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넷, 엄마의 컬러링북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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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엄마에게 컬러링 북을 선물했었다. 오래전에 크레파스로 하는 색칠공부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정말 꼼꼼하게 잘했던 기억이 나서 좀 어렵지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컬러링 북과 색연필을 사가지고 갔다. 엄마한테 선물을 주면서도 나는 절대 못한다고, 이건 정말 머리 아플 수도 있으니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색칠을 해보라고 했다. 시간 날 때 쉬엄쉬엄 내키는대로 색칠해 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집에 가서 컬러링 북을 열어봤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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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만 색감도 좋고 일단 예쁘다. 하나하나 색연필을 골라가며 색칠했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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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올해 일흔 네살이다. 나를 서른아홉에 낳았고,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외갓집이 가난해서 딸인 엄마에게 학교를 다닐 기회까지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단어를 몰라 쓰는 법을 물어보았는데 틀린 단어를 가르쳐 주었지만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알려 주었다는 걸 알기에 지금까지도 가슴 찡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글은 삐뚤빼뚤 쓸 순 있지만 엄마가 정확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7~8년 전에 한글 공부 책과 전래동화 책 몇 권을 사주었다. 그 때 색칠공부도 함께 사주었는데 모든 걸 정확하게 따라하고 습득하는 모습에 놀랐다. 나는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학창시절 늘 성적이 중하위권이었지만 만약 엄마가 학교를 다녔다면 나보다 훨씬 잘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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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같이 컬러링 북을 보고 있던 언니가 그랬다. 혹시 엄마가 70년 만에 찾은 재능이 미술이 아닐까? 하고.미술을 정말 싫어했던 나와는 달리 이렇게 예쁘게 색칠한 엄마의 컬러링 북을 보면서 가능하다면 엄마의 재능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혹시 색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너무 멀리 간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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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줬더니 샘플을 보면서 색칠한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순전히 엄마가 알아서 색칠한 거라고 하니 다들 놀랬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제대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일흔 넷의 우리 엄마가 색칠한 그림들. 봐도 봐도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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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컬리링 북 맨 마지막에 각 페이지에 어떤 그림이 실려 있는지 작은 그림으로 모아 놓은 건데 엄마는 여기까지 모두 색칠해 놨다. 그림이 아주 작아 색칠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정말 대단하다. 다음 달은 엄마 생신인데 용돈과 함께 컬러링 북 2탄을 선물해야겠다. 평생 농사짓고 자식만 키워 오신 일흔 넷의 우리 엄마!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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