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16화

by 명형인

토요일 정오, 볕이 잘 드는 카페에서 오빠랑 함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어느 브런치 카페처럼 창가에 비치는 햇살 속의 따스함 때문인지 유리창에 맺힌 우리의 모습은 동떨어진 세계에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상견례를 앞두고 벌어진 사건 때문에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었는데 엄마가 만나자하니 별수 없었다. 엄마가 불렀으니 마지못해 만나줄 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는데도 착잡한 심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랜만에 오빠를 만나니 어색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길 수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내 자존심이 웃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간에 힘주며 무 표정을 유지하기에 바빴다.



엄마가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나와 그 이는 서운함을 눈빛에 잔뜩 담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알아주겠지 하고 말이다. 눈싸움은 오래가진 못했다. 오랫동안 부릅뜬 탓에 눈이 저려 눈꺼풀이 떨리는 걸 서로 발견하고선 이겼다는 자만심에 빠져 ‘풉’ 하고 웃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풉’ 하는 동시에 저쪽도 ‘푸훗’. 결국 웃음바다가 되어 도루묵이 되었을 때 엄마가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선 내 앞에 서 있었다.



“엄마 왔다. 너희들 뭐 먹을래?”



선 주문, 후 수다라며 엄마는 음료를 먼저 주문하자는 말과 함께 우리를 키오스크 앞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화해하라는 신호였던 모양이다.



음료 세 잔이 탁상 위에 올라오자마자 엄마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시엄마와 함께한 점심식사 이후부터 엄마와 나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과 오빠랑 다툰 일들까지 모든 일들은 엄마 입장에서 전부 다 연결된다고 보았다. 만약, 한 사람의 잘못이었다면 결혼을 말렸을 텐데 서로 잘못한 건 없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한번 다 함께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우리를 카페로 부른 거였다.



설명이 끝난 후 시엄마랑 결혼반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긴 갈등을 곧바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엄마는 먼저 자신이 상황을 들어보려 하는 것이라며 남자친구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딸이 너의 어머니와 반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갈등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맞니?”


“네. 맞아요.”


“그렇구나.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볼게. 네 엄마는 내 딸이 자꾸 돈을 아끼려 하니 눈치 보지 말라고 밀어주는 거 같은데. 좋은 뜻으로 그런 거니?”


“네.”


“근데 내 딸이 자꾸 딴 말을 해서 대화가 잘 안 되어 네가 답답하겠다. 그렇지?”


“저는 여자친구 마음을 아니까 도와주고 싶고, 저희 엄마도 똑같이 아껴주고 싶어 해요. 결혼식은 인생 한 번뿐이라 성대한 식으로 신랑 신부를 뽐내는 자리인데.. 뭐가 문젠지 몰라 답답했어요.”



내 엄마랑 대화하는 오빠의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나랑은 삐걱댔지만 엄마랑은 무지 잘 통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조용히 관찰했다.



엄마랑 나는 대화하는 방식이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출발점은 둘 다 같았다. 엄마는 먼저 오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줬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끝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엄마는 본인 의견을 돌려서 말하거나 아예 꺼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빠 말을 잠자코 들었지만 그에 대해 의견을 내비치진 않는 편이다. 반면에 나는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의견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머그잔 손잡이를 잡아 커피를 홀짝이던 엄마는 오빠가 나랑 결혼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한다며 운을 떼었다.



“너희가 결혼을 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게 있단다.”


말이 끝나자마자 커피잔을 내려놓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내가 딸이랑 함께 미국에 가서 지냈을 때 일인데, 이걸 네가 알아야 딸이랑 서로 이해하며 지낼 수 있을 거 같더라. 그래서 설명을 해주려고 해.”



“미국에서 큰 딸 친구들 학부모랑 교류하는 게 쉽지 않았어. 작은 딸은 그래도 서양애들과 아시아 애들이랑 골고루 어울리니 편했는데 얘는 진짜 미국인들이랑 지내니까 서양인 엄마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지.”


“내가 한식을 소개하고 싶어서 요리해 오면 모두들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리액션을 잘해줘. 근데 냄새가 좀 안 좋았는지 사과를 먼저 하고선 먹기 어렵다고 딱 잘라 거절하더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엄마가 호의를 건넸는데 상대방에게 거절당했다는 말에 오빠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뭐 그럴 수 있지 하며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는데 오빠는 충격을 몸소 받은 모양이었다.



“저기.. 어머님. 입에 안 맞아도 먹는 척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걸 거절하면 서로 서먹해지지 않아요?”


“한국에서만 그렇지. 미국에서는 그게 일상이야. 나도 이게 마음엔 들지 않아. 그 나라의 문화인 거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시어머니 앞에서 여자친구가 좀 꾸미고 가길 원했잖니? 그런데 큰 딸은 어릴 때부터 시간 약속에 늦는걸 극도로 싫어했어. 미국은 시간 원칙에 엄격하니깐. 지각을 3번 하면 결석처리 되고 결석 3회 누적되면 정학을 당했는데 그게 몸으로 학습이 된 거지. 그렇다 보니 약속 자리에 늦지 않게 서두른 거 같다. 네가 이해해라.”



여기서 나는 거절하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 중 한 가지를 정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한 두 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본인의 삶은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니 성인이 될 때까지 미리 자기 주도성을 갖는 연습을 학교에서 미리 시키는 거지. 미국애들도 예의 바른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요.”


난 여기에서 오빠랑 있었던 일들 중 내가 가족들에게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걸 지금 꺼내기로 결심했다.


“한 가지 알아둘 게 있어요.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물어볼 때마다 오빠는 엄청 싫어해요. 어쩔 땐 사람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을 제가 들을 때가 많다 보니. 이걸 참다 터져버린 거예요. 전 절대 파혼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요.”



실제로 오빠가 나에게 모진 말을 엄청 했었다.


처음에는 짜증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단정 지으며 속단하는 지경까지 온 거다. 그게 계속해서 쌓이니 내 마음도 헤질대로 닳고 닳은 거지. 끓어오르는 감정 때문에 욱한 게 아니다.

이별 통보는 내가 무려 3년 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이만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라며 치부할 뿐이지.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좀 놀란것 같았다.



“네 남자친구가 그랬니? 어떤 말을 했는데? 네가 좀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큰딸은 되게 애교가 많아. 둘째 딸 보다 더해. 큰 딸이 나한테 너무 잘하고 아빠한테도 엄청 잘해. 네가 얘 남자친구인데 너무 단정 지어서 말하면 안 되지.”


“아.. 평소도 대화를 많이 나누세요? 여자친구가 저에게 가족 이야기는 잘 안 해서 전혀 몰랐어요. 죄송해요. 보통은 이제 결혼할 사이니까 엄마가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힐끔 고개를 들어 오빠 얼굴을 훔쳐보았는데, 그의 얼굴 표정에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우러나왔다. 이야기는 이어졌고 난 그걸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오빠가 한국말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라 했어요. 제가 맥락을 읽지 못하니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눈치를 챙겨야 하는데 그건 글로 배울 수 없어요. 오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해요. 어쩔 땐 오빠가 나에게 ‘네가 엄마 아빠랑 이야기를 안 하니까 그러는 거야. 부모랑 좀 대화를 많이 해’라고 핀잔을 주고, 최근에는 ‘부모에게 배운 게 없어서 그러는 거 아냐?’라는 기분 나쁜 말을 들었어요. 제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엄마는 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고개를 돌려서 남자친구 얼굴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이 말이 사실이니?”


“네, 맞아요. 답답한 마음에 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여자친구가 나쁘다며 헤어지라는 거예요. 일본인이랑 결혼한 친구는 문화차이일 뿐이라며 자주 만나고 꾸준히 소통하래요. 근데 자기는 와이프랑 소통하는 게 여전히 어렵대요. 전 해결책을 원했는데… 모진 말을 한 것은 후회하고 있어요.”



여기서 솔직히 나도 일본인이랑 결혼한 사람의 말에 동의한다. 보고 배우며 자라온 삶이 다르니 당연히 대화가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제 부부들이 말로 인해 이혼하는 걸 숱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빠의 말을 듣더니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 보였다. 얼굴이 점점 턱부터 이마까지 단계별로 빨개졌는데, 과학실에서 자주 사용했던 리트머스 종이를 보는 듯했다. 얼굴이 가려웠던지 엄마는 마른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벅벅벅 얼굴을 긁듯이 두 손으로 문지르시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라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나만 들은 게 분명하다. 오빠는 내 엄마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라 뭐가 잘못되었나 안절부절못했으니까.


엄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큰 딸, 네가 얼마나 속상했겠니? 그래도 파혼한다 하면 안 되지. 옛날에는 결혼 준비를 한번 시작하면 상대가 못 돼먹은 놈이어도 무르진 않았어. 지금은 덜해졌지만, 여긴 한국이니까 감정보다 체면을 더 챙겨야지.”



“둘 다 내 말을 들어보거라. 내가 미국에서 큰 딸을 엄청 혼냈거든. 매도 많이 들었었다. 그때 내가 미국이 처음이었고 그쪽 사회를 잘 몰랐었어. 나는 한국에서 배운 대로 딸을 가르쳤는데 딸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점점 변하는 거야. 난 그게 그냥 놔두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해서 엄청 많이 때렸어. 근데 얘 아빠는 더했어. 가부장적인 시대에 살아온 사람이란 말이야.”



“큰딸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나도 미국 문화를 조금은 알고 있었어. 애 아빠만 그걸 몰라. 내 딸이 자기 주도성이 있고 그렇다고 무례하진 않아. 학교에서는 Say No!라고 누군가가 권유를 하거나 불편하게 하면 싫다고 말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딸이 그걸 배운 거지.”


“어느 날 아빠가 큰딸한테 공부를 마저 끝낼 때까지 자지 말라고 말하더라. 딸은 새벽 1시가 넘었으니 이제 잠자고 내일 마무리하겠다고 말대답을 한 거야. 애 아빠는 보수적이라서 그걸 이해하질 못해. 어디 아빠에게 말대답을 하냐고 매를 들었는데 딸이 그걸 학교 선생님에게 말한 거지. 근데 학교 선생님이 애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었어. 집에 경찰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난리법석이 났어.”



이야기를 듣다가 오빠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아니.. 뭐라고요? 왜 아버님을 신고하셨어요? 저도 학생 때 많이 맞았는데… 저 때는 공부를 안 하면 친구들도 다 부모님께 엄청 맞았어요. 그렇게 컸는데.”



“맞아. 한국에서는 다들 그랬어. 미국에서는 그러면 가정폭력으로 봐.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여기도 똑같은데, 미국은 제도가 훨씬 앞서간 거지. 아빠는 그때 일을 큰딸이 자기를 신고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건 학교 선생이 신고한 건데 그걸 지금도 받아들이질 못하더라. 너도 미국에 가면 말 조심해야 하고 행동도 신중해야 해.”


“.. 그리고 내 딸아이가 미국 사회에서 자라왔으니 네가 한 말에 크게 충격받고 모욕감을 쉽게 느끼는 거 같아. 그저께 내가 딸이랑 따로 만나서 이야기 나눴어. 네가 결혼을 해서 같이 살 생각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도 홧김에 말하는 건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너네들이 문화가 다르니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 좋겠다.”



엄마랑 오빠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걸 레모네이드 신호라고 부른다. 화장실 가야 할 때 오줌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 어려워서 유머를 곁들인 게 레몬티 신호였다.



“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레몬 티.”


오빠가 벌떡 일어서더니 다녀오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미워도 역시 나랑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다. 엄마는 레몬 티가 뭐야? 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듯 나는 일상 속에 유머를 곁들이기 좋아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빠는 우리가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내가 미국 문화를 완전히 버리고 한국 문화에 순응하며 살길 원했다. 나는 오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웠다.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다 보면 병에 걸리고 발이 퉁퉁 부어 넘어지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점을 끝내 견디지 못할 거라면, 외국인을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


이국적이고 신선하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지기 마련인데 결혼은 서로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모습까지 싹싹 긁어 발가벗힐 것이다.


국제결혼을 순탄히 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곳을 떠나 타지에서 나와 함께해 주는 상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게 가뜩이나 퍽퍽한데, 힘든 사람을 다그치는 거 보단 서로 존중하며 건들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은가? 숨이라도 쉬어야 살아지지 않나.



엄마와 오빠가 둘이서 나누고 있던 대화 내용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농담으로 살짝 환기한 후 화장실로 유유히 떠났다.



내가 떠나자마자 엄마는 숨겨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제 보니 엄마의 상자는 도라에몽 주머니다. 한번 꺼내면 새로운게 끝없이 나온다. 언제 전부 다 풀어낼지 몰랐는데 오빠 덕분에 좋은 날을 잡았다.


단둘이서 나눈 이야기를 귀띔해 준 그이가 고마웠다. 그가 이 사실을 숨겼다면, 난 중요한 사실을 영영 놓쳤을 것이다.



예비남편 생파 + 놀래키기 성공 + 오빠의 역습
엄마 환갑 생파


할머니 집에서 새해 파티
아빠, 나, 오빠


두 엄마의 손톱 꽃단장 하기



우리는 여전히 어긋난 채로 웃고, 화내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해하지 못해도, 관계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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