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종종 사람들이 주장하듯 최후가 아니라 시작에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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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존 버거의 글은 녹록치 않다. 집중하지 않으면 딴 생각으로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가장 집중력이 좋을 때 지칠 때까지 읽는데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단락으로 이뤄져있어 여러 번 나눠 읽었다.


존 버거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챕터 하나하나가 이뤄내는 그림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을 드나들 듯, 아니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누비듯 그의 글은 언어위에서 춤춘다고 밖에 묘사할 길이 없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썼듯이 시각적인 부분, 혹은 그 너머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소소하게 수술 경과를 적는가하면 보이는 것을 너머 관념을 새롭게 건드는 글도 있다. 백내장 수술을 하지 않고는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기에 어렵지만 공감이 가는 글귀들이 많았다.


반면 어둠은 종종 사람들이 주장하듯 최후가 아니라 시작에 앞선 전주곡이다. 이것이 여전히 윤곽조차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내 왼쪽 눈이 나에게 말해 주는 바다. (14쪽)


눈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 그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본다던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에 극단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더 멀리 보려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짧은 글에 그림을 그린 셀축 데미렐의 그림도 그런 느낌이었다. 무심한 듯 쓱쓱 그려나가는가 하면 눈을 여러 가지 사물로 변형시켜 저자의 글에 부합시키고자 했다. 여러 번 나눠 읽은 이유가 컸지만 저자의 짤막한 글과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이질감이 들거나 어렵다는 느낌이 다분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저자가 백내장 수술을 한 모든 과정을 본 것 같지만 상세함 없이 뭉뚱그려 그러한 사실만 인지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단순히 백내장에 걸려 수술했다가 아닌 백내장으로 인해 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랬기에 때론 그의 글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그를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것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저자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언제가 내가 저자의 글을 온전히 읽을 내공이 되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기에 현재 절망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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