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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균 Aug 02. 2024

7. 그리스에 대하여 (요아니나)

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호반의 도시, 요아니나

사실 그리스 여행기를 쓰는 사람은 나뿐 아닐 것이다. 누구나 그리스를 좋아하니까. 1년 동안 한국어로 얼마나 많은 글이 쓰일지 상상해 본 적 있다. 그중에 그리스에 대한 글은 얼마나 많을까?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만 찾아봐도 한 무더기다. 내 글은 거기에 작은 하나를 더 추가할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 그리스는 그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까? 그 나라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우리에게 불어넣을까? 아마도 우리의 문화 어딘가에도 그리스 애호(Philhellenism)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리스 애호란 근대 최초의 유행이었다. 서구인들은 18세기에 그리스 문화를 재발견했다. 그리고 자기들 문명의 기원을 그리스로 삼았다. 프랑스인이든 미국인이든 모두 그리스 문명의 후손이었다. 지금 우리 어느 학문이든 교과서를 펼쳐서 첫 장을 펼치면 “…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라는 문장을 찾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 문화적 영향이 대륙 동편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리스 역사 그리고 문화유산은 지금도 주목받는다. 나 역시 신혼여행이었지만, 어느 정도 성지순례의 기분도 있었다. 나는 철학도이다. 혹은 철학도였다. 그렇기에 내가 철학이란 공부가 처음 시작되었던 그리스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 관광지로서 매력 역시 빠트릴 수가 없다. 단어만으로도 사람들은 설레게 하는 것이 지중해다. 그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광경에 기암절벽들이 펼쳐진다. 여행 도중 어느 나이 지긋한 외국인이 가족들에게 영상 통화를 하는 걸 들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그리스에 와봐야 해” 요란이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는 동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협소하다. 반성하자면 나 역시 그렇다. 역사를 예로 들자면, 고대 그리스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마치 그리스라는 나라가 뿌리에서 바로 접붙인 꽃이라도 되는 마냥 말이다. 어쩌면 진정 찬란했을 중세와 근세 시절 그리스는 깜깜이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려 호반의 도시, 요아니나에 도착했다. 사실 스쳐 지났던 도시였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날이라 갈 길이 멀었다. 간단하게 점심 겸 저녁 정도 요기할 계획으로 도시로 들어갔다. 하지만 중세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도시 최고의 맛집과 박물관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박물관과 공원으로 사용되는 요아니나 성벽 @ 촬영


요아니나는 외국인 관광객이 흔치 않은 도시인 듯하다. 인터넷으로 만난 그리스인 친구는 내가 요아니나에 갈 계획이라고 하자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스에서도 서쪽 소도시를 동양인이 찾아갈 일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팜보티스(Παμβώτις) 호수를 둘러싼 인구 10만 명의 이 작은 도시는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이피로스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13세기에 천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다. 성지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모여들었던 십자군이 방향을 틀어 비잔틴 동로마 제국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치 대홍수를 피해 방주를 만든 노아처럼, 동방정교회를 믿는 난민들은 제국의 변경으로 몸을 피했다. 그 변경 중 하나가 그리스 최서단 이피로스 지역이다. 이들이 만든 나라를 오늘날에는 이피로스 공국이라 부른다. 오늘날 요아니나에 비잔틴 박물관이 있는 맥락이다.


하지만 오스만 튀르크가 발칸반도를 지배하면서 이 지역 역시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요아니나에 방문하기 전 여행지였던 케팔로니아섬이 이피로스 공국의 최후 영토였다. 그리고 요아니나는 오스만의 일부로 중세 막바지와 근대의 초기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8세기 ‘알리 파샤’라는 이름의 한 인물이 등장한다.   

파샤는 오스만 제국의 고위직 관료의 이름이면서 경칭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치면 ‘영감’이다. 즉, 알리라는 이름의 파샤다. 그의 별명은 요나니나의 사자. 산적 두목으로 시작해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이 지역의 통치권을 얻었다. 잔혹했지만 능력 있는 군주였다고 한다. 알바니아 무슬림 출신이었지만 종교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더구나 그의 아내는 그리스인이었다. 덕분에 그리스어에 능숙했고, 관청에서는 그리스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가 통치하던 이피로스와 알바니아 지역은 사실상 독립 국가였다.   

그렇기에 알리 파샤는 터키인이면서, 그리스인이면서, 알바니아인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의 시선으로 국적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치하에서 요아니나는 은세공 기술로 유럽 최선두를 달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비잔틴 박물관과 은세공 박물관, 그리고 알리 파샤 박물관이 모두 호수를 사이에 두고 산책로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 요아니나가 자랑하는 성벽이 이를 감싼다.

요아니나 은세공 박물관 @촬영

이렇듯 그리스의 역사는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박물관 구경을 끝내고 가을 날씨가 좋아 잠시 공원과 거리를 걸었다. 유럽 중소도시답게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흘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돗자리를 가져와 햇볕을 즐겼다. 어느 어린 딸아이가 뛰어다니고 아버지가 겨우 따라가기도 했다. 여행길에 이런 도시를 만나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했다.   

우리 신혼여행의 제1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식사는 충분하지만 과하지 않게’. 그리스 여행에서는 매번 지키기 쉽지 않은 규칙이었다. 따라서 이번 식당은 요아니나의 작은 일품요리 집이었다. 레스토랑은 늘 점잖고 비싼 코스요리를 시켜야만 하므로, 오히려 여행자인 우리에게 적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늘 가능한 지역의 작은 로컬 음식점을 선택하려고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선택이 알맞았다. 동네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저녁에는 작은 영화상영회를 한다고 한다.


영어를 곧잘 잘하는 젊은 주인이 응대해주었다. 우리가 음식에 관해 물어보는 질문도 곧잘 대답해주었다. 디저트로 카타이피(καταΐφι)와 바클라바(mπακλαβάς)를 추천받았다. 둘 다 터키에서 유래한 음식인 듯하다. 앞선 알리 파샤의 역사를 생각하며, 충분하지만 과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젊은 주인은 웬 동양인 커플이 요아니나까지 찾아와서 식당에 오니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왜 그리스에 여행을 왔는지 지금까지 어디를 방문했고 앞으로 어디를 방문할 예정이냐고 물어보았다. 신혼여행 중이며 우리 여행경로를 대충이나마 설명하니, 다시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이 나왔다.   

“물론 다 좋았죠. 그런데 분명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토리니 같은 곳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케팔로니아 같은 유명하지 않은 섬들이 더 아름다웠어요.”

“전 사모스섬 출신이고 결혼해서 여기로 왔는데. 정말 그리스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훨씬 더 좋아요.”   

사모스섬은 에게해 넘어 동쪽에 위치하는 섬이다. 그리스보다는 터키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식당 주인분은 아마 그리스 가장 동편 끝에서 가장 서편 끝으로 시집을 온 모양이다. 그분 말 따라 그리스에서 짧게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은 놓쳤을지 모른다. 그리스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우리가 관심을 더 가진다면 발견할 것이 많은 나라다.

요아니나 식당  @ 촬영


2. 난민과 이민자의 나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요아니나에서 벗어나는 길. 중심부에서 밖으로 길게 뻗은 도로가 운전할 맛이 나게 했다. 그런데 변화가 눈에 띄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구성이 조금 전 시가지와 달랐다. 특히 보따리를 머리에 짊어진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많았다. 내가 인종맹(人種盲)이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못하니, 마치 다른 나라로 날라 온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요아니나 난민 캠프가 위치한 곳이었다. 그리스는 전 유럽에서 가장 큰 난민 캠프가 있는 나라다. 지리적 이유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밀려드는 난민들이 유럽에 가기 위해 지중해를 지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보트에 몸을 실은 이들이 끊임없이 배를 타고 그리스 해안으로 밀려든다. 지난 시리아 난민 위기 당시 유럽 연합은 이러한 그리스에 대해서 유럽을 지키는 방패라고 치켜세웠다. 결국 그리스는 유럽 연합이란 제국의 변경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상황이 달라진 듯하다. 경제 위기에서 탈출한 그리스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이제는 새롭게 대규모 시민권 부여를 내세운다. 생각해보면 난민 문제로 인하여 결국 유럽 연합을 떠나게 된 것은 영국이었지, 그리스가 아니었다.   

그리스의 이민자를 이야기하자면, 아데토쿤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흔히 ‘그리스의 괴인(Greek Freak)’이란 호칭으로 불린다. NBA 선수로서 최고 영예인 리그 MVP를 두 차례나 수상했고, 반세기 만에 소속 팀을 우승시켰다. 사실 그리스를 돌아다니면서 그의 얼굴을 이곳저곳에서 워낙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길거리 광고들이 그러했다. 나는 스포츠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도 이 이민자 국민 스포츠 영웅이 소비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는 나이지리아 불법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어린 시절 아테네 파르테논 앞에서 짝퉁 가방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가 농구를 시작한 곳도 길거리에 있는 작은 농구코트였다. 곧 실력과 신체 능력을 인정받아 유소년 농구팀을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 NBA에 드래프트 되게 된다. 그렇게 이름을 알린 아데토쿤보는 결국 그리스 국가대표 농구팀에서도 뛰게 된다.   

지금 그와 그 가족들은 그리스에서 유명인이다. 관광지를 돌아다녀 보면 그의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어디서든 팔고 있었다. 동네 술집에서는 NBA 하이라이트에 채널이 고정되어 있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불법 이민자 출신 스포츠 스타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얼마나 그에 열광하게 될까. 그런 상상을 했다.   

그리스까지 온 김에 나 역시 놓칠 수가 없었다. 아데토쿤보가 만든 운동복 브랜드가 공항에 있었다. NBA와 농구를 좋아해서 스포츠 회사에까지 들어간 사람으로서 돈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을 오면 원래 기념품과 선물을 사가는 맛이 아닐까? 나 역시 주변 사람들 선물 삼아 그의 이름이 적힌 텀블러들을 샀다.

아데토쿤보 형제 운동복 브랜드 @촬영


유럽 여행을 하게 되면 이들의 다양성에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 아테네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혀를 차는 사람들도 그리스에도 많을 것이다. 이제 해외에서 어느 나라든 이민자와 난민 문제는 주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깨닫는 게 느릴 뿐 우리나라 역시 이런 변화에 접속해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난민과 이민자는 내가 살아가야 할 21세기에는 더욱 당연해질 것이다. 이에 대한 호불호는 부차적 문제다. 어떻게 하면 이에 적응하고 기회를 삼을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편이 나에게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3. 그리스의 오늘날

케팔로니아에서 출발하여 요아니나를 경유, 메테오라로 들어간 날은 그리스 지방 선거 다음 날이었다. TV를 틀어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선거 결과와 이에 따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불현듯이 선거 내용이 궁금해졌다.   

핸드폰으로 그리스 선거에 대해서 영어로 검색하니 외신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방 선거로 지난 6월 새로이 정부를 구성한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과는 집권여당의 승리였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경제 위기’다. 어느 그리스 여행서를 펼쳐보아도 이와 관련된 걱정이 적혀있다. “파르테논이라도 팔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로 대표될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된 그리스 정치 상황은 한국에서 폭넓게 보도가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급진좌파연합이 제시하였던 긴축안에 대한 반대 국민투표가 지난 대한민국이 겪었던 IMF 상황과 비교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 경제 위기도 옛말이 되어간다.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는 나라로 그리스가 손꼽히고 있다. 작년 GDP 성장률이 5.9%라고 하니 사실상 회복에 성공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시 시작된 관광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올해 그리스 관광업은 역사상 최고 규모를 달성할 것이다. 우리의 신혼여행이 아마 그 그리스 관광업에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보면 아직 그리스 도시들의 경제 위기 흔적이 눈에 띄긴 한다. 문을 닫은 상권과 관리가 되지 않은 지방도로가 그러했다. 하지만 분명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발전해나가는 그리스의 모습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어디든 관광객들이 넘쳐나면서 서비스업들은 새로이 몸 단장하는 곳이 많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그리스 드라마를 하나 챙겨보았다. <마에스트로 인 블루>라는 제목으로 어느 OTT 서비스에 올라와 있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 어느 나라의 문화콘텐츠든 취향만 있다면 찾을 수 있다. 드라마는 굳이 말하자면 치정극이었다. 섬마을로 오게 된 중년 음악가를 사랑하게 된 여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는 끊임없이 아이고 소리를 내며 그러면 안 된다며 전해지지 않는 훈수를 했다.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먼저 어느 나라를 접하고 여행을 가게 되면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영상매체는 더욱 현실감을 갖게 되고, 반대로 실제 여행은 마치 그 작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마침 그런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리스어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내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기분이라 말해주었다.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 그리스라는 나라와 그리스인들에 애착이 가기도 한다. 드라마처럼 이들도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말을 안 듣는 자식 때문에 속을 썩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의 유일한 기능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단순히 텅 빈 여행지로서가 아니라 실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보인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일 것 같다. 사람들은 참 정이 많았고 친절했다.   

난 여행한 나라의 팬이 되는 편이다.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습까지도 궁금해하고 멀리서 응원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 역시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경제 위기라는 단어를 끊기를 바란다.

요아니나를 둘러싼 팜보티스(Παμβώτις) 호수 @촬영

나는 강원도에서 자랐다. 그런데도 요아니나를 지나온 이 날, 산에 질려버렸다.

바다와 호수가 멀어질수록 산들이 높아져만 갔다. 목적지는 수도자들이 모여 산다는 메테오라. 염소를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는 외진 산길이었다. 흔히 관광객들은 메테오라를 가기 위해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동쪽에서 서로 기차나 버스로 접어든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내륙을 자동차로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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