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에서 우는 그녀를 보았다

어느 가이드의 고백

by 스윗비타


모든 해외 여행이 여유로운 여가는 아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현지식을 맛보는 과정은 같을지라도, 누가 그 여정의 비용을 지불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목적과 공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18개월간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들과 2박 3일의 현장 견학을 떠나게 되었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서 선발된 이들은 각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국가대표’들이다. 신촌의 유명한 어느 대학교 캠퍼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손에 잡힐 듯 신선했다.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하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밟아본 캠퍼스는 그 공기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그 맑은 에너지 속에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중동에서 온 40여 명의 학생과 교수님을 태우고 경주, 부산, 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의 학생은 세수만 겨우 한 채 손에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을 나는 '이모님' 같은 미소로 맞이했다. 교수님이 동행하고 학점으로 이어지는 수업의 연장이었기에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이크를 잡고 그들에게 첫 마디를 건넸다.

"오늘부터 3일 동안은 공부하지 마세요. 그저 즐겁게 노는 시간입니다!"

그 한마디에 버스 안은 환호성과 잇몸이 드러나는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찼다. 젊은 나이인 만큼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차림의 그녀들. 한국에 온 지 7개월이 지났다는 그녀들은 이미 서로에게, 그리고 한국의 풍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노란 스카프 뒤에 숨겨진 가시 돋친 방어


가이드로서 버스 앞자리에 서면 손님들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종별로 피부색도, 머리 모양도 달라 조금은 정신 사납기도 하지만, 방문할 장소의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연결점을 이야기할 때면 그들의 눈빛은 일제히 나에게 집중된다.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 하나하나가 가이드인 나를 움직이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다. 중동에서 온 7명의 학생이었다. 보통 한 국가당 한 명씩 배정되는 규칙과 달리, 전쟁 중인 그들의 나라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특별히 인원을 더 배정한 케이스였다. 나이대도 젊은 층부터 중년까지 다양했다.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어 왔는지 궁금했다.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그녀들은 기초 교육이 부족해 학과 과정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열정적인 교수님이 특별 과외까지 해주며 이끌고 있다고 했다.

다년간의 전쟁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고립시키는지 그녀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그녀들은 늘 머리에 화려한 색감의 스카프를 쓰고 반짝이는 스팽글을 단 전통 복장 차림으로 자기들끼리만 뭉쳐 다녔다. 소통의 문을 닫아건 채 오로지 교수님과만 대화하는 듯 보였다.


서울을 벗어나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고, 한국 사람들 사는 이야기며,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전쟁과 재건, 한강의 기적이라고 까지 평가되는 경제 발전상을 지루하지 않게 스토리로 풀어주었다. 그런데 안내를 하던 도중, 한 여학생이 손을 들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도 그거 있어요. 한국에 있는 거 우리나라도 다 있어요.”

맥락에 맞지 않는, 다분히 방어적인 외침이었다. 나는 웃음으로 넘기려 했지만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녀는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여기 온 게 아니에요. 한국이 우리나라에서 원하는 것이 있어서 부른 거예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옆에 있던 남미 학생이 당황하며 “우리나라는 한국보다 가난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기회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라고 말할 때까지도, 노란 스카프의 그녀는 고집스럽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탕 가득한 도너츠와 '행복의 눈물'


오해의 실타래가 풀린 건 서울로 돌아오는 길, 교수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였다. 교수님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아침, 교수님은 학교 앞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혼자 울고 있는 그 학생을 보았다고 하셨다.

혹시 본국에 테러라도 일어난 것일까,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급하게 달려가 묻는 교수님에게 그녀가 남긴 답은 내 편협한 시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교수님, 저 너무 행복해서 울고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른 아침에 혼자 커피를 마시러 나와 봤거든요. 우리 고향에선 여자가 이 시간에 혼자 카페에 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그녀에게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갓 뽑아낸 커피와 달콤한 도너츠는 생애 처음으로 맛본 ‘오롯한 자유’였다. 다른 국가 학생들이 세련된 옷을 입고 서울의 화려함을 즐기는 동안, 그녀는 외롭게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허락된 이 낯설고도 평화로운 자유를 조심스럽게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녀들을 바라보며 ‘적응하지 못한다’거나 ‘열등감이 있다’고 규정했던 그 시선이야말로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는 폭력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전장(Battlefield)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내 말을 가로막으며 했던 “우리도 다 있어요”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집 앞 카페도 예뻐요. 우리 가족도 나를 사랑해요.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인간이니, 그저 평범한 시선으로 봐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가 아니었을까.

제조 공장의 거대한 기계와 한국의 발전상을 설명하는 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너희는 이런 거 없지?’라는 무례한 자랑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러니 언제나 친절하라.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Be kind, always.)”


내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본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편견 섞인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유치하고 아픈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이제 나는 안내자의 마이크를 들기 전, 상대의 침묵 속에 담긴 빛을 먼저 들여다본다. 그녀의 도너츠가 그토록 달콤했던 이유를, 그리고 그 노란 스카프의 스팽글이 왜 그토록 눈부시게 반짝여야만 했는지를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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