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 화이트 <샬롯의 거미줄>
며칠 전 꿈에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나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진지하게 무슨 충고를 해주었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 친구가 왜 꿈에 나왔는지 궁금증만 더해갔다. 마음 한켠이 싸해지는 것은 지금은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을 수 없을 뿐더러 왜 연락이 끊겼는지, 기억조차 희미하기 때문이다. 아마 사소한 이유일 것이며 그렇게 헤어진 몇몇의 친구들이 함께 떠올랐다. 당시에는 우리의 우정이 오래오래 갈 거라 생각했었는데 살다보면 별거 아닌 일에도 토라지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잠시 씁쓸해지고 말았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에 더 힘듦을 느낀다. 먼저는 내가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내 주변의 친구와 그간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초원의 집』 시리즈에 삽화를 그렸던 삽화가를 찾아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내용도, 그림도 너무 좋아 반하고 말았다. 마음이 찡해지는 감동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난 것 같아 반가운 마음도 앞섰다.
『샬롯의 거미줄』은 거미 샬롯과 돼지 윌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떻게 거미와 돼지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그것도 진한 감동까지 주었는지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의아할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이 만났을 때는 안도했지만(윌버가 간절히 친구를 찾고 있을 때 샬롯이 '짠'하고 나타나 주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키워지는 돼지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이별을 만난 시점부터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샬롯은 윌버를 꿋꿋하게 지켜주었고 그런 샬롯의 마음을 윌버는 결코 잊지 않았다. 샬롯이 윌버의 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자식들과 긴 우정을 이어갔다.
윌버는 병약하게 태어난 탓에 어릴 때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너무 작게 태어나서 죽을 뻔 할 윌버를 부당하다며 8살 소녀 펀이 직접 키우는 조건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윌버가 더 커지자 삼촌 댁에 팔았는데 펀은 늘 윌버를 보러 삼촌댁에 들렀다. 윌버는 어릴 적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를 넘겼지만 커갈수록 동물로써의 죽음의 위기를 맛보아야 했는데 그때 샬롯이 나타난다. 외롭고 친구가 간절히 필요했던 윌버에게 샬롯은 단순한 친구를 넘어 운명 같은 거미였다. 윌버의 머리 위에 거미줄을 치고 살고 있는 샬롯은 윌버의 친구가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윌버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농장에서 자란 동물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잡아먹힐 위험에 빠져있을 때 샬롯은 자신의 거미줄에 윌버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글씨를 나타내 윌버를 위기에서 구한다. '대단한 돼지'라고 샬롯이 밤새도록 짠 거미줄의 글씨를 보고 계시라 믿는 사람들은 윌버를 함부로 할 수 없을 뿐더러 그 지역에서 그야말로 '대단한 돼지'가 된다. 샬롯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근사한' 돼지까지 만드는데 그로인해 윌버는 품평회까지 나가게 된다. 품평회에서 제대로 유명세를 태워 윌버의 목숨을 구하기로 한 샬롯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특별상을 거머쥔 윌버는 더욱 멋있는 돼지가 된다. 샬롯이 농장에서 처음 보여준 글씨부터 품평회의 글씨까지 고뇌하고 고뇌해서 윌버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샬롯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사히 품평회를 마치고 샬롯은 수많은 자신의 새끼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다. 윌버는 샬롯을 잃어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샬롯이 남긴 새끼들을 지키는 게 자신의 의무라 생각하고 무사히 농장으로 데려온다. 수많은 새끼들이 부화하자마자 윌버의 곁을 떠났지만 샬롯이 그러했듯이 몇몇 새끼 거미들은 윌버의 곁에 머물며 샬롯과의 우정을 끈을 놓지 않게 해주었다. 거미와 돼지의 우정, 샬롯의 섬세한 마음과 윌버의 천진난만하면서도 진실 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그들의 우정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우정을 드러내 보았는지,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는지 되돌아보자 초라해졌다. 내 안엔 온통 나뿐이라서 타인을 들일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의 조건에는 나이, 성별, 국경 같은 인간이 나눈 분류가 장벽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것들을 뛰어넘을 때 더 멋진 모습을 많이 본 것 같다. 샬롯과 윌버의 우정만 보더라도 그들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부터 죽음 뒤에도 이어지는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연히 들춰본 책에서 예기치 못한 감동을 얻었듯이 억지라도 내 삶에도 그런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으므로 내가 먼저 다가가 보려고 한다. 윌버가 외로움에 힘을 잃어갈 때 샬롯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