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힌 것은 지루함이 아니었다. 그 반복성이었다.

by 안녕반짝
P20141111_094543105_32EE7753-FEE5-4001-BA00-EAB22FE513AD.jpg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기이하면서도 하루키 다운(하루키 다움을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데 하루키의 글을 통하면 정말 일어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의 이야기가 너무도 평범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 이야기들에 비하면 내가 하고 있는 자잘한 고민들, 일상, 심지어 마주하고 있는 책조차 현실의 경계를 넘어 아득한 과거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저택에서 본 유령, 갑자기 정원에서 나타난 녹색 괴물의 청혼, 같은 반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고 인생이 바뀌어 버리고, 기이한 파도의 휩쓸림을 경험한 남자 들의 이야기, 옷만 잔뜩 남기고 떠나버린 아내, 사촌 동생을 통해 꺼내게 된 추억까지 그들의 내면 깊숙이 꺼내 올려진 이야기는 잠시 다른 세계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할 것 같은 그들의 속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어?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순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개연성이고 뭐고 무엇에 홀린 듯 이야기를 따라가고 당연하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각각의 다른 이야기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내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독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야기 속에는 모두 고독한 인물들이 있었다.


왕따를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침묵으로 견디고 스스로 깨닫는 고통을 경험한 이야기를 아주 사소한 곳에서 툭 털어놓게 만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얼음사나이라고 불리는 남자와 결혼해서 남극여행을 추진하고 그곳에 평생을 갇혀 있을 거란 예감을 하는 여자의 쓸쓸함은 고독함을 넘어 우울할 지경이었다.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는 옷 중독에 걸려 엄청나게 많은 고가의 옷을 사들인다. 갑자기 사고로 죽은 아내가 남긴 옷을 처분하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어 버린 남자는 가여웠다. 태풍의 파도에 휩쓸려 친한 동네 동생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는 기이했다.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들의 내면의 서걱거림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혹은 스스로 마음에 고독과 외로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했던 사연들이 때론 측은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세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경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자포자기 하거나 순응하듯 받아 들이지고 때론 이겨내려는 노력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있기 전과 후에 남겨진 그들의 내면은 사건 자체에 대한 심경의 변화는 있을 지라도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삶에 대한 변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서 오는 지난함이 있었다. 마음속에 고독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있었고 꼭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정감 어린 시선을 느끼기를 바랐다면 나의 욕심일까?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훌훌 털어냈듯이 삶의 무게, 내면의 고독,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덜어내 주길 바랐다.


나를 괴롭힌 것은 지루함이 아니었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그 반복성이었다. 그런 반복 속에서 어쩐지 나 자신이 반복되는 그림자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110쪽)


요즘의 내 생활이 꼭 그런 것 같다. 그나마 반복성을 달래주는 것이 독서였는데 그 책들마저 반복의 연속성이란 생각이 가득했다. 하루키의 기묘한 단편들을 읽으면서 반복되는 그림자를 조금 떨쳐낸 기분이 들지만 그 이후에 어떤 나를 마주할지 걱정이 되면서 설레기도 하다. 부디 이전보다 더 고독한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