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베르메르와 로스코 : 에르메스 전략

결핍을 자극하는 희소성 과 하이엔드 전략

by Jake Han

01. 에르메스는 왜 재고가 없을까? (공급의 역설)


앞서 피카소 챕터에서 다작을 강조했지만, 정반대의 길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바로 요하네스 베르메르다. 그는 평생 30여 점의 그림만 남겼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게 그렸다가 아니다. 실패작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아트페어에서 수많은 신진 작가들의 부스를 본다.

안타깝게도 어떤 작가의 부스는 습작 처리장 같다. 잘 그려진 메인 작품 옆에,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는 그림들이 구색 맞추기 용으로 걸려 있다. 작가는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컬렉터는 거기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 작가는 기복이 심하구나. 내가 산 그림이 나중에 실패작 취급을 받으면 어쩌지?"

하이엔드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림은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의 모든 작품은 명품이 되었다. 에르메스 가방이 비싼 이유는 가죽이 좋아서가 아니라, 장인이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폐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피카소처럼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베르메르처럼 철저하게 숨겨라. 완벽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느니,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편이 브랜딩에 훨씬 유리하다. 결핍은 욕망을 만든다.



02. [Strategy 1] 기술(Tech)을 숨기지 마라, 그것은 당신의 무기다


베르메르의 그림이 사진처럼 정교한 이유는 그가 당대의 하이테크 기기였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렌즈를 통해 맺힌 상을 캔버스에 투사하고, 그 빛의 산란 효과까지 그대로 그려냈다. 당시에도 "기계를 쓰고 무슨 예술가냐"라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대의 작가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포토샵, 3D 툴, 혹은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가?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썼다고 해서 그의 가치가 떨어졌는가? 아니다. 그는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빛의 질감을 구현해냈다. 기술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당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당신의 손 기술만 고집하는 장인 정신도 훌륭하지만, 압도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 또한 현명한 경영자의 자세다.



03. [Strategy 2] 돈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걸리느냐'다 (Context의 통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은 좁은 원룸에 사는 대학생을 위한 그림이 아니다. 그의 거대한 색면 추상화는 높은 층고와 은은한 조명, 그리고 사색을 즐길 여유가 있는 0.1%의 슈퍼 리치를 정확히 겨냥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소비될 환경을 병적으로 통제했다.

그의 이런 하이엔드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1958년 '시그램 벽화 사건'이다. 당시 로스코는 뉴욕 최고의 빌딩에 들어설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벽화를 의뢰받았다. 계약금은 3만 5천 달러. 현재 가치로 약 30~4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기회였다. 하지만 로스코는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해 본 뒤, 계약을 파기하고 돈을 전액 돌려주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돈 많은 속물들이 밥이나 먹는 시끄러운 곳에 내 그림을 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명품의 태도다. 많은 작가가 당장의 판매에 급급해 자신의 그림이 어디에 걸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스코는 내 그림의 격을 떨어뜨리는 장소라면 수십억 원도 거절했다. 그 거절이 역설적으로 그의 가치를 폭등시켰다. "로스코는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작가"라는 인식이 박히면서, 컬렉터들은 그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을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특권으로 여기게 되었다. 당신의 그림은 어디에 걸려 있는가? 시장통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가, 아니면 대접받는 곳에 걸려 있는가? 작품이 놓이는 위치(Context)가 곧 작품의 가격(Price)을 결정한다.



04. [Strategy 3] 침묵을 파는 기술: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하라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는 도슨트가 필요 없다. 아니, 설명이 방해가 된다. 많은 작가가 자신의 그림에 담긴 철학을 설명하려 애쓴다. 캡션에 어려운 미학 용어를 늘어놓고, 작가 노트에 구구절절 사연을 쓴다. 하지만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설명이 필요한 상품은 미완성 상품이다.

진정한 간결함은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로스코는 구체적인 형태를 다 지워버리고 오직 색(Color)과 빛(Light)만 남겼다. 그는 관람객에게 이것을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저 그 압도적인 색채 안에서 느끼라고 권유했다. 컬렉터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시각적인 붓 터치 너머에 있는 가치(Value)를 산다. 로스코의 그림이 수백억 원에 팔리는 이유는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 값이 아니라, 그 그림이 공간에 부여하는 숭고한 침묵의 가치 때문이다.

당신의 작품이 말이 너무 많지는 않은가? 메시지를 전한다고 하면서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가?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웅변이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묘한 표정 하나로 수백 년간 사람들을 매혹시켰듯,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압도적인 분위기 하나로 승부하라. 그것이 하이엔드 시장의 언어다.




[Data Insight] 팩트 체크 및 근거 자료


베르메르의 작품 수와 가치 확인된 진품은 단 34~37점. 이 물리적 희소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지위를 갖는다. 이는 명품 브랜드가 한정판(Limited Edition)을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과 일치한다.


로스코 채플의 방문객 데이터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다. 특정 종교와 무관한 이 공간은 예술이 종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즈니스 모델이자 성지다. 로스코의 작품 <오렌지, 레드, 옐로>는 201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90억 원($86.9 million)에 낙찰되었다. 단순한 색면 처리가 아니라, 그가 구축한 숭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희소한 경험에 지불된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