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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혠나날 May 17. 2022

똥물에 빠진 아기돼지

ep 1.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다.



역사 안에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려 퍼졌다. 장소와 계절에 어울리지 않은 소리를 따라가 보니 덩치 좋은 남자의 책가방에 작은 방울이 달려있다.

고양이 목에 걸려있는 방울 목걸이와 비슷해서 그 남자가 걸음을 뗄 때마다 방울이 흔들려 소리를 냈다. 남자 뒤편에 나이 든 여인이 방울을 매단 줄을 손목에 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힐끔거리는 사람들, 웃으며 지나가는 무리들 또 어떤 이들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방울소리를 내는 모자(母子)를 바라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걸어온 것인지, 아이를 데리고 걷는 그 다부진 손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지하철 문이 닫히며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들을 생각했다.







 나와 두 살 터울인 동생은 천방지축 말썽쟁이 짱구에 버금갔다. 통제가 되지 않는 동생은 틈만 나면 엄마아빠 손을 벗어나 내달리기 일쑤였다.

자영업자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활동량이 많았다. 동생과 단둘이 바깥에라도 나가는 날이면 나는 그를 따라잡지 못해 주위 어른들을 호출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유치원이 끝나고 해그림자도 나른해질 무렵마다 동생과 나는 주로 방안에 있었다.


동생은 창문 앞 고양이 같았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동생은 하루 대부분 동안 지나가는 군인차와 소방차, 트럭 등을 구경했다. 마치 큰 텔레비전을 보듯이. 고양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생은 항상 나가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날갑갑함을 견디지 못한 동생이 창문 방충망을 밀고 탈출을 시도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제비처럼 부러진 다리가 아물고 나니 동생은 어느 틈엔가 또 집을 나갔는데 주변을 살펴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시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아빠 친구들도, 손님들도 모두 나와 집과 가게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고사리 손이라도 한시가 급해 나도 함께 총총거리며 돌아다녔다. 곧이어 집 뒤편 비탈길에 있는 논에서 큰소리가 났다.


"여기다!!!! 여기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빠의 오랜 친구인 주희아저씨 목소리였다. 가장 먼저 아빠가 뛰어갔고, 사방에서 아이를 찾던 사람들이 포위하듯 원을 그리며 논밭으로 모였다. 동생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길어놓은 논밭을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이 탄식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아이의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저수지와 연결되는 길목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아빠와 주희아저씨는 온 힘을 다해 아이에게 뛰어갔고, 거의 구르다시피 몸을 던져 동생의 허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워터파크에 있는 미끄럼틀이라도 탄 것처럼 시원한 물줄기가 쾌청한 하늘을 갈랐다.

 나는 어쩐지 입이 떡 벌어지는 동시에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함께 풍덩 빠지고 싶었다. 살짝 신이 나 옆을 보니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가 어쩐지 울 것만 같아 있는 힘을 다해 충동을 참아냈다.


그 이후에도 물을 좋아하는 동생은 물만 보면 뛰어들기 바빴다. 바다나 계곡에 놀러 가도 심장에 물을 묻히고 발부터 소심하게 넣어보는 나와 달리 동생은 무작정 달려들었다. 뛰어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깊은 강이나 분수대에서도 언제나 해맑았다.

빛만 보면 달려드는 나방 같았다. 하물며 놀이동산에서 강 위를 건너는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동생은 안전벨트를 풀고 뛰어내리고 싶어 발을 동동거려 옆에 있는 보호자를 불안에 떨게 했다.

 



어디에서도 동생찾기게임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엄마의 친정은 부산으로 유난히도 언덕이 많은 동네에 있다. 이 동네 끝자락에는 더럽고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오수가 있었는데 비 오는 날이면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지대가 낮은 곳으로 떠밀리듯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을 도장깨기 하듯 뛰어든 동생이 마침내 똥물에서 첨벙거릴 때는 엄마아빠 모두 우두망찰 서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온갖 배설물들이 모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동생은 꺄르륵거리며 물을 철벙철벙댔다.

그 당시 동생은 살이 조금 오르기 시작할 때인지라 온 몸에 머드팩을 바른 아기돼지처럼 반지르르해보였다. 가관이자 장관을 마주한 이모는 "똥꿈보다 더 리얼한 현장을 보았으니 복권이라도 사야겠다."며 로또를 구매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꽝이었다.

복권 당첨을 위해서는 실제를 보는 것보다는 똥꿈이 더 확실한 것 같았다.


시원하게 저지른 소동에 동생은 한동안 똥독이 올라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가족들은 빠지지 않는 똥냄새를 풍기는 동생 곁에 가는 걸 꺼려했다.

유일하게 엄마만이 똥독이 오른 동생에게 고운 가루약을 발라주기 위해 가까이했다. 이모는 똥독 오른 동생을 보며 깔깔 놀려댔지만, 동생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가루약을 방바닥에 뒤엎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동생의  모든 행동은 자폐성 발달장애의 충동  하나였다. 이해할  없었던 5살까지의 모든 행동들은 엄마가 동생을 서울로 데리고  자폐 1급을 진단받고 나서야 설명이 되었다. 지난 시간들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말로 항목화하여 이해할  있었으나, 진심으로 동생이 하는 모든 일들을 '이해'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또 달아날까 꼭 잡은 손


그래서 나는 익숙하게 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방울 달린 두 모자의 모습을. 꽉 쥔 손길에서 느껴지는 절박함과 단호함에서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어미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그 건장한 남자는 자폐성 발달장애였을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이라도 달듯, 남들의 따가운 시선보다도 아들의 행방불명이 더 애닳았을 그 어머니는 그래서 방울을 달고 아들의 가방을 꽉 쥐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빠가, 엄마가, 재빈이를 아는 그 모든 이들이 꽉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과 동일한 이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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