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로도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by 안녕반짝
P20180113_102715157_EDBD32DA-EAE9-47AA-A79D-CB5BACE8423C.jpg



왼손으로 작은 약병을 거꾸로 뒤집는 동안 오른손으로는 주사기의 뚜껑을 연다. 모든 물건을 놓치지 않도록 쥐어야 하지만 그것들을 성스러운 빛으로부터 가리면 안 되기라도 하듯 네 손가락은 물건의 뒤쪽에 머물러야먄 한다. 처방전 스티커에 명시된 정확한 양의 약을 주삿바늘로 뽑아낼 때 밀리미터 단위도 틀리지 않도록 눈이 액체 눈금과 평행을 이루도록 주의해야 한다. 왼손의 근육을 이용해서 약병을 들어올려 주삿바늘에서 빼내는 동시에 오른손에서 힘을 빼서 주사기가 약병과 분리되는 순간 약이 바늘 끝에서 한 방울이라도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주삿바늘을 내 반대편으로 늘인 수액주머니의 주입구에 찔러 넣는다. 주삿바늘을 위로 올려빼고 나면 그 바늘은 쓸모가 없어진다. 주사기의 밀대를 지금 막 주사한 용량 위치로 다시 움직인 다음 작업대 밖에 있는 빈 트레이에 놓는다. 방금 주사한 약병을 조심스럽게 봉인한 다음 사용한 주사기 오른편에 놓는다. 처방전에 나온 약은 모두 이 과정을 반복해서 수액 주머니에 주입한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뚜껑으로 수액 주머니를 재밀봉하고, 같은 트레이에 주삿바늘의 반대편을 향하도록 놓는다.


그런 다음 장갑을 벗고, 펜을 들고 주머니에 붙은 스티커 한 귀퉁이에 내 약자를 적어넣고, 무언지 모를 책임을 일부 나눠 가진다. 그 트레이를 선임 약사 앞에 놓인 트레이에 놓는다. 그는 모든 스티커, 주사기, 약병을 하나하나 꼼꼼히 재확인해서 처방과 내용물이 틀리지 않는지 확인한다. 실수가 발견되면 수액 주머니를 폐기처분하고, 처방전을 다시 인쇄해서 서둘러 약을 준비한다. 그럴 때면 종신 복역수들이 나선다.


그날이 내가 실험실에서 보내는 첫날이든 아니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연습도 없다. 단지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못했는지만이 중요하다. 약국에서는 텔레타이프에서 누군가 더 간단한 처방전만 계속 골라가지 못하게 하고, 각 약병의 내용물을 모두 사용한 다음 새 병을 여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하는 동안 끝없이 모니터링을 한다. 그리고 작은 실수로도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필요한 시간에 맞춰 준비할 수 있는 수액의 양은 늘 처방전 수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허덕였다. 병가를 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더 빨리 앨해야 하고 더 허덕여야만 했다.


이 끔찍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범죄나자 기계가 아니라는 걸 주장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우리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또다른 무리의 일에 지친 사람들이 보내는 끊임없는 처방전들이 있을 뿐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는 사실이이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도와야 한다. 25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그 시각이 잘못된 세계관이라고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랩 걸 > 68~69쪽



작업 과정에서 가장 큰 실수는 멸균된 공간에서 재채기를 하거나 체액을 흩뿌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숨을 내쉬는 행위 자체가 기침에 가까운 리디아가 약품을 주입하는 동안에는 호흡을 거의 슈퍼맨처럼 조절했다.



<랩 걸> 70쪽




- 평소라면 이 문장들을 그냥 무신경하게 읽었을까? 읽는 내내 이대 목동 병원에서 사망한 신생아들이 생각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문장들을 꼼꼼히 읽는 것밖에 없었다. 이 문장들을 읽을 날, 온라인 뉴스에 신생아 사망 원인이 '오염 주사로 인한 패혈증'이란 기사를 봤다. 참담했다.



내 아이들은 모두 태어나자마자 광주 전남대학교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첫 아이는 33주 만에 태어나 24일을 중환자실에 있었고 둘째는 36주 5일 만에 태어나 보름 만에 퇴원했지만 상태는 훨씬 더 좋지 않았다. 태동이 없어 병원에 갔고 응급수술이 이어졌다. 아이는 무호흡으로 태어났고 약간의 뇌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입원한 아이들 중 가장 위중했다. 둘째 아이 면회 갔을 땐 가장 안쪽, 격리구역에 있었고 3일을 버티고 버텨 위험 순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기적처럼 태어날 때 입었던 뇌손상을 덮은 채 건강하게 크고 있다. 고집이 세 나를 힘들게 할 때면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때의 기도는 하나였다. 건강하게만 커달라고 빌고 빌었다.



하루에 한 번, 30분밖에 허락되지 않았던 면회 시간을 기억한다. 수술에서 회복되지 않아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아이를 보러 가던 그 길. 들어가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다시 소독을 하고, 방문자용 옷을 입고 마스크를 끼고 들어간다. 어두침침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 보다 기계음이 더 많이 들리는 인큐베이터 하나하나를 지나 내 아이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걸었다. 남편과 아이 앞에서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우리는 복도에서부터 울면서 갔다. 온갖 장치를 달고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면서도 한 마디도 못하고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며 30분을 채우고 왔던 시간들. 남편이나 조부모 없이 혼자 면회 가는 날이면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과 울기 싫어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면서도 면회를 하기 위해 일찍 병실을 나섰다. 30분의 면회 시간동안 다리 아픈 줄도 모른 채 아이만 보다 잠시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보곤 했었다. 내 아이보다 더 작게 태어나서 크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가 면회 오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잠시 기도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4명이나 사망한 기사를 봤을 때 외면했다. 어떤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지 알고, 보호자의 입장에서 그 안의 풍경을 봤기 때문에 외면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아이들이 네 명이나 사망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사 밑에 달린 덧글 하나가 더 무서웠다. 만약 한 명이 죽었다면 병원과실로 인정했을까 하는 덧글. 너무나 무서웠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우리는 한없이 약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잔인함을 겪어야 하고 지켜봐야 하는가. 이런 말조차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쏟아내는 이 말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쏟아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부모 품에 제대로 안겨 보지도 못한 네 명의 아이들이 사랑 받았던 기억만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집을 짓고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순간부터 부모에게 받았을 사랑만 기억했으면 싶었다. 아기들이 그렇게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한 규명은 너희들의 몫이 아니니 부디 사랑받았던 기억만 안고 있으라고 말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두루뭉술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말인지 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도 할 수가 없다. 다만, 거짓과 책임회피와 진실을 덮는 규명이 드러나게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건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애도니까. 그러나 이 마음도 이내 잊힐지 모른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다만, 내 마음속에 스쳐가는 일이었대도, 상처로 남아 있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그 욱신거림을 돌아보겠노라 말해주고 싶다. 때론 기억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이 모든 쓸데없는 말들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