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부터 발레를 꾸준히 배우고 있다.
꼽추 같은 내 등을 피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무언가 절박함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 일. 당시 이미 바닥이라 생각했던 곳에 더 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계속해서 그 끝없는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 잠식 속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미 제 스스로 몸을 가둘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결국 잠식에 짓눌린 채 영원히 사라져 버리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희망 없는 내일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괴로웠다. 난 정말 마지막으로 여기서 빠져나올 무언가 붙잡을 게 필요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배우다 포기했던 발레가 문득 생각이 났다. 3년 전, 발레를 처음 배웠다. 아니 사실 발레를 배웠다고 하기도 창피한데, 한두달 배우고 바로 관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뭔지 모르겠지만 특유의 무용수만의 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망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나는 몸도 날씬하지 않고, 남 앞에 서는 것도 부끄러워기에 직접 무용을 배우는 건 무리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퇴근 길,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누군가가 전단지를 주길래 무심코 받았는데, 바로 발레학원 홍보지였다. 그 후 발레 학원 길목을 지나쳐 갈때마다 들어갈까 말까 몇 번을 주저하다 용기 내어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당시 나는 백수였던지라 괜히 허튼 데다 신경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결국 한 두달하고 관두게 되었다.
내 마음 속에 계속 아쉬움이 남아선지 발레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다시 시작한 발레. 정신없이 선생님을 따라가기 바빴고 다음 날이면 몸을 두들겨 맞은 듯 온 몸이 아팠다. 평소에 무얼 꾸준히 하는 편이 아니라, 이러다가 한 두어 달만 하고 예전처럼 관둬야지 했다. 그런데 수업 들을 때마다 힘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난 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보름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일 년. 그리고 난 수업 있는 날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발레는 정말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의지로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었다. 몸 구석구석을 매만지고 움직이는 행위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싶어도 매번 할 때마다 힘든 건 마찬가지다. 내가 매번 아프고 힘들어해도 계속 했던 건 아마도 이미 아플 대로 아파 썩어 문드러진 마음에 비하면 참을 만 했다. 이 때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오직 춤이였고 그 끈을 어떻게든 붙잡아야만 했다. 너무도 절실했기에.
춤을 출 때는 어떤 자격이나 무언갈 가릴 필요가 없어 좋다. 오직 플로어 그리고 나의 몸, 숨 쉬고 있는 나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등을 피고 음악에 맞춰 손과 발은 공기를 가르듯 가볍게 움직인다. 그리고 마지막 빈 허공을 향해 높이 공중에 뛰어오른다. 마치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는 새 처럼. 이 찰나의 순간은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만이 존재한다. 나를 압박하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 생생히 숨 쉬고 살아있는 나 자체 하나' 가 될 수 있다. 아마 나는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춤을 추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춤에 타고난 체형과 재능이단 한개도 없다. 그래서 쉽게 동작을 따라가고 응용하는 편이 아니다. 초반엔 남들에 비해 부족한 내 실력이 너무 부끄러웠다. 난 요만큼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보다 스스로 단정 짓곤 대충 넘어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점점 춤을 사랑하게 될수록 내가 왜 춤을 춰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출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의 태도에 있었다. 어떤 안무라도 기본 자세와 스탭이 확실히 마스터해야 동작을 더 잘할 수 있었다. 그 다음 각각 동작들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감정과 움직임이 표현되는 게 춤이라는 것. 여태까지 난 그저 대충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운동을 했을 뿐, 춤을 추는 건 아니였다. 나는 진짜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는 풀업 그리고 마킹, 연습 뿐. 계속 틀리고, 또 연습하는 길 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수 차례 거치다보니 신기하게도 나도 모르게 동작을 더 이상 틀리지 않고 음악에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큰 사실은 그토록 괴로웠던 지난날,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이 들면 그냥 포기했고, 그 좌절감과 두려움 속에서 떨며 지냈다. 결국 웅크리고 숨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등이 말려 굽은 줄도 모른 채 스스로 더 밑에만 바라봤다. 어쩌면 나는 실패를 한 후 어떻게 자신을 회복해야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나는 더 이상 실패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춤을 추면서 다시 또 일어서는 법을 알았기에. 계속 연습하면 언젠가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춤은 단순히 겉으로 움직이는 법이 아닌, 내가 어떻게 삶을 걸어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요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좌절하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수십 번 오고 간다. 그런데 이젠 조금은 나를 회복하는 법을 알고 있기때문에 괜찮다. 이런저런 일이 생겨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춤을 출 거니까.
그렇게 나는 계속 춤추고, 울고, 숨 쉬고, 웃으며 다시 꼿꼿이 일어설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