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책을 읽고 난 느낌에 줄거리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줄거리를 간추려 낸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작 줄거리로만 채워진 리뷰라는 느낌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느낌을 남기고 있지만 이 책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줄거리도 제대로 간추려 지지 않고 느낌을 드러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작품을 충분히 숙독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특한 작품을 만나고 말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저자의 다양한 문학세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능글맞을 만큼 유머러스하고 진한 묘사는 익히 알고 있다. 에세이와 소설에서 드러나는 그 문체가 좋아 저자의 책을 여러 권 구비해 놓았음에도(읽은 책보다 못 읽은 책이 더 많지만) 이 작품은 그런 문체와 독특한 구상이 만나 탄생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러니 꽃 피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글 따위를 쓰고 있을 수가 없다. 폭포 앞에서 오줌발 자랑하기요, 피라미드 앞에서 집안 제사 지내는 격이다. (7~8쪽)
첫 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언어의 향연 앞에서 이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다 읽고 난 다음에 그럴듯한 느낌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이런 문장들을 즐기기만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책 내용은 몽롱한 기억의 언저리로 사라져 버렸고 짤막짤막한 작은 이야기들이 모아지기는커녕 한데 섞여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엮은 저자가 신기할 뿐 나는 그저 지켜보면서 따가라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어떤 작가가 좋아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모든 작품을 다 사랑할 수 없고, 모두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은 초기작부터 차근차근 읽으면서 작품의 변화를 탐색하며 즐기는 거라는 결론을 최근에 얻었다. 성석제 작가에 대한 애정이 샘솟기도 전에 뒤죽박죽 읽어 댄 작품으로(그렇게 많은 작품을 읽은 것도 아니지만^^) 조금은 혼란스러워졌지만 여전히 나는 저자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읽을 것이고 나를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더라도 꿋꿋하게 다음 작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