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직하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 것이다. 그래도 정직

by 안녕반짝
P20180512_175211475_366A8665-D571-44B5-8C04-0C33B25F74AA.jpg


네가 정직하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라. 네가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이 너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오늘 선을 행하더라도 내일이면 잊힐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16쪽 _테레사 수녀의 침대 머리맡 기도문


정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용기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드러낸 정직과 용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면, 과연 용기 낼 수 있을까? 책의 초반에 나오는 이 기도문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방대한 분량에다 아이스하키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단순하게 스포츠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아이스하키가 베어타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서서히 알아가면서 잊고 있었다. 아이스하키와 상관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스하키를 좋아하고, 그것이 전부고,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치르게 될 중요한 경기를 통해 베어타운이 다시 살아나고, 스포츠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성취감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라 생각했다. 그 뒤에 정치와 경제, 성과에 대한 세세한 것들은 어른들의 몫으로 남겨두더라도 아이들은 오로지 아이스하키를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일궈나갈 거라고 말이다.

스포츠 세계를 잘 모르지만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응원하고 북돋워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안다. 하지만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하는 농담과 텃세, 차별은 이게 아이스하키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헷갈렸다. 성과를 내야 하는 스포츠기에 아이들의 인성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들이 때론 선을 넘어 과하게 나가버릴까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갑작스레, 그리고 심각하고 충격적으로 닥쳤다.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케빈이 하키단 단장 딸인 마야를 성폭행 하면서 모든 것이 얽히고 얽혀 버린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256쪽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중요한 경기가 있던 날 케빈은 경찰에 연행된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마야가 케빈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베어타운은 비난의 화살을 케빈이 아닌 마야에게 돌린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 열다섯의 소녀가 그런 엄청난 일을 당했는데도, 케빈은 아이스하키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그럴 리 없다고 여겨 모든 이유를 소녀 탓으로 돌려버린다. 변호사인 마야 엄마는 케빈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아이스하키팀에 엄청난 후원을 하는 케빈의 아빠도 무죄를 받아 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야의 엄마는 세상의 시선보다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처절해서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자네가 이삼 년 더 그걸 붙잡고 있었다면 남자답게 지는 법을 배웠을지 모르니까. 자네 아들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그랬을 경우 남자답게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배웠을지 모르니까. 464쪽

케빈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증거가 없으니 무조건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도 돈으로 무마하려 할 때, 케빈의 아빠에게 하는 따끔한 말이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목격한 아맛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케빈이 한 행동을 명확하게 밝혔음에도 끝내 케빈의 아빠를 비롯한 일부 어른들은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마야가 직접 케빈과 맞섰고, 그 장면이 너무 한스럽고 슬펐다. 법과 사회와 어른들이 해줘야 할 일을 하지 못해 목숨을 걸고 맞섰던 장면. 그 모든 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잠시 호감을 느껴 케빈을 따라갔다는 이유만으로, 케빈이 뛰어난 아이스하키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했다. 그 과정이 우리가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현실과 소름끼치게 비슷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메시지는 정직과 용기라고 믿었다. 마야와 아맛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묻혀버렸을 사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어떠한 이유로라도 케빈의 잘못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케빈의 잘못 이면에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편견이 함께 묻어 있어 섬뜩했다. 언제라도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론을 움직여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악함이 내제 된 게 인간의 내면이라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그래서 매일 나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먼저 정직하게 해 달라고, 불의 앞에서 진정한 용기를 내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기도가 부디 헛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keyword
안녕반짝 교육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685
매거진의 이전글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다소 불편하지만 낭만적인 것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