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건 정말 인생을 걸고 할 만하구나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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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읽어가겠다>를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더 오랫동안 내 책장에 묵혀 있었을지도 몰랐다. <읽어가겠다>에 실린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먼저 읽고 싶었고 바로 책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저자의 책을 완독했다. 저자의 <체인지링>을 읽고 난 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토마스 만의 경우처럼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지링>은 내게 좀 어려웠는데 읽고 난 뒤에 나도 모르게 팬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읽지도 않으면서 저자의 책을 한 권씩 모았고 <읽어가겠다> 덕분에 이 책을 완독하게 되어서 뭔지 모르게 마음이 홀가분했다. 어떤 면에선 이 책의 내용도 뭔가를 마무리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청년시절에 마무리 짓지 못했던 일을 노년에 다시 매듭지은 것 같아서 한 사건으로 저자의 인생을 모두 들여다 본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했다.


아마 <읽어가겠다>에서 이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로 읽었다면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독했더라도 두루뭉술하게 기억의 끈을 이어갈 뿐, 큰 줄거리를 잡지 못한 채 여전히 저자의 책은 어렵다며 한숨을 쉬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읽어가겠다>의 김탁환 작가는 이 책을 몇 번 읽은 뒤에 독자에게 들려주듯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게 되었을 나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뭔가 모호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읽어가겠다>를 꺼내서 줄거리와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읽었다.


김탁환 작가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소설이란 건 정말 인생을 걸고 할 만하구나, 한 오십 년 하면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또한 ‘젊은 날을 회고하는 소설 형식을 갖춘 다른 소설보다 이 작품은 두세 단계 더 수준이 높은 것 같’다고도 했다. 정독을 하며 완독하긴 했지만 김탁환 작가처럼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읽었던 건 아니다. 젊은 날의 사건, 그 사건이 현재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굉장히 느리고 섬세하고 세세하게 쓴 것 같단 느낌만 들었다.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기록 문학이 아닌가란 착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세세함에 길을 잃기 일쑤였다.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밸 리>란 시로 얽혀 들어가는 친구 고모리와의 만남, 그리고 그가 제안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 당시의 유명한 아역 스타 사쿠라와도 교류를 하게 되지만 자폐를 앓는 아들 히카리의 행동을 스텝 중 한사람이 찍게 되고 그 사진이 오해의 발단이 되고, 그 스텝이 따로 만들고 있던 포르노 테이프 때문에 결국 영화는 엎어지고 만다.


엎어진 영화는 그렇다 쳐도 저자와 친구 고모리가 결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배우 사쿠라가 <애너벨 리>란 영화를 찍기 즈음부터 오랫동안 아팠던 이유, 사쿠라가 아닌 그녀의 남편이 감춰왔던 비밀을 고모리가 사쿠라 자신에게 폭로한 것이다. 물론 사쿠라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둘은 결별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뒤에 고모리는 다시 한 번 저자의 앞에 나타나서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간단한 줄거린 것 같으나, 소설 속에서 독자는 시간도 공간도 뛰어 넘을 수 있지만 저자는 생각처럼 간단하게 그 이야기를 흘러가게 두지 않는다. 그 오랜 세월의 공백을 느껴보라는 듯, 느리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만들었던 연극, 고향에 얽힌 고통까지 풀어놓다 보니 가끔 내가 이 이야기를 어느 시대에 놓고 봐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자가 이 소설을 ‘영화소설’이라고 칭했던 것처럼,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고 가정하면 자연스럽게 영상들이 그려진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리 알고 읽었던 줄거리의 힘도 컸고, 잊혔던 영화를 다시 만들기로 하는 결론에 다다르면서 치유에 힘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저자와 고모리의 우정, 사쿠라의 고통, 저자의 고향 땅에서 여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까지, 그들이 영화를 완성하게 되면 이 모든 게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결과가 아닌 과정이 세세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완성 여부를 떠나 30년이 지나서 어긋나 버렸던 일을 완성 지으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생의 마지막에 있는 고모리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거물이 되어버렸지만 중년의 아들을 여전히 책임져야 하는 저자, 오랜 시간 겪었던 고통을 이 영화를 완성함으로써 치유하고 승화시키려는 사쿠라의 의지와 만남 앞에서 처연하면서도 경건해지는 이유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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