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 이타적 유전자
용케도 내가 여기까지 왔네요.
알록달록 저 불야성, 굳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형형색색 반짝거리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내 안에 차곡차곡 쟁여진 천 대의 유전자가 끝까지 잡고 있었던 꿈의 풍경.
어떡하든 살고 싶어서, 또는 살아내다, 아니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밤마다 뒤척거렸을 천 개의 욕망을 보고 있는 거예요.
내 인생 스토리에도 그들의 희로애락,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리고 지금 꾸는 나의 꿈은 언젠가 천상의 별로 떠올라 있을 겁니다.
나의 모든 엄마는 시대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서 앞으로 단 한 발자국, 한 세대 한 걸음이 21세기에 도착하기까지
최선을 다한 누적의 결과를 내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 천 번째 발자국, 나의 한 걸음은 무엇에 맞서야 할까?
나는 항상 나하고 싸우고 있었어요.
엄마의 기준선에 닿기 위해 경주하고 있었으므로 노력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성공하려고 싸우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같아 보일 뿐 다른 것이었지요.
내가 원했던 건 나를 알아내고 싶은 거여서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했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근원에 닿을지 막막(漠漠)해, 나 자신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탑을 쌓아야 한다고 했어요.
남보다 빨리 더 높이 쌓는 방법을 가르치려 들었지요.
엄마의 말은 다 맞으면서도 왠지 틀린 것 같아서 우물쭈물했는데
하지만 어느 순간 확~
갈대처럼 흔들리고 자고 나면 말이 뒤바뀌는 심리의 지표에 닿게 되자, 이기적 유전자가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일구었다는 자각과 함께, 엄마의 지난 시간 모두가 이해되었습니다.
첫걸음, 첫 엄마는 세상이 가난하니까 발바닥이 불나게 돌아다녔습니다.
엊저녁 어둠을 뚫던 곡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엄마는 고물고물 몽당연필 같은 자식들 배 곯리지 않으려고 동으로 서로 번쩍번쩍.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어차피 죽는 거라지만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양식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배운 기술이 없어서 앞날이 모호(模糊)하니까 얼마나 아찔했을지……!.
사는 게 전쟁인데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 자라도 더 배워 진흙탕 같은 엄마의 삶으로부터 도망치라고 없는 살림에도 공부시키던 절절한 마음.
눈 한 번 꾹 감고 굽신굽신하면 내 새끼 책이 되고, 밥이 되고, 이불이 되는데 까짓 자존심이 뭐라고 준순(浚巡) 할까. 높은 사람 비유를 맞춰야지.
그런 엄마를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때 약을 사 먹이지 못해 가족이 죽어 나가는 판국이라 다니던 학교까지 중퇴시켜야 하는 애달픈 심정은 또 어떻고요.
그래도 그때가 훨씬 나았어요.
다 같이 가난했으니까 배는 고파도 친구와 낭만을 나눌 수 있었고, 이웃 간에도 따뜻했거든요.
지금은 세계화로 상대적 빈곤, 박탈감 때문에 어쩌면 더 막막(漠漠)할런지도 모릅니다.
변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자고 나면 지형이 바뀌어 앞날을 점치는 건 더 모호(模糊)해서, 저마다 섬처럼 고립된 인간관계.
있는 놈이 더한다고 이익 앞에서는 눈곱만큼의 준순(浚巡)도 없이 공익을 저버리고 사익을 챙기는 지식인이 많아져……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기술을 배우라고 그랬겠지요?
하지만 엄마가 몰랐거나, 알고도 모른 척했을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엄마들은 인심 좋은 마을에서 살았었어요, 이웃의 설움을 모른 척하지 않고 아껴둔 음식을 낮은 담 너머로 건네면서 정을 나누고, 아이들은 한데 어울려 동네 한 바퀴를 뛰면서 놀았거든요.
저마다 각자 잘 살면 국력이 커져서 다 같이 잘 살게 되는 줄 알고 순진하게 열심히 살아낸 걸, 999번째 엄마 눈에는 이기심만이 보였나 봅니다.
결국 엄마는 살던 대로 살겠다고 과거로 돌아갔어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준순(浚巡) 할 때마다 10⁻¹⁴ 수소핵이 터지듯 머릿속 뿌리가 사라져 밀랍인형이 되었습니다.
치매는 무서운 건 귀향을 망각하는 거였지요. 10⁻²⁰ 집에 가는 준비를 전혀 할 수 없으니 세상에 그처럼 허탈한 손실은 다시 없을 거예요.
이제 내 차례, 내가 인정해야 할 건 ‘양질 전환의 법칙’이었습니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서둘러 떠나면서도 양적 팽창을 이뤄낸 엄마들의 노고가
백 세 시대를 낳았으니, 기리는 의미에서라도 '질적 도약'을 향해 점프해야 했어요.
때맞춰 양자역학의 극미(極微) 세계가 펼쳐진 것도,
준순(浚巡)에 발목 잡히지 말고 뛰어넘어 '이타적 유전자'를 발현시키라는 시대의 요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이 세상도 바꿀 수 없고
내 아이의 마음도 바꿀 수 없어도
무사히 우주의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엄마가 한 줄로 연결되어 천상 세계에 진입할 테니, 그 광경이 얼마나 장관이겠어요.
"엄마,
은하철도 999호 탑승권 꼭 구할게요.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효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