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짧은 인생이었더라도 살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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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가 생겼다. 늘 그렇듯이 내년에는 잘 기록해볼까 다짐을 하지만 한 달도 채 기록하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기 일쑤다. 내년에는 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날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나마 기록해 보자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지만, 오늘의 나도 알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매일, 순간의 생각과 기분, 소소한 일상을 착실하게 기록한 이 만화를 보고 있으면 차곡차곡 쌓이는 기록의 위대함을 느낀다.


첫 장을 열자마자 아빠와 다퉈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순간 당황하긴 했다. 아빠가 물건을 던진 상황도 당황스러운데 저자도 지지않고 똑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데 첫 만화부터 다소 과격(?)하게 나와서인지 어떤 이야기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 만화를 펼쳤을 땐, 나 역시 소소한 짜증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참이라 저자가 펼쳐내는 일상으로 도피했다. 도피하면서 나를 좀 가라앉힐 수 있었고,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니 너무 괘념치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히려 내가 짜증났던 이유는 잊은 채 만화 속에 나오는, 먹어 본 적이 없는 달콤한 음식들이 먹고 싶어서 그게 더 힘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시간이 남아서, 정말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서 먹으러 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 동네에는 비슷한 프랜차이즈 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탄한 정도였다.


살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아무리 짧은 인생이었더라도 살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74쪽


만화 중간에 이렇게 짤막한 글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내 생각과 맞닿으면 한참을 멍하게 생각하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남겨진 사람이 그 사람의 이 세상에 머문 햇수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부디 이 세상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더 길었길 바라며 남겨져 있는 사람들이 덜 안타까워하고 덜 슬퍼하길 바랐다.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언어학습은 누군가와 말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샘솟는 것이지 바보로 여겨지기 싫다는 이유는.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습니다. 바보로 여겨지기 싫어서 무언가를 습득한다면, 인간은 습득하지 못한 사람을 깔보게 되지 않을까요? 132쪽


공항에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지 못한 청년을 보며 저자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보다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런 말을 한다. 영어 공부를 시작도 하지 않으면서 ‘짜증나서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만다.’고 격한 동기만 가지고 있던 나에겐 약간의 충격이었다. 나의 동기 부여는 영어를 좀 하게 되면 분명 ‘습득하지 못한 사람을 깔’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국내에 번역되지 못한 책을 원서로 읽거나, 번역본이 있어도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점점 변질되어서 다른 사람한테 뽐내기 위해서였다 인정하자 부끄러웠다. 왜 이런 걸로 뽐내려 하는지 내 자신이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의 내면이 탁한 것 같았다.


개인의 행복. 다른 사람은 모른다. 그 사람에 어떻게 행복한지는 그 사람만이 안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의 행복을 가볍게 보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오늘의 인생. 197쪽


가끔씩 먼지를 털 듯 나를 좀 탈탈 털어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 폰으로 만나는 자극적인 뉴스들과 쇼핑목록,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종종 불행하게 만드는 함정 속에서 꺼낼 필요가 있다. 요즘의 나를 곰곰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내면이 찌들어 있었다. 비워낼 필요가 있다. 좀 더 건강한 나로 만들 필요가 있다. 정당하게 타인의 탓을 돌리기 전에 나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오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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