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닥에서 시작하는 이유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고, 목적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by 명형인
"나는 바닥에서 시작했지만 그 밑에서 하늘을 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았다면 지금 같은 삶을 살지 못했으리라. 진짜 밑바닥은 오로지 바닥만 보이니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는 단골 질문들 중 하나가 "너 왜 이제껏 공부한 거 놔두고 이런 일 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생각하곤 한다. 글쎄 '이런' 일이라, 그게 무슨 큰 문제라도 된다고.

내가 유치원 때부터 직접 써온 이름표를 내려놓고 회사 상사가 준 명찰을 다는 것이 '이런'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바닥'인 셈이다.


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대학은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 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귀국해서는 짬짬이 일러스트 작업을 하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오직 일러스트로 승부하려고 치열하게 달려들었던 시절. 그때 왜 그랬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목숨을 건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잘하고 아는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숨겨온 열등감이 있었으니까.

난 그림은 잘 그리지만 디자인은 지지리도 못했다. 내가 디자인으로 밥벌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인가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나의 열등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디자인은 열등감이었다. 그러나 과거 진행형일 뿐.


그러한 내가 디자이너로써 새로 배우고 일한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막상 디자이너가 된 본인의 상황이 놀랍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뼈 깍듯이 너무 아팠다.

인쇄기술도 잘 모르고 종이는 모두 같은 백지요, 글씨는 먹으로 보이는 내 눈이 원망스러웠던 시절 이리라.


그래도 지금 여기까지 온 것, 오로지 버텨온 이유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난 내가 지금 일 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 면접을 봤을 때 한 대답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스스럼없이 답했다.

"저는 삽화를 배우고 관련 분야를 전공했지만 디자인은 잘 못해요. 그렇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면접을 계속 진행해나가셨던 대표님 표정을 그땐 읽지 못했다.

설마 나를 채용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때 내 대답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나는 일러스트 삽화의 산 중턱에서 내려와 바닥에서 디자이너로 새 출발했다.
어린 닭이 시간을 다시 거슬러 병아리가 되듯 말이지.
내가 한 이 선택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선택 뒤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간절하게 하루하루 살아왔다. 삽화를 내려놓고 말이야.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을 거듭 반복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청각장애가 있는 내 특성이듯, 나는 유독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게 어려웠고 배움이 느렸다.

먼저 뛰어가는 토끼 무리 사이에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가 된듯한 기분이란. 알 사람만 아는 것 같다.

또,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내면 속에 숨어있던 일러스트 지식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가 디자이너기 전에 배웠던 수많은 자기 경험들이 서로 자기 말 들으라고 아우성친다.

과거에 휘둘리는 대신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위해 이전의 나와 타협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덤덤해지더라.

그렇게 많이 아팠나 싶을 정도로, 내 마음에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견고하게 굳어진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차근차근 디자인을 처음부터 배우니 달라져가는 나를 발견한다.


아픔은 나에게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영영 넘지 못할 것처럼 높은 벽과 마주칠 때마다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곤 했다.

바닥에서 계속 땅만 바라보는 대신 하늘을 바라보는 연습은 매우 가치가 높았다.

어쩌면 내가 디자이너가 된 사건이 나에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확실한 방법을 알려줬다. 하늘이 어찌 이리 푸르고 아름답던지!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다면 지금의 삶을 살지 못했고, 새로운 시도는커녕 글도 쓸 엄두 내지 못했을 거다.


내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봤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날개 달린 새가 하늘을 거부하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날개의 가치는 분명 무의미 해질 것이다.

한번 쭉 피면 바람을 뚫고 날아갈 수 있는데 말이지.


한구석의 열등감으로 인해 불붙은 패기가 나를 디자이너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난 더 높이 비상하게 되었다.

바닥으로 다시 내쳐지는 것은, 충분히 날아오를 힘이 있다는 명백함 때문이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건 존재하지 않고 바닥도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걸 올바르게 보아야 높고 푸른 하늘로 비상할 수 있다.

새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다시 날아올라가기 위함이다.

나에게 바닥은 더 높은 곳을 보게 해 주었고 내 아픔은 나를 더 강하게 해 주었다.


새가 날개가 꺾이면 하늘을 갈망하듯이 우리도 바닥에 있을 때 삶이 간절해진다.
그때 우리는 땅을 박차고 다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