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무심코 지나쳐버릴 만큼 단순하지

무라카미 하루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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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는 마력이 있다. 한번 빠져들자 도무지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에세이집만 해도 그렇다. 책장에서 8개월 정도 묵혀 있을 때조차 쳐다볼 생각을 못했는데 한번 손에 잡자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저자가 꽤 오랜 시간 연재해서 쓴 글임에도 마치 어제 오늘 쓴 글 인양 달게 읽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여백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에세이도 어쩜 이렇게 재밌게 쓸까, 꽤 엉뚱하면서도 솔직한 웃음을 유발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정도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비교적 짧은 글들이 실려 있어서 그런지 두께감을 느낄 사이 없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분명 많은 이야기들을 읽었고, 독특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났음에도 느낌을 남긴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꼬박꼬박 쌓아올린 연재들을 모은 글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재미로만 읽을 수 없는 것이 글이기에 재미의 유무를 떠나니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다. 순간순간 느꼈던 스쳐가는 생각들과 글에 담긴 저자의 수많은 상념들을 하나로 정리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연재를 했던 시간에 비해 단시간에 읽어버려서 그런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에게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무심코 지나쳐버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매일매일이 지겹다고, 무의미하다고 넘겨버리는 하루를 돌아봐도 분명 그 안에는 내가 쌓아올리고 살아가는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딴 생각에 빠져, 혹은 나의 일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간과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냥 간과만 해 버린다면 큰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마저 상실해 버린다면 그건 큰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가도 아니며 특별한 사람도 아니기에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일을 구구절절 남겨봐야 읽어줄 이가 적다는 것을 안다. 저자도 자신의 글을 두고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유명인의 유무를 떠나 삶의 기록이라는 것이 특별하지 않음을, 혹은 거창하지 않게 소소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글 속에는 사소한 것부터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낸 글까지 다양하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그 글을 마주함으로써 때론 긍정의 시선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드러내며 생소함을 느끼기도 한다.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는 거부감이 깃든 이질감이 아닌, 타인의 생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그의 일상이 나와는 색채는 다를지라도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고, 어제의 일조차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이 책 내용이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있다. 언제까지 이 열정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초조할 필요도 없고 목표를 가지고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그의 글이 다가왔다 내 안에 머물다 빠져나가는 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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