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청춘이 가난한 노인으로 죽는다
3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최근 읽고 있는 책과의 연관성도 있고 노인 문제나 그에 대한 정책이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다른 곳에 저장해 뒀던 걸 다시 올려본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드디어 한국의 평균 출산율이 0.98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단다. 이는 3명 이상 출산자가 1명 이하의 출산자 값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실지로는 무출산자가 훨씬 많다는 수치일 것이다.
평균 소득처럼 '평균'에 함의된 수치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평균 이하의 낮은 수치를 은폐하거나 누락하기 쉽다. 2017년의 대한민국 1인 평균 임금이 329만 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임금자 소득이 평균치 임금을 상승시킨 결과라고 본다. 지방에 사는 나와 비슷한 계층의 지인들 수입을 대충 짐작해 볼 때 2019년 현재에도 그 임금 훨씬 밑도는 소득자가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결혼 가부와 무관하게 증가하는 심각한 저출산은 머지않아 1인 단독 가구가 부부, 자녀가 있는 최소 2, 3인 구성의 세대 가구보다 늘어나는 가구 형태를 보일 것이라는 짐작을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전체 인구의 29% 정도,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인데 십수 년 안에 35%, 두 가구 중 한 가구로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통계치가 속속 나오고 있다.
현행 사회복지 제도는 의료, 주택, 금융 정책 등 모든 정책이 개인이 아닌 세대와 다인 가구 중심으로 돼 있다. 4차 혁명을 논하는 시대에 복지정책은 산업혁명 때의 가족제도에 부합한 제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법은 늘 현실보다 아주, 한참 느리기 십상이지만 이런 인구 감소와 시대적 불안을 외면한 채 복지정책이 '출산장려정책'으로 둔갑되고 있다.
학부생들로 구성된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에서 낸 취재기 <벼랑에 선 사람들>이 비정규직, 주거, 의료, 사금융 등 젊은 세대와 그들 부모의 불안과 총체적 빈곤을 주로 다뤘다면 <황혼길 서러워라>는 노년의 가난과 불안을 다룬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빈곤과 노인의 빈곤은 다르지 않다. 세대만 다를 뿐 결국 '가난'과 '분배의 불공정'에 대한 얘기다. 고학력 장기 백수 시대, 평생직장의 소멸과 백수 연명, 빈부 세습의 공고화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룸을 전전하다 쪽방 독거노인이 된다.
이 책은 노인 문제를 이런 인구 감소, 다인 세대 가족 중심의 현행 복지 제도와 연계하지 못하고 노인 문제로 협소한 듯한 아쉬움이 든다. 1인 가구가 두 집 중 한 집이 돼 가는 '가족 없는' 시대의 노인 간병과 주거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취재와 수치가 제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초판 발행이 2013년인데 내게 있는 책은 2017년판 3 쇄다. 1 쇄도 못 팔고 사장되는 책이 더 많다는 출판시장에서 가볍지 않은 이야기로 3쇄까지 낼 수 있었다는 건 노인 문제가 그만큼 무겁다는 현실 반영이지만 관심도 많다는 긍정적 반응으로 여겨진다. 6년 전은 인구 감소나 복지 정책의 비전이 지금과 또 달랐을 때인데 3쇄 및 최근 증쇄에서는 이런 시대적 변화와 감수성이 반영된 개정판이었는지는 확인을 못했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 취재 기자와 취재 대상이 비슷한 세대여서 그런지 기자가 취재원에 대한 공감, 감정이입이 훨씬 깊게 느껴졌고 대안 제시도 좀 더 심도 있게 제시된 것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업 현장에서의 직접 근무와 밀착 취재도 쉬웠을 것이고 그들의 불안, 가난에 대한 감정이입도 동세대로서 진하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황혼길 서러워라>는 부모 세대도 아닌 조부모 세대라는 큰 나이차, 실감하기엔 먼 미래적 불안이라는 점에서 '벼랑....'보다는 취재원과 덜 밀착되고 감정이입도 다소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기자가 취재원과 밀착된 관계라야 더 좋은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겠으나 사람은 아무래도 '내 문제와 가까운' 일에 더 많은 관심과 감정이입이 생기기 마련이고 '아는 만큼' 좋은 글, 기사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벼랑...>이 '내 문제'로 쓴 기사로 다가온다면 <황혼길...>은 '쓰야 할 기사'로 다가왔다. 숙제로 쓴 기사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내가 [단비뉴스] 취재 시리즈 1권에 워낙 더, 좋은 감상을 받아서이다.
노인의 가난과 노동, 치매와 황혼 육아, 노인의 성, 고독사를 총 6 장에 담았다. 책 속 문장 발췌.
-11월이었는데 단칸방이 벽걸이 달력은 8월에 멈춰 있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더니 '평생'....
<1장 농촌노인,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장기요양보험의 판정 기준은 주로 신체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치매 환자의 주요 특성인 '인공기능 저하'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 초기나 경증 환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망상, 배회증상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치매 환자라도 신체 기능이 정상이면 혜택에서 소외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치매 환자는 보호자의 정서 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지 능력은 떨어져도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주보호자의 심리적 안정'을 꼽는다.
-독일은 2008년 장기요양개혁법을 통해 치매 관련 정책을 정비하면서..... 가족의 범위를 친구, 이웃, 자원봉사자까지 확대해 반드시 가족이 치매 환자와 동거해야 한다는 규정을 없앴다. 한편으로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수발휴가제'를 도입했다. .....6개월까지의 수발휴가와 최대 10일간 별도의 단기 휴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했다.
-'노인요양원에 잠입 취재를 했을 때.... 가장 생경했던 것은 '표정 없는 노인들'이었다. 그곳의 '정물'과 다름없었다.
<2장 치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통계청의 장래인구통계를 보면 독거노인이 2013년 현재 약 125만 명이고 2020년 174만 명, 2035년 343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계에는 생명력이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 채 금방 잊힌다. 그래서 통계에 가려진 현장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그리 크지 않은 물질이 한 사람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주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5장 고독, 죽음보다 두려운>
<속보>는 남보다 빨리 베껴 쓰는 것, <단독>은 남보다 먼저 베껴 쓰는 것이라는 소리로 언론이 조롱당하고 있다. 세명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스쿨의 기획기사 팀 [단비뉴스]는 책상머리 베끼기 클릭용 기사가 아닌, 진짜 발로 쓰는 기사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 '발'이 시대적 감수성과 뒤안길을 놓지 않아서 기자의 의무와 의미를 함께 생각게 하는 좋은 르포집이다.
들은 말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져야겠다'(본문 p223)
이 두 권의 좋은 책을 쓴 학생 기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자가 됐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책의 리뷰를 썼을 당시 H 신문사의 젊은 기자들이 조국 사태에 대해 타사 신문들과 같은 강도와 빈도로 조국 기사를 쓰는데 기사 자율권을 침해당했다며 편집국장 책임론 성명서를 붙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나마, 그래도 H 사니까 저런 공개적 항의도 가능하다는 면에선 긍정적으로 본다. 해직 기자들이 모여 만든 그때의 창간 정신과, 언론사마다 다 시험 쳐서 그중 하나로 선택된 지금의 젊은 기자 사이에선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사는 신분, 정파를 떠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써야 한다는 원론에는 공감하지만 신문사마다 각자의 논조와 색깔은 있어야 된다고 본다.
같이 보면 좋을 책
작가 제정임, 단비뉴스취재팀 출판. 오월의 봄 발매. 2012.04.03.
작가 우에노 치즈코. 출판 어른의 시간. 발매 2016.11.15.
같이 보면 좋을 영화
감독 켄 로치. 출연 헤일리 스콰이어, 데이브 존스. 개봉 2016.12.08. 영국, 프랑스, 벨기에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개봉 2016.10.06.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