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는 독자를 본문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소다.

by 안녕반짝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는데 <1Q84> 영미판 북 디자이너 칩 키드의 이야기가 나왔다. 영미판 표지가 기억이 나질 않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던 중 테드북스로 저자의 책이 출간되어 있는 것을 보고 먼저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북 디자이너의 책이기에 이 책의 표지가 굉장히 궁금했는데 솔직히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빨간 배경에 두 손가락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 or ?' 표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첫인상을 묻는 다음 ‘글쎄, 아직까지는 책을 덮지 않았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해두자. 아니면 뭔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든지.’ 라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최악이 아니었고, 점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제야 책의 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책표지는 단지 글의 얼굴이 아니라 독자를 본문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소다. 20쪽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입한 적도 많고,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도저히 표지가 용납이 되질 않아 구입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만큼 한 권의 책을 대할 때 표지가 미치는 영향이 분명 있는데 북 디자이너인 저자가 말하는 표지에 대한 생각이 명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쓰인 책을 어떤 이유로든지 독자를 본문으로 이끄는 것. 책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분석해서 표지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북 디자이너에겐 그 목적이 가장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다를지라도 함축적으로 책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한 권이 책에 표지를 입히는 디자이너들에게 경외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첫인상을 형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이는 내가 창작하는 것들과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에 적용될 수 있으며, 한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놓여 있다. 바로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이다. 21쪽

여기서 ‘내가 창작하는 것들과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 디자이너이기에 책 표지에 관한 이야기만 즐비할 줄 알았는데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바인더 클립을 사진을 보여주고 이 물건의 사용처와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리고 사진 밑에는 명료함(!)에 가까운지 미스터리함(?)에 가까운지 빨간색 점으로 표시해 놓았다. 그건 저자 개인의 생각이므로 내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고 메시지가 바로 전달이 되지 않는 포스터나 지하철 안내문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도 재밌다. 활자중독자들이 오탈자를 참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까? 직접 지하철 안내도를 고쳐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 안내문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자가 디자인한 책 표지를 보면 신선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의 첫인상처럼 모호한 것도 있고, 굉장히 잘 표현했다는 것도 있고, 책 내용을 알고 설명을 들어야 표지가 명확하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왜 많은 작가들이 저자에게 북 디자인을 맡기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명료함 혹은 미스터리함으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데 어떤 저자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마주하는 일상, 그리고 많은 부분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이 방법이 꽤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좀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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