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를 바꾸려 했을까

17화

by 명형인

엄마가 오빠에게 했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여기에서 매우 한국적인 가족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스포라이트는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 여겼다. 이 사실을 모두가 당연하게 알아주고 기뻐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만약 미국에서 결혼을 했었더라면 부부 중심으로 모든 행사를 양보하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말이야.



익숙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다.

가족들도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함께 생활할 때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확신하건대 엄마는 나에게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을 여자가 아니었다. 감정 표현도 내 앞에선 쏟지 않으셨는데, 어쩌다 터져 나온 게 서러움과 분노, 후회 등이었을 뿐. 나에겐 거대하고 굳센 벽이 느껴지는 어른이었다. 다양한 감정들을 벽 뒤에 잔뜩 구겨놓았을 줄 몰랐던 내 엄마.



그녀가 내 남편 될 사람에게는 속속들이 다 털어놓았다. 원래 화장실에 잠깐 다녀올 때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법이다. 돌아와서 본 엄마의 얼굴은 잘근잘근 씹어 단물이 쏙 빠진 껌 같았다.


왜인지 어두워 보이는 얼굴이길래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아, 어머님께서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너도 좋은 사람이고 어머니도 선한 분이시네.”


“아 그래? 응.”



나는 커피 잔으로 손을 뻗었다. 빨대를 입 가까이 끌어당겨 남아있는 액체를 쭉 들이키려는데 엄마가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화장실이 급했나 보다. 엄마가 후다닥 자리를 비운 사이 오빠가 다섯 손가락을 쭉 피더니 내 시선을 가렸다. 탬버린처럼 흔들리는 손가락 사이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제 나 봐봐. 말할 게 있어.”


“오, 뭔데?”



그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단어를 한참 골라내는 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오빠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는데 나에게는 천년만년 같았다.

좀, 시원하게 말하면 좋겠는데.



“너네 엄마가 너를 아주 사랑하시는 거 같아. 나한테 이러셨더라고. 네가 가족이니까 자기랑 똑같은 한국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며 욕심을 부리셨데. 미국에서 배운 문화와 생활 습관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려고 했는데 역효과가 나서 힘드셨던 모양이야.”


“그렇구나.”



“내가 너랑 잘 지내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거야. 비결이 뭐냐고 나한테 물어보셨어. 넌 여자 친구랑 어떻게 잘 지내냐길래 한국문화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어.”



오빠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내가 명절날 외갓집에 갔는데 외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너는 미국사람이네. 양인이야. 양인. 행동을 보면 한국사람 아닌 거 같아. 그래도 이쁘다’라고 했었다.

매번 애를 쓰지만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미국 바이브는 숨기기 어려웠나 보다. 그걸 내 외할머니는 단번에 눈치챌 정도로 예리했다. 동시에 편견이 너무 없어서 탈이었다. 내가 머리를 탈색하고 방문한 날에도 양인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식구들은 해외 경험이 많았고, 내 사촌들 중 미국인이랑 결혼한 국제부부가 있었기 때문에 하하 호호하며 귀엽게 봐주었다. 내 엄마는 웃을 수 없어 항상 외할머니에게 “엄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해요. 내 딸 한국인이에요!”라며 쏘아붙였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내 엄마는 내가 자신이랑 똑같은 사람이길 원했을까?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퍼즐을 오빠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님에게 상황을 잘 설명드렸으니 걱정하지 마. 네가 미국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으시는 것 같아.”


“고마워. 오빠. 그런데 엄마는 왜 내가 한국인이길 바라셨을까?”


“음.. 사실 나도 네가 없을 때 어머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어.”


“어? 왜 갑자기?”



“설명하기 어려운데… 가족이니까 서로 통하길 바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이면 척하고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이 있어. 나도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내가 당연히 여기는 걸 똑같이 여겨주길 바랐어. 처음에는 그랬었어. 그 마음 때문에 어머님이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은데, 그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본 것 같았어. 그게 너무 부끄러워.”



오빠의 고백을 듣고 나도 아차 했었다.


종종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나와 같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었구나.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길 바라는 마음이 뾰족한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가족들이 나에 대해 뭐라 말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랬구나. 오빠. 내가 알아주고 서로 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했겠다. 그런데 그거 알아? 나도 솔직히 말하면 엄마 아빠가 한국사람이 아니었음 좋겠어. 내 미국 선생님이 나를 가족처럼 키워주셨잖아. 난 오히려 엄마 아빠가 미국사람이길 원했던 적이 많았었어. 지금까지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그걸 태도로 드러내진 않았잖아?”


“어? 전혀 몰랐어. 난 네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금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반전이 있었을 줄이야. 왜 그걸 말 안 했어?”


“오빠. 내가 그걸 어떻게 엄마 아빠에게 말해? 들으면 기분 좋은 이야기는 전혀 아닌 게 뭐 하러 상대방을 속상하게 만들어. 내 엄마 아빠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쭉 자라와 결혼을 한 사람이야. 그분들은 절대 바꿀 수 없어. 바꾸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지. 답답하지만 어쩔수 없어.”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응. 맞아. 뒤집어보면 나는 미국사람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문화를 가진 한국인이겠지. 유학을 가고 국제결혼도 하는 시대인데 이중문화를 가진 아기들은 뭐라 부를 건데? 나를 바꾸려고 하면 힘들어질 거야. 오빠도 마찬가지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 문화를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미국 문화는 내 기본적인 기질과 성향에 딱 맞는 옷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문화와 타협은 할 수 있지만 개조해서 소프트웨어를 갈아엎는 건,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애플 컴퓨터에 OS를 전부 다 지우고 억지로 윈도우를 끼워 넣는 것 같았다.



동시에 오빠도 존중을 많이 해주었다. 최근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손맛이 나지 않는 김치찌개의 최적 레시피를 찾아냈다. 가끔씩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한식 요리 한 상을 해 준다. 그리고 오빠가 하는 말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꽤나 있었지만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한국 문화로 받아들이고 나부터 배우는 자세로 임하곤 했다. 질문도 많이 했고 그럴 때마다 그가 으쓱해져서 한국 역사부터 온갖 라떼들을 늘어놨는데, 이 정도면 내가 보살이지. 반대로 오빠는 나에게 궁금한 것도 질문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퉁명스러워졌고 오빠는 숙연히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네가 나를 많이 이해해 주었구나. 미안해. 나도 앞으로 너에게 잘할게. 나도 너에게 배울 점이 많아.”



“나도 오빠에게 배운 게 많았는걸. 오빠는 다른 사람이랑 물 흐르듯 잘 어울리고 좋고 싫음이 없는 게 큰 장점이야. 나는 알다시피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똑 부러지게 말하니 모든 사람들과 좋을 순 없어. 이게 나의 단점일걸? 나를 좋게 봐주니 고마워.”



자리로 돌아온 엄마와 함께 몇십 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각자 집으로 해산했다. 나는 혼자 자취하고 있던 터라 엄마랑 행선지가 달랐다. 작별인사를 나눌 때 엄마를 꽉 끌어당겨 안았는데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딸. 엄마가 부족하지만 노력할게. 난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마도 선크림을 바른 탓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결혼준비에 있어 우리의 입장은 여전히 중요하기에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지만 동시에 양가 가족들의 심정도 챙겨야 함을 배웠다. 미국도 시댁, 처가 문제로 이혼하거나 다투는 경우가 많으니까.



내 가족이니까,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건 변치 않는 인간의 본성이다. 사랑하니까 나를 위해줬으면 하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애정인 걸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얻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빠 엄마도 내 엄마도 선한 마음이 차고 넘쳤기에 큰 댐이 무너져 내린 게 아닐까. 부모라는 거대하고 단단한 벽이 마음속에 가득 채운 사랑을 바깥으로 전부 다 쏟아부으니 거대한 상황 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행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둘이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다.


나는 실리를

그는 관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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