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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25. 2020

들어는 봤니? 그 이름 ‘경광등’

제2 언어로 [수어]를 선택했다.

드라마 ‘심야식당(중국판)’ 포스터

 드라마 ‘심야식당’ 중 ‘마크의 딸’ 에피소드에서는 청각 장애(*이번 게시물에서는 농인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청각 장애’로 표기했다.)를 가진 부모와, 부모의 통/번역을 담당하는 자녀의(=코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s) 현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두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다.


 하나. 청각 장애를 가진 아빠 ‘마크’와 청인인 딸 ‘러러’(*혹시라도 드라마 스포일러를 하게 될 까봐 ‘코다’라는 명칭 대신 ‘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함께 은행에 간다. 입 모양은 읽을 수 있지만 글은 읽고 쓰지 못하는 ‘마크’가 은행원에게 의사 표현을 했으나 은행원은 이해하지 못한다. 은행원은 당황하며 ‘마크’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며 글을 써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마크’ 역시 당황한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러러’는 자신에게 천천히 말해주면 된다고 한다. 은행원이 ‘러러’에게, 다시 ‘러러’가 ‘마크’에게 전달한다.


 둘. ‘마크’와 ‘러러’는 한 공간에서 각자 다른 일을 한다. ‘마크’는 큰 소리로 노래를 듣는다. ‘러러’는 시끄럽다고 말하지만 뒤돌아 서있는 ‘마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러러’는 벽장 위 꺼내고 싶은 물건을 발견한다. 의자 위에 올라가 물건을 꺼내려고 하지만 팔이 닿지 않는다. 까치발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물건을 꺼내던 ‘러러’는 결국 크게 다친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애타게 ‘마크’를 부르지만, 마크는 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초조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야 ‘마크’가 알아차린다. 급하게 ‘러러’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크’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러러’의 상태에 대해 다급히 물어본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알아듣지 못한다. 심지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입 모양을 읽을 수도 없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이던 의사와 간호사는 결국 ‘마크’를 끌어낸다. 평상시였으면 ‘러러’가 두 세계를 연결했겠지만 불가능한 상황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세계에서 단절된다.


 위의 두 장면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몇 해 전 같은 집, 다른 방에 있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소리를 듣지 못해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주방에 있던 아내의 사고를 남편이 뒤늦게 발견했고,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또, 청각 장애를 가진 부부가 밤 사이 신생아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불안해 두 사람 사이에 아이를 두고서 교대로 잠을 청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러한 일상 속 크고 작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이 고안되었고, 고안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경광등’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한다. ‘경광등’ 익숙할 수도,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아! 이거!’ 할 것이다.


 경광등 :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차 위쪽에 다는 붉은빛을 발하는 등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경광등은 흔히 경찰차, 구급차 위 사이렌과 함께 반짝이는 등으로 사용된다.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것을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청각 장애인은 초인종 소리를 듣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똑똑 노크를 해도 듣기 어렵다. 하여 현관문 밖과 현관문 안(또는 집 안 어딘가에) 경광등을 설치한다. 초인종 옆 또는 초인종 대신 경광등이 울리는 버튼을 설치하고 누르면, 집 안의 경광등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띵동 소리 대신 반짝이는 빛으로 신호를 읽는다. 경광등은 집 밖의 손님을 알아차리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지만, 주거 안전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설치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단, 모든 청각 장애인에게 경광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거나 인공 와우 수술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청각 장애인도 있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와 더불어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고.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설치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공공장소나 야외에 있는 화장실에도 경광등을 설치하면 어떨까?


 간단한 예를 들자면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리 문을 똑똑 두드려도 안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이 청각 장애가 있다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밖에 있는 사람과 안에 있는 사람 모두 당황스럽고 불편해진다.


 화장실 문을 잠그면 사용 중’ 문구가 안내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서있는 사람만   있다. 


 조금 더 보태서 극적인 상황을 떠올려보자. 만약, 화장실이 있는 장소에 불이 나거나 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안내 방송만으로는 모두에게 전달될 수 없다. 크게 소리를 치고 문을 두드려도 누군가는 대처하지 못한 채 피해를 입게 된다. 최소한 지하철, 백화점, 영화관은 의무적으로 설치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노래방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를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예전에는 화재경보기에서 사이렌만 울렸다. 하지만 지금은 화재가 발생하면 노래방 기계가 자동으로 꺼지면서 사이렌 소리와 시각 경보가 함께 울린다. 위험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모두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끔 발전했다.


 진동벨 없이 직원의 호명으로 음료가 제공되는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나, 음식점에 직접 전화를 해서 메뉴와 집 주소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 각종 배달 애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부와 소수를 위함일지라도 결국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두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나와 ‘다른’ 불편함이 있다고 해서 안쓰러운 눈으로 보거나 가엽게 여기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불편함이 언젠가 나의 불편함이 될 수 있고, 내 주변 누군가에게는 당장의 현실일 수 있기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다. 그것이 불평, 불만이든 문제 제기든, 제안이든, 민원이든. 당장 내게 닥친 불편함, 불공평함이 아니라고 해서 입 다물다 보면 정작 내가 부당한 상황에 놓일 때 아무도 목소리를 내주지 않겠지.


 결국 그의 일이 나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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