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사각지대'의 상상물을 보는 듯한 기분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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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는 역시나 제목이 독특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였다. 지인이 추천해 준 에세이집을 순차적으로 읽고 있는데 독서에 물꼬가 트자 어느 책을 집어도 저자와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읽는 것. 어려우면서도 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한 셈이다.


이 책 역시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이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기존의 에세이집과는 다르게 컬러풀한 일러스트가 단연 눈에 띈다. 그동안은 연재 중간 중간에 귀엽고 소박하게 그려진 그림이 전부였는데 이 책에서는 두 면을 차지할 정도의 일러스트가 많다. 1983년에 발표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와 1986년에 발표한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를 묶은 책인데 화려한 일러스트들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시원하게 해준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읽다보면 마치 『빵가게 재습격』을 읽는 것처럼 '치명적인 사각지대'의 상상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처럼 읽고 읽다 보면 상상이었다고 사과를 하는가 하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 빠져있으면 글을 휙 끝내놓고 사라져버려 독자만 덩그러니 남겨놓기도 한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되는 글이나 상상력의 연장선장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대충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고 다시 내보냈다는 말이다.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들이 실려 있었다. 여전히 일상 얘기, 영화, 음악 얘기 등 경험과 사고의 다양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공감가는 글도 있고 문화와 생활환경, 경험이 달라 생소하면서도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글들이 있다. 그런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풀어놓은 소소하면서도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침대에 벌렁 누워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글. 킥킥대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기도 하며, 저자가 말한 음악이나 책을 검색해 보면서 느긋하게 독서하는 일. 최근에 이런 독서가 없었기에 이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동안 저자의 책 7권을 내리 읽고 있었더니 활자의 압박 때문인지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잠시 책을 내려놓고 빈둥거리자니 이런 내가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7권을 내리 읽다니. 그것도 며칠 만에. 이런 생각 때문에 즐거우면서도 생경한 의아함에 사로잡혀 있다. 당분간 이런 독서가 지속되겠지만 이 또한 쉬이 찾아온 기회가 아니니 최대한 만끽하려 한다. 어차피 책 내용을 속속들이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뿐더러 자유 독서를 즐기고 있는 요즘이기에 저자와의 조우가 적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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