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친 사람들이 N년 뒤 모여 나눈 이야기
1년 중 딱 하루, 대한민국에서 이 시간만큼은 비행기도 이착륙이 금지되고 군사훈련도 멈춥니다. 온 나라가 합심하여 수험생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날, 바로 수능인데요. 교문이 닫히기 직전 헐레벌떡 경찰차에서 내린 학생이 수험장으로 뛰어들어가는 풍경은 우리에겐 익숙하죠. 이렇게 모두가 수험생에게 맞춰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큼 ‘수능’은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시험처럼 여겨집니다.
누군가는 수능을 망치면 마치 루저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20년 가까이 되는 내 삶에 대해 평가받는 시험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그만큼 굉장한 부담감과 압박감 속에 치러야 하는 시험이기에 평소 내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수능을 망쳤다고 인생까지 망하는 걸까요?
수능이 인생의 다가 아님을,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인 우리는 잠깐의 풍랑을 만나도 결국엔 멋진 항해를 해나갈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여기 수능을 망친 네 사람이 모였습니다. 수능을 본지 몇 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까요?
그레이스 : 안녕하세요! ‘삼수했으면 어쩔 뻔’님부터 각자 정하신 닉네임 소개 좀 부탁드려요.
삼수했으면 어쩔 뻔 (이하 삼수) : 네. 저는 재수까지 했는데 재수도 결국 망했어요. 삼수하면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엄마가 “네 눈빛은 삼수할 눈빛은 아니야”라고 하셔서 또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지금은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닉네임을 ‘삼수했으면 어쩔 뻔’이라고 지어봤어요.
인생은 마라톤 (이하 마라톤) : 고등학교를 단거리 달리기를 하고 나니까 방전이 되더라고요. 다음 길을 못 걷는 거예요. 대학교도 또 달려야 되는데. 그래서 (인생은) 오래 봐야 된다는 뜻으로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지었습니다.
한 문제 때문에 최저 못 맞춤 (이하 최저) : 전 한 문제 때문에 최저 못 맞춤인데요. (수능 때) 거의 한두 문제 차이로 최저를 못 맞춘 기억이 있어서 이렇게 지었어요.
인생이 서프라이즈 (이하 서프라이즈) : 제가 입시하면서도, 입시 이후에도 부모님을 많이 놀라게 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인생이 서프라이즈라고 지었습니다.
그레이스 : 그럼 다들 수능은 언제부터 준비하셨어요?
마라톤 :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생님들이 “너네 수능 4년 남았다, 3년 남았다” 거의 카운트다운을 해주시니까 늘 (수능이란 존재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최저 : 저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한 것 같아요. 흔히 반에서 수시 파이터라고 해서 나는 무조건 학종,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 가겠다는 애들이 반에 몇 명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저였어요. 그래서 저는 절대 수능 안 보고 무조건 수시로 대학 간다고 했죠(웃음).
그레이스 : 어떻게 하면 수시 파이터가 돼요?
최저 : 1학년 때부터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고 세부 특기사항 적으려고 선생님 졸졸 쫓아다니면서 “선생님, 이거 좀 넣어주세요” 이러기도 했어요.
그레이스 : 다들 (원래) 가고 싶었던 대학이 있었어요?
삼수 : 어렸을 때는 그렇게 서울대라고 했으나...(웃음) 저는 이화여대 의대를 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걸 목표로 뒀어요.
그레이스 :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요?
삼수 : 제가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잘했었어요. 다니고 있는 수학 학원 선생님도 기대가 높았었고 “수능 잘 봐서 학원에 현수막 좀 달자” 이런 말씀도 하셨거든요. 부모님도 꼭 서울권이 아니어도 지방대학 의대는 당연히 갈 수 있겠지 이런 막연한 기대감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걸 깨달아가긴 했겠지만 어쨌든 부모님의 기대는 엄청났죠.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그레이스 :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셨나 봐요.
삼수 : 결국 크면 똑같은데 어렸을 때 되게 빠른 애들 있잖아요. 빨리빨리 습득하고. 그런 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학구열이 높은 편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걸 시키셨어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도 학원을 7~8개씩 다녔거든요. 놀이터도 거의 안 가보고 유치원 갔다 오면 오자마자 학습지 풀고 자기 전까지 그거 하다가 잘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죠.
그레이스 : 그때는 불만이 없으셨어요?
삼수 : 그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레이스 : 마라톤님은요?
마라톤 : 저는 홍익대 미대를 가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홍대 미대가 제일 탑이거든요. ‘이왕 할 거면 최고 먹어야지’ 싶은 마음에 홍대 미대를 꿈꿨었죠.
최저 : 저는 초등학교 때 꿈이 선생님이었어요.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좋아하고 남이 모르는 걸 알려주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동화책 주인공에게 편지 보내기 과제를 한 걸 최근에 봤는데 거기에도 “나는 나중에 꼭 멋진 선생님이 될 거야” 이런 얘기가 쓰여 있더라고요. 그리고 중3 때는 서울교대를 목표로 공부했죠. ‘나 정도면 서울 교대 갈 수 있겠지’ 했는데 점차 점차 (성적이) 내려가서 사범대를 준비했었어요.
그레이스 : 왜 하필 서울교대였어요?
최저 : (마라톤님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교대 중에 탑, 서울교대.
(단체로 웃음)
삼수 : 인생이 서프라이즈님은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어요?
서프라이즈 : 저는 그때 철이 덜 들어서 허세 같은 게 있었어요(웃음). 대학을 서울권에 있는 신방과를 가면 저에게 또 다른 네임택이 붙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좀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이 학교 이 과의 사람이다’ 이게 저의 수식어가 되니까 저는 수능 허세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단체 웃음) 뭔가 저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최저 :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사범대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졸업하면 임용 되고 선생님 되고 그런 생각? 대학에 입학하면 모든 게 다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막연하게 대학 입시 끝나면 나도 탄탄대로 걷는다! (단체 웃음)
마라톤 : 대학 간 뒤로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최저 : 그냥 끝. 대학 가면 과잠 입고 친구들과 함께...
서프라이즈 : 학교 잔디에서 막 노래 부르고(웃음).
최저 : 그런 것만 생각해서...
그레이스 : 다들 수능을 망치셨나요?
모두 : 네(웃음).
그레이스 : 망친 이유가 있었나요?
삼수 : 마지막 모의고사 점수가 거의 수능 점수라고 하잖아요. 9월 마지막 모의고사 때 한번 점수가 확 안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이 점수가 내 점수라고 생각하니까 자신감이 완전 바닥을 치더라고요. 수능 당일에도 언어영역 시험지를 받았는데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문제를 보면서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아 나 여기서부터 막히니까 나는 분명히 시험지를 다 못 풀 거야. 나는 중간 정도 갔을 때 시험시간이 끝나버릴 거야’ 이런 생각이 드니까 첫 문단에서 30분은 붙잡고 있었어요. 첫 장에서 넘어가질 못해서 그때부터는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어영역 보고 바로 재수해야지 싶었어요.
서프라이즈 : (안타까운 표정으로) 너무 마음 아파요. 저는 (학창 시절에 부모님께서) 키가 안 큰다는 이유로 일찍 재우시고 저는 밤을 한 번도 안 새봤어요. 근데 제가 수능 날 너무 긴장해서 잠을 한숨도 못 잔 거예요. 19년 살면서 밤을 새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수능 망했다’ 싶어서 엉엉 울면서 수능 시험장에 들어갔거든요. 제가 원래는 영어를 많이 틀려도 1개 틀렸는데 수능 끝나고 다 채점을 해보니까 국어부터 2, 3, 4, 5 이렇게 등급이 나온 거예요. 긴장해서 잠 때문에 수능을 망쳤어요.
그레이스 : 그럼 평균보다 얼마나 더 낮게 나온 거예요?
서프라이즈 : 평균보다 2등급 정도 낮게 나왔죠.
그레이스 : 그때 어땠어요?
서프라이즈 : 아빠랑 세 달 동안 말을 안 했어요. 아빠랑 말을 하기 시작하면 대학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제가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큰 상태였는데 아빠는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시고... 근데 저는 모든 게 다 상처여서 부모님이랑 거의 말 안 하고 혼자 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부모님 기대도 맞춰드리고 싶었고 남들 눈에도 ‘얘는 이 정도 대학 가겠지’, 이런 기준도 맞춰주고 싶었는데 그걸 맞추지 못하다 보니까 제 사회적 체면이 깎이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가면 수시 합격한 친구들도 있고 수능을 잘 본 친구들도 있는데 “야 어떡해, 쟤 수능 못 봤나 봐” 이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최저 : 저는 장녀여서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머뭇거리다가) 수시를 다 떨어져 가지고... 이제 수능 보기 직전에는 학종 하나 남았고 최저 맞출 수 있는 거 하나, 이렇게 두 개가 남았는데 우선 ‘학종에 모든 걸 다 걸겠다’ 이러고 있었는데 그날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1차 합격자 발표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근데 들어가 보니 불합격 뜨고 생일날 엉엉 울었죠. 그래서 저는 ‘아, 이제 최저 못 맞추면 나는 이제 진짜 망한다’는 생각에 달달달 긴장하면서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앞에 앉은 고등학교 친구가 국어인가 수학인가부터 답안지를 밀려 쓴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가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엉엉 울고 있는 걸 지켜보는데 남일 같지가 않은 거예요. 영어 때부터는 저도 멘붕이 와서 모르는 문제가 갑자기 많아 보이는 거예요. 다 처음 보는 것 같고(웃음).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돼서... (수능을 망쳤어요) (웃음)
마라톤 : 제가 세 명 중 둘째라 그런가 원래 첫째 좀 공들여서 키우고 나머지는 그냥 방생(웃음). 그래서 부모님이 큰 기대를 안 했어요. 전 아기 때부터 말도 정말 느렸고요. 근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반배치고사 1등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고1 때 갑자기 그런 기대를 처음으로 받아본 거죠. 다들 “마라톤이 누구야?” 이렇게 묻는 애들도 있었고. 그때부터 ‘아 기대를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죠. 근데 제가 또 서울대 1차를 붙은 거예요.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다 일어나셔서 “(손뼉 치며) 축하한다! 관악산으로!!”라고 하셨는데 (단체 웃음) 제가 그때부터 돌겠는 거예요. 수능 30일 남았는데 밥 먹으러 가면서 뛰어갈 때도 선생님들이 걸어라, 외운 거 까먹는다, 그럴 정도로 선생님들이 관심을 많이 주셔서 너무 많은 기대와 부담감을 안게 됐죠.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너무 싫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예민하고 문제를 풀면서도 ‘이 문제 틀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문제를 틀리면 최저를 못 맞춰. 최저를 못 맞추면 대학에 못 가. 대학에 못 가면 다 보는 눈이 있는데 나는 그냥 루저가 되는 거야’ 이런 생각. 삼수했으면 어쩔 뻔님은요?
삼수 : 첫 번째 망쳤을 때는 ‘재수해야지!’ 이런 마음과 함께 너무 편안했어요. (단체 웃음) 근데 재수했을 때도 별 차이 없는 걸 보고 ‘아, 난 내 인생을 망쳤다. 나는 도피해야겠다.’ 이런 생각밖에 안 했어요. 제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다 너무 상위권 대학을 간 친구들이어서 ‘그냥 아무도 안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서프라이즈 : (끄덕끄덕하며) 대학 붙은 친구들이랑 말을 섞기가 싫었어요.
삼수 : 네, 맞아요.
서프라이즈 : 너무 자존감이 낮아져서... ‘아니 자기들은 붙었으니까 이런 말을 하지. 난 안 붙었는데’ 이런 느낌이었어요(웃음).
그레이스 : 그러면 다들 수능을 망치고 나서 어떤 선택들을 내리셨나요?
삼수 : 저는 유학 갔어요(일동 ‘와~’).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 근처가 아닌 다른 대학을 다니는 수치심을 느끼느니 나는 차라리 무모한 도전을 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그냥 중국으로 가버렸죠. 최저 못 맞춤님은요?
최저 : 저는 이제 정시를 준비하긴 해야 하는데 ‘이 망한 성적을 대체 어느 학교에서 받아줄 것인가’ 약간 이런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한테 말을 하진 못 했지만 ‘재수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 똑같은 걸 다시 반복하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대학을 사범대는 못 가고 (성적 맞춰서) 신학대학교로 진학했죠.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공을 배우려니까 찾아오지도 않았던 중2병이 대학교 1학년 때 찾아올 정도로 좀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약간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 좋은 대학교 가서 넓은 캠퍼스에서 하하호호 지내고 있고 한강에 가서 치킨 먹는데, 제가 한강에서 치킨 먹는 거에 굉장히 로망이 있던 사람이었거든요. ‘쟤네는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에 저도 똑같이 자꾸 미련 갖고 뒤돌아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마라톤 : 저는 그냥 어쩔 수 없이 (망한 성적으로 대학에) 갔죠. 왜냐하면 미대가 돈이 많이 드니까. 재수하면 더 많이 드니까 효도 차원에서(웃음). 그리고 나도 힘들고 그만하고 싶으니까 갔죠.
서프라이즈 : 저는 대학을 좀 특이하게 갔어요. 제가 로망이 있었어요, 제가 밴드를 정말 정말 좋아해서 수능 끝나면 꼭 인디 밴드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딱 공연을 보러 간 날에 수시를 다 떨어지고 딱 하나 남은 대학이 발표가 났어요. 예비가 나왔는데 절대 안 빠질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울한 상태로 공연장에 가서 밴드 공연을 보는데 공연할 때 영상 중에 ‘맵핑’*이라고. 벽 같은데 미디어를 쏴서 영상을 입히는 그런 게 있어요. 그게 멋있는 거예요. 막연하게 그게 멋있으니까 ‘오, 나 영상 전공해볼까?’ 생각이 확 든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정시 원서 쓸 때 무난한 대학들은 엄마한테 말해서 쓰고 그다음에 전문대 중에 예대 이런 데 골라서 다 영상학과 디자인학과 이런데 썼어요. 그렇게 해서 딱 결과가 나왔는데 그게 붙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 준비도 안 했었는데 디자인과를 가게 됐죠.
*맵핑 :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투사하여 변화를 줌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술 (출처 : 위키백과)
마라톤 : (서프라이즈에게) 멋있다~
그레이스 :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서프라이즈 : 제가 고등학생 때 입시미술 하고 싶다고 한 번 말씀드렸는데 반대하셨거든요.
그레이스 : 왜 반대하셨어요?
서프라이즈 : 부모님이 예체능 쪽을 하는 걸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시지만 그땐 진짜 싫어하셨거든요. 근데 이제 성적으로 넣은 거니까 그때는 뭐 어쩔 수 없이 그냥 가라고 하셔서 가게 됐죠. 삼수했으면 어쩔 뻔님은 중국 가신 거 후회하세요?
삼수 : 후회 안 하죠. 사실 저는 학원, 집, 학원, 집. 저희 엄마가 늘 하셨던 말씀이 '시험 끝난 날이 시작이다'였거든요. 끝나면 또다시 공부를 하는 거예요. 사실 사회에 눈을 돌릴 일이 없었어요.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정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서 ‘사람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지? 사람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살지?’ 이런 거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중국에 유학 가고 나서는 사실 거의 놀았거든요. 놀면서 사람들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몰랐는데 제가 사회적 약자라고 해야 되나요?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봤을 때 제 마음이 되게...
그레이스 : 마음에 불이 생기셨어요?
삼수 : 네. 그런 걸 보면 참지 못하겠고. 제가 착해서 이런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거는 제 안에 부어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이 사회에서 사각지대에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게 됐고. 일 하면서도 되게 뿌듯함이 많아요. 누가 인정해주거나, 명예가 있거나, 권력을 갖고 있거나 이런 일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부어지는 마음대로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어서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정말 제가 처음 수능을 봤을 때 목표와는 많이 다르지만 너무 지금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마라톤 : 수능 치르고 생각지도 못한 과에 오면서 내가 모르니까 공부를 해야 돼, 그러면서 또 찾아가면서 (길이) 새롭게 열리는 거예요. (그 분야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전 그렇게 계속 열어가는 것 같아요. 근데 만약에 내가 홍대 디자인과에 입학했으면 (지금보다) 꽉 막힌 사람이 됐을 수도 있어요. 학벌주의에 연연하고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지금은 나도 실패를 해보니까 오히려 더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되고.
서프라이즈 :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마라톤 : 맞아요. 자기가 길도 또 찾아요. 살아야 되니까.
최저 :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선생님이라는 꿈에 갇혀서 저를 좁게 생각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라는 것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틀 안에 저를 욱여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억지로. 그래서 학교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공부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학생회장도 하고 있거든요.
서프라이즈 : 우와, 멋있다~
최저 : 제가 또 언제 살면서 학생회장을 해보겠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학교 그 이상의 의미예요. 그래서 저는 제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습니다.
서프라이즈 : 회복탄력성이라고 보통 말을 하잖아요. 탱탱볼을 위로 던졌을 때보다 아래로 튕겼을 때 더 많이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한 번 내려가는 경험을 하고 더 높게 도약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희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경험을 좀 일찍 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다들 깨달음이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튀어올랐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희가 더 성장을 한 거겠죠.
마라톤 : 과제할 때도 ‘어 괜찮아, 괜찮아. 대학도 떨어졌는데, 왜. 수능 망쳐도 별일 없었잖아.’
서프라이즈 : (격하게 공감하며) 맞아, 맞아, 맞아! (웃음)
마라톤 : 정말 별일이 없었잖아요.
서프라이즈 : C+ 받아도 괜찮아~
마라톤 : 인생이 망하지 않아요. (수능 망치고 나서 순간적으로) 흑백이 되긴 하는데 오히려 (그런 경험을 해보니까) 툭툭 털고 더 잘 일어나는 것 같아요.
서프라이즈 : 맞아요, 맞아요.
그레이스 : 그럼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게 있으세요?
최저 : 제가 생각보다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사실 내년이 당장 막학기고 졸업반이지만 확실한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 목표는 그거예요. 내가 필요한 곳에 가기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 (모두 끄덕끄덕) 그게 제가 학교 다니면서 느끼고 결론 내린 것들이에요.
마라톤 : 저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하든지. 인생의 목표를 대학으로 삼아서 대학 가고 끝!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 이제 길게 달려가려고요. 인생은 마라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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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세상이 서로에 대한 공감과 격려와 환대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하이머스타드는 2020년 1월 가정폭력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해 장애, 아동, 환경, 가족 등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공감과 희망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이든
기획|하이머스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