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나서 하루키의 초기 작품들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키 작품을 9일 동안 9권을 읽을 정도로 모든 작품을 섭렵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너무 하루키 작품만 읽다가 온통 하루키로 물들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하던 차에 이른 출산을 했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던 독서는 멈춰지고 말았다. 문득 그렇게 하루키 작품에 빠져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하루키 문학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던 지인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후기 작품을 읽고 시들했던 나의 반응이 그 지인의 열정적인 토로 속에 호기심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초기작을 읽다 보니 지인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이 변화하는 것이 신기해 하루키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속도였다면 지난 3월에 하루키 책을 모두 읽어버렸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9권을 읽고도 아직 읽지 않은 5권을 쌓아놓고 이제나 저제나 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너무 빡빡하게 읽어 쉼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그런 면에서 『1973년의 핀볼』은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인의 말을 따르자면 이 소설은 '쥐' 시리즈의 연속인 『양을 쫓는 모험』으로 가는 과도기 같은 작품이라고 했는데, 나름 신선하고 강렬했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보다 내용의 색깔이 옅었고 더 몽롱했던 건 사실이다.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에다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끝나버린 삶을 담은 작품이라고 했는데 웬일인지 슬픔과 좌절감은 깊이 느낄 수 없었다. 주인공이 낱낱이 상처를 드러내고 어떠한 마음인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핀볼에 빠졌던 것처럼 방황하게 만든 본질의 주변을 맴도는 기분이었다. 분명 힘들어하고 방황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주려 애쓰는 모습이지만 상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려 하지 않은 느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만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 나도 내 자신과 마주하지 않으려 33년간 피하고 있지 않았던가.
일명 '쥐' 시리즈라 불리는 주인공 '나'가 계속 등장해서인지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계속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한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꾸렸던 인물들과 배경, 제각각의 느낌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고 서운할 때가 있는데 이런 시리즈들은 일단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그래서 단편집은 늘 장편보다 읽기가 더 힘들고 느낌을 남긴다는 것이 버거운데, 주인공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범상치 않을지라도 내 곁에 머무르는 것 같아 다음 작품을 읽을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힘겹게 그 과정을 겪어오면서 이 모든 게 꿈만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환상. 그 과정을 잘 지나온 주인공에게 더 나은 날들이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그 과정 속에 속한 사람이라 쉽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 때문에 그의 다음 이야기를 만날 용기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 우린 동행자라고 위로를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