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3장 1. Upright

by 엄도경




인간의 삶이 동화라고 했던 건

생김새가 아무래도 특이해서 좀 들여다보다가 제시문이 시키는 대로 닮은꼴을 골라 선을 그은 거예요. 나무에다가.

그랬던 것뿐인데 유전이 솟구치듯 동화 이야기가 팡팡 터졌습니다.



동물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니까 다른 게 보였어요.

동물들은 다들 사람의 기이한 형태를 보고 종잡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나무도 아닌 것이 나무처럼 곧게 뻗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게다가 올려다봐야 하니까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이 가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허리를 펴고 하늘을 향한 동물은 처음 봤을 테니까.

만화나 동화에나 나옴 직한 형상.

그런데 막상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잡아먹히지 않고 잡아먹으면서 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누아르 장면을 연기하다가, 푸른 대나무 숲으로 달려가야 했어요. 동물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에 진저리 치면서.


동물도, 식물도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건 몰랐을 겁니다.

동물과 식물의 속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복잡한 인간사회에서 고독을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어서 망연하게 고도를 기다리기만 하는 소외된 존재의 운명

어떻게 알겠어요.



얼마나 흔들렸을까. 반백 년을 평균의 중앙값도 아닌 끝자락에 머무는 게 최대의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내 삶에 독이 되는 일은 할 수가 없어서 어정쩡하게, 이탈되지도 않고 섞이지는 않는 지점에 숨었어요. 그 자리, 그 나이에 맞게 처신하면서.

그러다가 막다른 길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처음으로 '노인'에 닿았습니다.


(노화는 뭘까?

정체는 뭐야. 삶의 끝의 진실 말이야. 의도일까. 문제 자체일까.

자연현상이니 덮으라고. 엄마들처럼 나도 덮으라고? 엄마가 묻힌 땅에 자식이 묻히는 자연을 의심하는 거야. 당연한 일을?

그렇게 죽을 건데 뭘 그렇게 애를 썼지. 돈 탑을 쌓아 좋은 일도 없더라.

꿈꿀 때가 즐거운 거지. 좋았던 건 잠깐, 모든 건 다 한때였어.

그래도 자유로웠어. 사통팔달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정말 자유로워진 거 맞아? 손님 우대를 자유라 착각한 거 아닐까.

내가 없는 느낌이 이제 들거든. 높은 데 있었는데 땅으로 떨어져 박살 나서 믿었던 것들이 다 무너졌어.)


우리는 끝까지 다다르지 못할 거예요.

시위를 떠난 ‘제논의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한 것처럼 엄마 따라 나도, 아이들까지 영원히 어정쩡한 채로 멈춰있겠지요.

벌 받는 것도 아닌 겨울밤은 깊은 감옥 같았습니다.




하루 두 차례의 빛에너지.

처음에는 정체를 몰라서, 그다음은 도파민일지 엔돌핀일지 즐거운 호르몬이 머리에서 졸졸 흘러서 욕심내기 싫었어요. 섣불리 건드릴 사안도 아니고 귀한 버스를 탔는데 진실의 종점까지 가고 싶어서 그렇게 정했지요.


아해가 광합성 작용을 일으키나 봐요.

식물은 엽록소가 빛을 흡수해 생합성을 하고 동물은 그걸 먹고 에너지를 얻는데, 백회로 직접 빛에너지를 받으니까

그래서 영양 섭취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나이도 있는데 육식이나 달걀, 우유, 치즈 같은 걸 일절 먹지 않고 최소한의 섭생으로도 오히려 활기차고 건강해서,

이미 알고 있던 나를 지우고 백지에 다시 써보자고 생각했던 계기입니다.



나무처럼 빛에너지를 받게 된 게 ‘직립’ 때문이라면 아해가 벌이는 일련의 상황이 모두 설명되었어요.

어쩌면 끼워 맞추기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빛이든 모두 대자연에 속했고

형상의 조건이 맞춰져 빛을 받으니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합성하는 게 가능하다, 이러면 인과관계도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졌어요. 단지 식사 한 끼일 뿐인데……

인간의 삶은 빛의 동화작용(同化作用)이 선물한 동화(童話) 이야기였지요.


인간관계에는 대본(臺本)이 없어 갈등과 고비마다 한숨을 짓다가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지만

직립 upright 한 몸에 담긴 지문(地文)까지 꼼꼼히 살피면 아해가 답을 보여주지요.

웅크리던 마음을 위로 올려 초월하는 게 옳다고 말해주는 직립의 서사(敍事)

참을 수 없이 시끄럽고 분주한 세상으로부터 이제 홀로 돌아앉아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노년기란 장치가 긴 인생의 막(幕)을 내립니다.

장엄하게

도도히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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