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이타카로 가는 길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중략)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이타카>, 최정수 옮김
맹인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라는 서사시를 전한다. 청동기 시대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와 야만인 준동으로 인해서 근동 문명들은 일순간에 몰락해버린다. 이를 우리는 고대 암흑기라 부른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를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말하며,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도시국가 폴리스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 암흑기를 부르는 다른 명칭이 있는데 호메로스 시대다. 이 시대의 서사시와 신화만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관련하여 ‘호메로스 문제’라는 말이 있다. 서양 고전학의 논쟁으로,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실존하는지에 관한 논의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오디세이아의 저자는 여성이었다고 상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구전 문학이 늘 그렇듯 원전이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이들의 첨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건 그의 이야기가 세월을 이겨내고 남녀노소를 떠나 큰 공감을 얻을 만큼 보편적인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제는 귀향(歸鄕)이다. 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섬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아들 텔레마코스는 장성하였고, 아내 페넬로페는 이제 재혼을 독촉받고 있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처음 출발했던 배와 동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바다에는 괴물들이 가득하고, 신들은 그를 방해한다. 그런데도 오디세우스는 그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어 했던 고향 이타카는 어디일까? 사실 이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심지어는 같은 이름의 작은 바위섬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리스 서쪽 이오니아해의 가장 큰 섬, 케팔로니아를 이타카로 여긴다.
신혼여행이란 본래 정형화된 여행이다. 굳이 모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어느 여행사를 가든 신혼여행은 뻔할 수밖에 없다. 발리든, 하와이든, 몰디브든 간에.
하지만 그리스를 조금이나마 남들과는 다르게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다들 가는 곳만 갈 수는 없었다. 나만의 여행이 갖는 차별점, 즉 엣지(Edge)를 가져가고 싶었다. 너무 튀지 않고 반대로 너무 무난해서도 안 된다. 신혼여행이기에 동행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있어야 한다. 나의 해답은 케팔로니아였다.
그리스에서도 이오니아 섬들은 워낙 아름답다고 유명하다. 그리스인들에게 최고의 여름 휴가지이다. 주황색 지붕 아래 회벽에 다양한 색을 칠한 그 풍경이 그들에게도 독특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제주도 풍광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신혼여행 목적지 중 하나로서도 손색이 없다.
케팔로니아섬은 주변부에 위치한다. 호메로스 시대에도,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그리스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중세 시대 동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그 자리를 바다 건너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차지했다. 그렇기에 이오니아해 다섯 섬은 오스만 제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아드리아해의 교역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기록에 따르면 상층은 이탈리아어로, 기층은 그리스어로 이야기하였다 한다. 이런 배경이 케팔로니아를 그리스이면서도 다른 공간으로 만들었다.
항구 도시 파트라스에서 출발하여 4시간 배를 탔다. 다행히 아내는 뱃멀미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여행 전 큰 걱정을 차지했던 부분이다. 아내는 신혼여행 전까지 배를 타본 적이 없다. 멀미 여부는 타고나는 것이다. 배를 타보기 전까지는 알 방도가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배 타는 시간이 길었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오니아해는 마치 한국 남도 다도해를 떠오르게 했다. 그만큼 오히려 우리에게 어딘가 익숙한 바다였다. 본토 반대쪽 에게해에서는 섬들이 건조하게 바짝 말라가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오니아해에서는 자그마한 섬들에 수목이 우거졌다. 바다색도 새파랗다기보다는 푸르렀다. 뱃머리에서는 하얀 거품이 부서지고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그리워했던 섬과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 실향민(失鄕民) 오디세우스
페리를 통해 렌터카를 가지고 입도(入島) 했다. 덕분에 운전하며 편히 돌아다닐 수 있다. 꼬불꼬불한 섬마을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우연히 발견했다. <오디세우스>라는 테마파크였다. 그 앞에 명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이렌을 만나 배에 묶여있는 오디세우스 등신대와 키클롭스 미끄럼이 인상적이었다. 그 옆에는 작은 동물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문이 닫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임시 휴업이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폐업이란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운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원래 묵으려고 했던 숙소도 폐업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예약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은 작은 섬의 관광업에도 치명적이었던 모양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이타케가 내 고향이라오. 그곳에는 산이 하나 우뚝 솟아 있소.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네리톤 말이오.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섬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소. 둘키리온과 사메와 숲이 우거진 자퀸토스 말이오. 이타케는 서쪽 맨 위에 야트막하게 자리 잡고 있고 이들 다른 섬들은 새벽과 태양을 향해 떨어져 있지요.
바위투성이의 섬이지만 이타케는 젊은이에게는 좋은 유모(乳母)지요. 나로서는 자기 나라보다 달콤한 것은 달리 아무것도 볼 수 없었소. 실제로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한 칼륍소가 나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자신의 속이 빈 동굴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마찬가지로 아이아이에 섬의 교활한 키르케도 나를 남편으로 삼기를 열망하여 자기 궁전에 붙들어두려 했소. 하지만 그들도 내 가슴속 마음을 설득할 수 없었소. 이렇듯 누군가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낯선 나라의 풍요한 집에 거한다 해도 고향땅과 부모보다 달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라오.”
-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9권 21행 – 36행
고향을 잃어버린 오디세우스는 실향민(失鄕民)이다. 오디세이아 내내 다른 이들이 그에게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만 고향을 잊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라고. 그것은 여신 칼륍소나 마녀 키르케로 대표되는 유혹이다. 오디세우스는 꽤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세상은 고향과 고향이 아닌 곳으로 나뉜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아무리 부유하게 지낸다 한들 그에게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즉, 오디세이아의 여행은 새로운 곳을 향해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는 잃어버린 고향을 10년 동안 찾아 헤맨 것이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역시 세상을 구한 뒤 베긴스로 돌아갔고, <연금술사>에서 양치기는 이야기가 시작된 최초의 자리에서 보물을 찾는다. 수많은 귀향(歸鄕) 서사들은 결국 여행의 값어치는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작 재미있는 부분은 오디세우스가 방랑을 마치고 고향에 도착하자, 그는 정작 자신이 도착한 섬이 어딘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산천이 변해버렸는지 그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던 것인지는 모른다.
모든 것이 그 주인에게 낯설어 보였다.
오딧세우스는 벌떡 일어나 고향땅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두 손으로 두 넓적다리를 쳤다. 그리고 그는 비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슬프도다! 나는 또 어떤 인간들의 나라에 온 걸까? 그들은 오만하고 야만적이고 의롭지 못한 자들일까, 아니면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씨를 가진 자들일까?”
-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13권 196행 – 203행
그는 여신 아테나가 자신의 미혹을 깨우쳐줄 때까지, 그래서 가족들을 만나게 될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섬이 바로 꿈에도 그리던 고향임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실향민이기도 하고, 오디세우스이기도 하다. 그 점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지금까지 전하고 읽히게 한다.
살아간다는 건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내가 도착한 섬이 어딘지 모를 수도 있다. 목적지와 경유지는 늘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 처음에 소개한 <이타카> 시처럼 그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결국 도착한 고향이 불모지일지라도, 여행이 가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나긴 신혼여행이 끝나고 다시 나의 고향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다시 일상과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시작과 목표가 없었다면 여행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결국 여행에만 국한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니까.
3. 신화 읽기
케팔로니아섬을 여행 중에 꼭 방문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어느 게임 때문이다. <어쎄신 크리드 오디세이>라는 게임에서 주인공 용병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힘을 키운다. 그 훈련을 했던 시작 마을이 바로 케팔로니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섬을 두 번째로 방문하는 셈이다. 첫 번째 방문은 안방 게임기를 통해 먼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게임 역시도 그 모티프를 신화에서 참조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자 지식인들은 신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과학이 자리한 세계에 비이성적인 이야기는 발붙일 곳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콘텐츠의 시대에 들어서자 어느 때보다 우리는 신화에 열광하고 있다.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신화는 재생산된다.
케팔로니아 사미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멜리사니 동굴이란 곳이 있다. 이 섬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이 동굴을 찾기 위해서이다. 숲 한가운데 수직으로 뚫려있는 동굴이고 아래 깊숙이 지하수가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 햇빛이 비치면 호수가 색이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는데, 그 때 거짓말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멜리사니 동굴은 과거에는 요정 님프들이 사는 동굴이었다고 한다. 어여쁜 여성의 모습을 한 님프들은 장난기가 많았다. 그래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유혹해 동굴로 빠트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고 한다. 지금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관광코스가 있어 동굴 내 호수에서 뱃사공들이 노를 저으며 구경시켜준다. 다행히 햇빛이 정확한 각도로 비출 때 찾아왔다. 비취색 물 위를 건너며 님프들을 상상했다.
신화의 매력은 상징성과 보편성이다. 물론 옛날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바는 우리가 겪는 일상과 맞닿아있다. 예를 들어 멜리사니 동굴에도 산다는 님프들은 신화 속 자연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기에 님프가 사는 동굴에 인간은 발을 들이지 않았고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신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의미가 생겨났다.
바로 의미를 창조하는 특성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 신화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이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야기의 시대고, 콘텐츠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가 한국과 비교했을 때 갖는 강점이 보인다. 이미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신화가 땅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혼여행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쉽게 지나치는 도시나 땅, 산, 강이 모두 저마다 신화에서 기원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신화를 다시금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군가 정리한 교양서가 아니라 가능한 원전 번역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신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 사람들은 세상이 감춰둔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상징을 통해 그 의미를 말하는 능력은 분명 필요할 것이다.
케팔로니아섬 서북쪽 미르토스(Μύρτου) 해변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세계 10대 해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영화 <코렐리의 만돌린>의 배경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기 케팔로니아섬 유일한 의사의 딸 펠라기아와 점령군 이탈리아인 장교 코렐리와의 사랑 이야기가 주제인 영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함께 시청했는데, 바로 그 해변에서 허리께까지 담그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섬을 고향으로 삼고 있는 오디세우스가 부러워지면서,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뭐가 별 볼 일 없는 바위투성이 섬이라는 건지. 내가 본 케팔로니아는 누구나 꿈꾸고 그리워할 섬이었다. 그리고 신화에 한없이 가까운 공간이기도 했다.
당연히 섬을 떠나는 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여행이란 건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다. 그리고 여행길도 아테네로 가는 머나먼 길만 남았다. 다시 파트라스로 돌아가 리오안티리오 대교로 바다를 건넜다. 이오니아해를 접한 그리스 서부에는 유독 만(灣)과 호수가 많았다. 이제 내륙 여행이다. 테살리아의 마테오라로 가는 길, 호반의 도시 요아니나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