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제3장. 1 우주 언어

by 엄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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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건

드높은 하늘이 빈 들판 지평선에 내려앉을 때 온전히 나 자신 하나만으로 우주와 관계를 맺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실제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안에서 몸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땅도 하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화장실 가는 일까지 힘들어지는 날에는 파도가 철썩철썩 귓바퀴를 때려 오싹했어요.

밤안개가 짙게 낀 날이면 언제나 해안 통제선이 처졌었는데 어떻게 내가 거기 있게 된 건지……

조금 더 내달리면 익사도 가능한 경계선, 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밖에 없는 막다른 심정은 그야말로 아득했습니다.

그러므로 갱년기의 부조화는 더 늙기 전에 중심축을 바꾸라는 아해의 요구였던 거예요.

힘이 있을 때 우뚝 멈추고 ‘차이’를 만들라는 신호.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가만있을 일이 아니라 사건으로 끌어내어 점프하는 통과의례 말입니다.



'선 긋기'와 '괄호 치기'

늙은 인생은 젊을 때와 달리 주관식 문제이므로 마음의 중심축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특별히 두 가지 장치를 마련했어요.

어떻게 차크라 에너지를 받게 되었고 기능은 어떤 방식, 무엇에 의해 작동되는 것인지 답을 못 얻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문건을 뒤지고 또 뒤져서 관련 정보에 선을 잇고,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괄호 안에 넣어 휘둘리지 말아야 했지요.

유행을 따라가면 어울리기 쉽고

조류를 따라가면 뒤처지지 않고

여론을 따라가면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누구도 노후의 허무나 죽음에 대해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해야 했던 거예요.



나의 존엄성은 내가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비록 같은 꿈을 꿀 수 없어서 바깥에서는 모난 돌로, 집안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대도 내 인생에는 나의 이야기를 담아야 했어요.

하늘도 내 캐릭터가 보고 싶을 테니까요.

총이든, 칼이든, 실탄이든 연장 하나 없이 온전히 나라는 존재만으로 우뚝 서보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 자신이 돼보라고,

죽음만이 남았는데 무서울 것도 겁날 것도 없지 않냐고,

못할 게 뭐가 있냐고 갱년기가 되물어서 그렇게 해본 겁니다.


때마침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 나에게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리력 덕분이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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