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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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집안일을 하다, 문득 오래된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 사람들이 생각나는지, 특별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들이 기억나는지 알 수 없다. 요즘 들어 비교적 그런 일이 잦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참 활자중독에 빠져있을 때 어떤 소설 내용이 뜬금없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데 당체 무슨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일련의 기억들은 예고 없이 불쑥 나를 찾아온다. 뒤죽박죽 복잡하게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하나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속적으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인 이 작품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나의 20대와 연결이 되었다. 나를 문득 찾아온 기억들이 아주 먼 과거이거나, 꿈속의 향연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아닌 모두 20대의 추억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만약 내가 20대 초반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책을 덮고 나니 과연 어떤 기분으로 이 책을 마주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작품 속에서 20대 초반 특유의 치기와 허세(?)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고, 나에게도 그것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방황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기에 피식 웃음이 나고 말았다.


20대의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 될 것인가'였다.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단계를 뛰어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선급하게 생각해 낸 건지도 몰랐다. 온 마음을 다 바쳐 연애도 하고, 이것저것 들쑤셔 보기도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바다위의 부표처럼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고,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쏟아내야 할지 몰라 책 속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인 '나'가 부러웠다.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 1970년 여름의 18일 동안의 기록이 내가 오랜 시간 가졌던 고민들과 번뇌의 시간들을 단박에 드러내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저자는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쓴 작품을 이십대 후반에 내놓았다고 한다. 처녀작인 셈인데 그 감성과 느낌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부러웠다.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서,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첫 문장부터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왜 이 첫 문장을 보면서 나는 『모비딕』의 첫 구절인 '내 이름은 이스마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주길 바란다.'가 떠올랐을까? 아무리 봐도 어떠한 연관도 비슷한 면도 없는데.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나 존재를 조금이나마 드러냈다고 생각했기에 비슷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용기가 없어 절대 쓰지 못할 나를 드러내는 일.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나를 스쳐가는 추억과 사람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자신을 내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이 소설이 명랑하면서도 풋풋하고 무게를 지니고 싶은 젊음의 발랄함이 느껴져서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대리만족이라고 해도 괜찮을 다른 이의 청춘의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이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자는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써야 할 필연성이 없다면',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라고 말한 저자처럼 쓸 수 없다면 타인의 글을 통해 느끼면 된다. 그것이 공감이든 비공감이든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신의 청춘을 잠시나마 만끽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접한 저자의 첫 소설은 『상실의 시대』였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일본문학이 국내에 지금처럼 많이 유입되지 않을 때라 충격이었고 단박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 후 오랜 시간 뒤에 만난 작품이 『1Q84』였고, 세 편의 단편집을 연달아 읽었지만 저자에 대한 첫 이미지는 깨지지 않았다. 그러다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저자의 다양한 작품성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초기작을 읽게 되었는데 그간 내가 만났던 저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풋풋함과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당분간 저자의 초기작을 섭렵하면서 불쑥불쑥 나를 찾아오는 뇌리속의 추억을 만끽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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