언냐들이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떤 남자분이 조금 전에 택시에서 내려 병원으로 들어온 아가씨를 찾는다고 했다. "얼굴이 동그랗고 긴 머리를 묶은 아가씨인데 혹시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손거울을 봤다. '내가 방금 택시에서 내렸는데 내가 얼굴이 동그랗나? 긴 머리를 한가닥으로 묶은 것도 난데?' 택시 하차시간, 생김새의 설명으로 미루어 나를 설명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고 "저를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왜 그러시죠? 제가 무슨 물건을 두고 내렸나요?" "아니요." 그분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사실은 조금 전에 손님을 태웠던 택시 기사입니다. 그런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 앞에서 기다리다 전화를 했어요. "왜요?" "너무 제 이상형이시라... 다시 한번 꼭 뵙고 싶어서요"
'이건 뭥미? 이뻐서 반했다고? 엥, 그럼 나 일리가 없잖아. 이걸 어쩐다? 뭔가 잘 못 된 거 같은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이 반했다는 사람은 정말로 나였다. 그냥 어이없고 유쾌했다. 요즘 같으면 그런 느닷없는 전화가 무서웠겠지만 그땐 세앙이 그렇게 험하지 않아 그런 반감이 별로 없었다. 기분 좋은 호의라고 해석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아는 택시 기사님들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 뿐이었는데 그분은 택시 기사님 치곤 너무 젊었다. 총각이었고 비슷한 또래였다. 다른 의도는 없고 그냥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했다. 만나던 남친이 있었지만 밥 한 끼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분의 의견도 순순히 접수했다. 그땐 젊은 날의 특권으로 새로운 설렘과 만남을 늘 오픈해 있었다. 남친이 있어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
차가 없던 시절, 택시가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다. 한적한 곳을 드라이브하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고 어느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멋진 식당에서 손 맛이 아주 좋은 사장님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밥을 먹었다. 얌전하고 수줍은 이미지의 기사님이 최애 하던 맛집이었던 것 같다. 식당 사장님은 식사하는 내내 우리를 유심히 보시다가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간 기사님께 "여친이야?"하고 물었다. 기사님은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수줍음이 많았던 그 분과 딱 한 번의 드라이브와 식사를 하고 뜨뜻 미지근하게 헤어졌다. 일찍부터 택시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이유와 취미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남친이 있다는 솔직한 내 말에 깔끔하게 인연을 포기했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따뜻한 호감과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날의 사건은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 과하게 달린 회식 날, 내가 아닌 술이 술을 먹다가 겨우 붙잡고 있던 가느다란 정신줄 하나에 의지해 택시를 탔다. "00 아파트로 가주세요." 그리고 잠깐 잠들었거나, 정신이 없는 채 눈을 감고 있었거나, 여튼 술에 한껏 취한 채 비몽 사몽한 상태로 실려갔다. 아무리 속이 울렁여도 택시에서 오바이트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고 기사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랐다.
집 앞에 도착해서 차비를 계산하려는데 "괜찮습니다. 차비는 됐습니다." 나는 어리바리하게 반쯤 눈을 뜨고 "왜 차비를 안 받아요?"라고 물었다. "잘 지내시죠? 차비는 괜찮습니다" 뭔가 번뜩 스쳤다. '아, 그때 그 기사님이구나. 오 마이 갓. 하필 이런 정신일 때.' 뭔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했지만 잠시였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 분과 그렇게 마주친 충격보다 알콜의 위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음날, 알콜의 후유증으로 전날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회식 후반부의 필름이 다 끊겨서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택시의 기억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어지럽다가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 날의 택시가 기억난다. 확실히 꿈이 아니고 생시였다는 것도 알겠다.
오 ~ 마이 갓. 우째?
"잘 지내시죠? 그때 감사했습니다. 혹시 다시 만나면 밥이나 한 끼 해요. 이번엔 제가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