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내가 처음으로 오빠 부모님을 만났을 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쭈뼛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나에게 뜨거운 커피를 건넸지만, 컵에 담긴 마음은 따뜻했다. 말없이도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내가 세 번째 커피를 받았을 땐 그렇게 가볍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일 점심에 시간을 낼 수 있니?”
그땐 상견례하기 직전이라 날짜를 잡을 겸 예비 며느리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을까. 만남은 예고 없이 급히 이루어졌다. 한국의 거의 모든 부모들은 만남이 실시간이고 헤어짐도 그런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재가 제일 중요했던 시대를 살아온 흔적들이었나 싶다. 하필, 그날 주말에는 모처럼 푹 쉴 예정이었다.
나는 이런 실시간 만남이 버거웠다.
성인이 된 후로부터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늘어나고 삶의 우선순위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건 좋지만 만남이 늘어날수록 자신에게 소홀하기 쉬웠다. 내 생활이 잘 굴러가야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내도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갈등이 일었다.
갑자기 당일에 연락이 와서 만나자며 부르는 건 오빠 부모님 뿐만이 아니다. 내 부모님도 피차일반이었다. 엄마아빠는 그날 일이 있어도, 선약이 있어 시간이 못 빼는 날에는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그들은 내가 부모인데 왜 다른 일이 우선이냐며 서운해하는 눈치를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식인 나도 속상해지기 일쑤였다. 이미 겪었던 일들이라서 내가 거절한다면 오빠 부모님도 내 부모님처럼 서운해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음날 주말 점심약속을 응했다. 오빠도 그게 좋을 것 같다며 세대 차이니 봐드리자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날 아침에 피곤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생각해서 시간은 맞추려고 했다. 그래서 옷은 단정하게 입되 꽃단장하는 것은 건너뛰었다. 화장기 없는 생 얼굴에 머리는 샤워 후 빗으로 손질해 다듬은 게 다였다. 꾀죄죄한 것보단 나았는데 오빠는 내 모습이 어색한지 뒤통수를 긁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안 꾸미는 거 아니야? 밖에서 내 엄마 만나는 건 처음이잖아.”
“응. 맞아. 혹시 뭐 잘못되었어?”
“그런 건 아닌데…”
“오빠, 이제 출발하자. 꾸물거리다간 약속자리에 늦어.”
집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나랑 오빠, 오빠 엄마랑 함께 식사를 할 때까지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모처럼 만난 그의 부모님은 내가 화장을 안 한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오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용모단정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생얼굴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식장은 알아보았는지 등의 질문을 몇 가지 받았는데 큰 충돌은 없었다. 그다음에 훅 들어온 한 마디가 식사 자리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절약하면서 결혼 준비를 하는 건 좋은데, 반지는 이왕 맞춤으로 예쁘게 하는 건 어떠겠니?”
“어머니, 맞춤 반지는 너무 좋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디자인은 국내에서 찾기 힘들고 맞춤 반지를 한다 해도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평반지나 앵게이지 금반지로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우리가 잘 알아보겠다는 말로 훈훈한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반지 이야기가 나온 후로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넘어갈 법인데 왜인지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하고 싶었을까.
내가 내린 판단은 실수였다. 그때 그저 예쁘게 하라는 말로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의견을 말하다 보니 수긍이 아닌 새로운 의견이 오가기 시작했다.
대화는 어느덧 “친척 중에 금은방 하는 고모가 있는데 거기서 맞춤 반지를 맞추면 좋을 것 같다”로 흘러갔다. 나는 이것도 어색한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보니 오빠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내 손을 급히 붙잡아 선수를 쳤다. 살포시 손을 감싸 쥐면서 ‘내가 말할게. 해결할 테니 걱정 마.’라고 속삭이길래 오빠 말 대로 가만히 있었다.
“엄마, 여자친구랑 상의해서 고모네도 한번 가보고 여러 가지 잘 알아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오빠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 후 계속 이어지는 오빠 엄마의 말에는 듣기만 하고 따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가끔씩 비는 소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네, 네” 하는 게 전부인데 대화는 빠르게 마무리되어 가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는 아주 훌륭한 해결사였다.
상황에 맞게 결혼식을 올리려 했을 뿐인데 반지 이야기가 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니 답답했다. 내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똑같은 맥락이 집요하게 이어지니, 상대방이 경청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빠는 이런 내 마음을 아주 잘 헤아려주는 사람이었다.
모임이 끝난 후 둘이서 데이트할 때 오빠가 대화가 잘 안 된 이유를 슬며시 알려주었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말할 때 쓰는 말투에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겉으로는 선택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미 답이 정해진 말들, 그걸 지시형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투명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을 얻았다. 겉으로는 뭐뭐 하라고 하지만 속 뜻은 본인의 생각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일 뿐, 말대답을 할수록 상황이 악화된다는 설명도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빠 말은 진짜였다.
내 엄마 아빠도 명령어조를 종종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상황을 보면 내가 해도 되고 안 되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뭐 하면 좋겠다고 말하길래 내가 설명을 시작하면 “네 생각이 다르다면 안 하면 되지! 뭐 그리 복잡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는데 딱 이 상황이지 않은가?
오빠 엄마랑 이런저런 일이 있은 후, 내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왔었다.
엄마는 내가 시엄마 될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해했다. 굳이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만약 부모님이 물어본다면 알려주는 게 좋다는 오빠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엄마에게 말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들어줄 줄 알았던 내 엄마는 예상 밖의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뭐 하러 친척 가게에 가서 반지를 맞춘대니? 그거 예물이야. 예물. 남자 쪽이 장가보낼 때 여자에게 다 해줬어. 우리는 남자에게 시계를 해줘야 하는 거지.”
옛날 결혼 풍습을 알려주는 건 좋게 여겼는데 계속해서 그때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진짜 순수한 옛날이야기인지 속에 뜻이 숨어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돌렸다.
“엄마, 옛날이야기를 알려주는 건 좋은데 대화가 새는 것 같아요. 토요일 오빠 엄마랑 있었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옛날 결혼식 문화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슨 뜻으로 받아들이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남자가 반지를 해주는 거야.”
‘네, 그렇군요’라고 수긍해도 반복되는 예물 이야기에 ‘혹시, 내가 돈을 쓰면 안 된다는 뜻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 내가 돈 쓰지 말고 오빠 가족이 반지 맞춤 비용을 전부 다 부담하길 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길래 내가 이해한 대로 엄마에게 되물었는데 엄만 정색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는 둥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다. 너는 왜 그렇게 말하니? 나도 정도라는 거는 알고 있어. 꼭 꼬아서 들어야겠니?”
꼬아서 듣는다고 말하는 모습에 나는 반박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그때 토요일이나 지금 엄마랑 이야기 나누는 순간에도 여전히 대화가 엇갈리니 묘한 거리감이 들었다. 그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 사이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더도 덜도 없이 똑같이 느껴졌다.
나만 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일상 대화를 나누던 중에 무심코 나온 오빠의 한 마디가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가지를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 자격증 따보는 거 어때?”
“좋은 생각이네. 오빠, 내가 지금 이수하는 교육과정이 있고 프로젝트 몇 개 진행 중이라 지금 당장은 어려워. 일이 끝나면 그때 하자.”
“고민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 봐.”
“오케이. 일 끝난 후 시도해 볼게.”
“왜 자꾸 말을 받아쳐? 그냥 알겠다 하거나 고맙다고 하면 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나한테 자격증 따보라고 말한 거 아니었어?”
“해보라 한 게 아니라 의견을 말한 거지. 의견.”
“답답하네… 오빠.”
내로남불은 오빠 부모님, 내 부모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남자친구도 내 속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엄마도 지시해 놓고 의견이라 하네. 오빠 엄마도 명령하듯 말하고 생각을 나눈 거라 하네. 오빠는 조언처럼 해놓고 의견을 말한 거니 가볍게 받아들이라 하니 미칠 듯한 노릇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다못해 배에 힘을 주고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지금 오빠가 말하는 건 의견으로 들리지 않아. 오빠는 본인에게 말하고 싶은 걸 내 이름을 빌려서 말하는 거야? 간접적으로 말하는 건 솔직하지 않아.”
내가 허를 찔렀는지, 오빠 얼굴은 돌처럼 굳어졌는데 속을 읽기 어려웠다.
“그냥 받아주면 되지. 그렇게 들춰야겠어? 덮어주고 넘어가면 되지.”
오빠는 나에게 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넘어가자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뚜껑이 활짝 열렸다. 뚜껑을 열자마자 분출하는 콜라 거품처럼 내면 속에 숨어있었던 목소리가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한 가지는 알아. 우리가 이대로 대화를 지속한다면 나는 오빠랑 결혼 못해. 나에게 무례한 거야. 그냥 엎어버리자.”
결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엎어버리려 했다. 그때 오빠 얼굴은 황당하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나는 내 엄마랑 오빠 엄마, 나, 오빠 이렇게 4명이 있는 단톡방에 상황을 설명하고 결혼이 어렵겠다는 결론의 장문의 글을 올렸다.
원인은 대화가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해결 능력이 없다는 거라 생각했다. 해결할 힘이 없으면 어른이 아니라 여겼다.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해결책은 “대화 능력”이었다.
대화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한 건데 오빠는 내가 감정적이라고 반박했다. 서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을 때 문자 알람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상황에 맞지 않는 하이톤의 알람음은 왠지 우스웠다. 남 일이라는 건가?
“엄마다. 시간이 나면 너 남자친구랑 함께 셋이서 커피 마실래?”
문자 내용은 알람음에 비해서 가볍지 않았다. 보통 엄마가 먼저 만나자며 사적으로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무심하고 딸에게 살갑게 말하는 법이 없었는데 새로운 모습을 보니 얼떨떨했다. 엄마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셋이서 만난 자리에서 엄마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몰랐던 그녀의 상자 속엔 무엇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