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사한 오빠네 집들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이것저것 받아왔다. 들기름과 마늘 찧어 놓은 게 떨어졌다고(엄마는 항상 마늘을 찧어 일회용 비닐 팩에 얇게 펴서 얼린 걸 챙겨주신다. 그래서인지 결혼하고 나서 마늘을 찧어본 적이 없다.) 했으니 그건가 보다 하고 잘 먹겠다고 하고 받아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엄마가 싸 주신 것들을 펴보다 이렇게 이름표가 붙은 걸 발견했다. 서투른 글씨체로 내 이름이 적혀있는 메모지.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일흔이 넘은 우리 엄마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딸인 엄마에게 학교를 다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한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 그런 엄마에게 한글 쓰기를 몇 년 전에 사드렸었다. 귀찮다고 하면서도 잘 따라하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찡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를 바라보면 그냥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나는 아이 둘을 힘겹게 낳고 이렇게 엄살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옛날 엄마는 열 번의 출산을 하고(중간에 오빠 한 명은 어릴 때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9남매를 키웠으니 그런 엄마가 위대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9명의 자식에게 모두 공평하게 대하고 중간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무마하고 교통정리를 참 잘하셔서 갈수록 우리 엄마는 현명한 엄마라고 생각된다. 그런 엄마를 좀 닮았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게으르고, 매사에 똑 부러지지도 못하고, 소심하고, 생활력도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막둥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엄마에게 칭얼대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나, 아니면 엄마가 사는 시골집에서 모일 때면 엄마는 늘 바리바리 무언가를 싸주신다. 내 이름표가 붙은 검은 봉지를 풀어보니 정성스레 말린 나물과 깨, 그리고 식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들어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정리했을 식재료들이 저 이름표 하나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오빠네 집들이에 누가누가 오는지 알고 있었을 테니 공평하게, 헷갈리지 않게 음식을 담았을 엄마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 것이다. 엄마가 학교를 다녀서 글씨를 말끔하게 잘 썼더라면, 자식들을 살뜰하게 챙겨주지 않는 엄마였다면 이렇게 마음이 찡하지 않았을 텐데 삐뚤빼뚤한 내 이름 두 글자 때문에 마음이 이토록 저린다. 나도 이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걸까? 엄마에게 내 엄마가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꼭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