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만 점의 비밀: 양(Quantity)이 질(Quality)을 만든다.
나는 작가들과 대화할 때나 스스로 작업을 구상할 때, 항상 이 난제 앞에서 고민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수정해서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과, 쉬지 않고 작업하며 고민하는 것 중 무엇이 정답일까?" 이 오랜 논쟁에 대해 심리학자 딘 사이먼턴(Dean Simonton) 교수는 수천 명의 과학자와 예술가를 분석한 끝에 명확한 데이터를 내놓았다. 바로 균등 확률의 법칙(Equal Odds Rule)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천재들이 만든 작품의 평균적인 질은 일반 작가들과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의 성공 타율(Hit Ratio)은 일정했다. 차이는 오직 총생산량(Total Output)에 있었다. 쉽게 말해, 걸작이 나올 확률이 1%라고 가정할 때, 100개를 만든 사람은 1개의 걸작을 남기지만, 10,000개를 만든 사람은 100개의 걸작을 남긴다는 뜻이다. 퀄리티는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확률의 영역이다.
그 가장 완벽한 증거가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우리는 그를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데이터가 말해주는 그는 지독한 다작왕이었다. 그는 평생 회화, 드로잉, 조각, 도자기 등 무려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걸작들은 그 5만 번의 시도 끝에 확률적으로 튀어나온 결과물들이다.
스타트업 씬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출시가 부끄럽지 않다면, 너무 늦게 출시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은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보며 수정하는 것이다. 피카소는 붓을 든 린 스타트업 경영자였다. 그는 완벽을 고민할 시간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일단 그렸다.
[Strategy 1] 훔쳐서 섞어라.
이것 역시 내가 오랫동안 풀고 싶었던 숙제였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 인생 전체를 통해 이에 대답했다. 그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영감이 아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는 하등한 예술로 취급받던 아프리카 가면 조각의 기괴한 형태를 가져왔고, 거기에 입체파라는 새로운 기하학적 해석을 섞었다. 그는 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비즈니스에서 이를 혁신(Innovation)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편집(Editing)에 가깝다. 아이폰이 터치스크린과 전화기, MP3를 결합했듯, 피카소는 아프리카 미술과 서양의 고전 회화를 결합해 큐비즘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를 만들었다. 많은 신진 작가들이 세상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창조는 서로 다른 맥락(Context)을 연결하는 것에서 나온다. 내 스타일이 정체되어 있다면, 전혀 다른 분야, 이를테면 3D 모델링이나 패션, 혹은 고고학 자료를 가져와 섞어보라. 훌륭한 예술가는 고상한 창작자가 아니라, 탁월한 편집자다.
[Strategy 2] 피벗(Pivot): 스타일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한 번 정한 스타일을 영원히 가져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걸 바꿨다가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변화를 막는다. 하지만 피카소는 미술사에서 가장 피벗(Pivot, 사업 전환)을 잘한 작가였다. 그는 청색 시대의 우울한 그림을 그리다가, 연애를 하며 장밋빛 시대로 갈아탔고, 다시 큐비즘으로, 나중에는 고전주의로 끊임없이 스타일을 바꿨다. 보통의 작가라면 내 스타일은 이거야라고 고집했겠지만, 피카소는 시장과 자신의 내면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스타일을 바꾸는 건 배신이 아니라 진화다. 피카소는 과거의 성공 문법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잘 팔릴 때조차 그 스타일을 파괴하고 새로운 실험을 했다. 고객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Brand Identity)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확장(Pivot)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롱런하는 작가의 필수 생존 전략이다.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
우리는 피카소의 걸작들만 미술관에서 본다. 하지만 수장고에는 그가 그렸다가 실패한, 혹은 습작 수준의 그림 수만 점이 잠들어 있다.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실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많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다. 압도적인 작업량이다. 1년에 그림을 5점 그리는 작가는 그림 하나하나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실패가 두렵다. 하지만 1년에 500점을 그리는 작가에게 실패작 50점은 그냥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성공 확률을 높이려 하지 말고, 시도 횟수를 늘려라. 예술도 비즈니스도 결국은 확률 게임이다. 당신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많이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피카소처럼 미친 듯이 그리고, 빠르게 실패하고, 다시 그려라.
[Data Insight] 팩트 체크 및 근거 자료
균등 확률의 법칙 (Equal Odds Rule) UC 데이비스의 심리학자 딘 사이먼턴(Dean Simonton) 교수의 논문 Scientific Genius(1988) 등에 소개된 개념. 창의적인 결과물의 질(Quality)은 생산된 총 양(Quantity)과 정비례한다는 법칙이다.
피카소의 생산량 데이터 (Guinness World Records) 기네스북 등재 기준, 피카소는 역사상 가장 다작을 한 예술가다. 회화: 13,500점 판화: 100,000점 책 삽화: 34,000점 조각 및 도자기: 300점 총합 15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는 그가 영감이 아니라 확률을 믿었던 전략가였음을 보여준다.
피카소의 시장 가치 그의 작품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000억 원($179 million)에 낙찰되었다. 다작을 하면 희소성이 떨어져 가격이 내려간다는 통념을 깨고, 그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전 세계 미술 시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