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실패도 잦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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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는데 분명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로 굳혀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 대한 거부감은 몇 편의 작품을 읽어도 사그라지지 않았고 다음 작품을 독파하는데 늘 망설이게 했다. 우연히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초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렇게 읽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덕분에 책장에 묵혀있던 저자의 에세이집을 꺼내들게 된 것이다. 독서란 것이 신기한 게 저자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자 그간 책장에 묵혀온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저력을 발휘하게 된다. 저자의 에세이 다섯 권이 나란히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속도를 늦춰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이틀 만에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다.


다섯 권의 에세이집 중에서 뭘 읽을지 몰라 가장 얇은 책을 읽고 있자니 저자에 대한 흥이 이어지지 않아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이 책을 먼저 읽어보라는 말이 돌아와 펼쳐들었다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빠져들어 버렸다. 과거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책을 읽다 킥킥대기도 했고, 오로지 저자의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무척 재밌고 부담이 없었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은 생각을 단박에 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아무런 편견 없이 즐겁게 읽었다. 그렇게 읽다보니 심각하게 이 책을 바라보지 않게 되어서 좋았고, 무언가 메시지를 찾으려 혈안 되어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이려는 노력이 없어서 좋았다. 책을 덮고 나서도 딱히 무언가 기억에 남는다던가, 좋았던 부분을 열거해 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저자의 책을 이렇게 달게 읽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떤 작가의 책을 마주할 때 첫 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통해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내가 20대 초반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으니 거부감을 가지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싶었다. 아마 초기작부터 차근차근 읽었다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거부감이 이 정도까지 오래도록 지속되진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작가들이 몇 명 되는데 기회가 되면 그네들의 초기작부터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이제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그러모으고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난다. 내가 읽은 이 책, 그리고 읽고 있는 책들만 봐도 독서할 맛이 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서가 주는 기쁨, 저자에 대한 깨진 편견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것 중 하나는 일기였다. 20대 초반까지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나름 일기를 남겼었는데 심히 귀찮아 쓰기를 관둔지 오래다. 그래서 가끔 예전에 쓴 일기를 꺼내보거나, 수기로 쓴 독후감 노트를 볼 때면 이게 정말 나인가 싶어 놀랄 때가 많다. 그래서 이 글들을 보고 있자니 일기가 생각이 났고,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좇아가다 보니 나와 비슷한 부분을 발견하고 '오호라!' 하고 감탄사를 터트리는 일도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조금씩 찾아가는 성격이라, 무언가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실패도 잦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62~63쪽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나에게 음악이 그랬고, 독서도 그랬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어 실패를 해도 금방 무마가 되었는데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힘겹게 산 음반이 실패한 경우에는 한동안 기운이 빠져있기도 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이제야 받게 된 것이다. 저자의 소설만 읽고 이런 에세이를 접하지 않았다면,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세세한 생각과 사고들을 교감할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저자의 모든 글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생각하자 오히려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넓어진 기분이 든다.


나의 일상을 일일이 기록한다면 쓰는 나도, 읽는 이도 분명 지루할 거라 생각한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떠한 목적이 있으면 글은 분명 달라진다는데 공감한다. 저자가 연재를 목적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해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 아닐까?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지만 저자가 글을 쓰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면 깨달은 점이다. 한동안 침체되었던 독서에 불을 붙여준 저자가 고맙기도 하고, 이러다 저자의 작품은 완독하는 게 아닐까란 상상까지 하다 보니 책장을 넘기는 손이 바빠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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