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낯선 동네에 신혼집을 얻었다. 경기도 고양(高陽)이란 곳이다. 결혼 전에 미리 집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사 다니면서도 주말을 쪼개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부동산을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과연 집 구하는 건 과연 쉽지 않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먼저 예약했던 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부동산 주인이 그날따라 꽤 호기로웠다.
“찾아본 곳보다 더 좋은 집 나온 거 있어. 보고가.”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보게 된 집이었다.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집주인네 아이가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깔끔했고 조용했다. 수리 등 신경 쓸 게 많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금상첨화로 동네에서 비교적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그 집은 곧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혼자 자취할 때는 늘 청소가 뒷전이었다. 지금은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이 제법 익숙해졌다. 방 2개에 화장실 하나. 우리 부부는 텔레비전은 안방 침대 앞으로 가져다 두고, 거실을 서재이자 작업실로 꾸몄다. 집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살게 된 나의 새로운 신혼 동네, 고양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아직은 낯선 도시다. 연고가 없을뿐더러 결혼하기 전까지 살게 되리라고 상상도 해본 적 없다. 그러기에 먼저 왜 하필 고양을 선택했는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 너무 주책맞은 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차라리 거대 담론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 어떨까 싶다.
서울은 이제 20대를 빨아드리고 30대를 내뱉는 도시다. 나 역시 10년 전 대학을 진학하면서 성인이 되자마자 서울로 와 독립했다. 내가 속한 세대 많은 이들에게 서울은 이제 단순히 도시 중 하나가 아니다. 공부 혹은 직장을 이유로 일생의 한 부분은 서울에서 보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고향이 그립지만, 이 불가피함을 이해한다.
일생의 여정은 우리를 정의한다. 우리는 그걸 예전에는 흔히 의례라고 생각했었다. 과거에 관혼상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혹은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우리 세대에게 ‘서울살이’는 그렇게 인생의 한 단계가 된 것만 같다.
하지만 내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 여정이 상경(上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0대부터는 서울에서 벗어나야 하는 원심력이 크게 작용한다. 이러한 인구 변화로 서울시 인구가 과거 1,000만 명을 최대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인구 천만 서울은 우리 시대의 독특한 현상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유출된 30대 이상 인구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배후 지역으로 재배치된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부동산 가격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결혼하면서 내가 경기도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혼자 살 때는 몰랐다. 가족을 이루기에 서울은 비좁다.
물론 집값이라는 원심력과 일자리라는 구심력 사이, 경기도 30대의 삶이 무조건 일반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다른 길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내 고향 친구들까지 점차 서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개인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최적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남들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 것 같다.
이상이 내 신혼 동네로 고양을 택한 사회·문화·경제적인 이유다. 객관적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고양을 선택한 것은 그뿐만은 아니다. 내 주관적인 마음 역시 작용했다. 고양을 살아봄 직한 도시라고 느꼈다. 이 느낌은 지금 와서 반추해보니,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에서 기원한 것 같다.
2. 고양과의 첫 만남
사람도 도시도 마찬가지겠지만, 첫인상에 따라 좌우한다. 첫인상은 최초의 분위기다. 내가 기억하는 고양의 첫 모습은 일산호수공원이다. 물론 일산호수공원이 도시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그러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일산호수공원을 처음 방문한 것은 대학생 때였다. 군대도 다녀오기 전이니 많이 어렸다. 아마도 외출 목적은 데이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 서울 근교까지 나갈 이유는 많지 않았으니까. 신도시 특유의 가지런함과 산책할 자연이 가까이 있단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호수공원을 끼고 있는 또 다른 신도시에 정착한 어느 분이 “원래 신도시는 그냥 호수 하나 믿고 사는 거지.”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이지만,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호수와 신도시는 어떤 관계기에 그런 믿음을 주는 걸까?
일산호수공원은 한국에 지금의 정형화 된 도시계획을 유행시킨 첫 사례라고 한다. 물이 없던 곳에 인공으로 수로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공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호수를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이 감싼다. 지금도 새로 만들어진 도시들을 가보면 이런 규칙을 따른다.
최초로 이런 구상이 구체화 되던 시절, 그러니까 1기 신도시가 지어질 무렵이었을 것이다. 일산호수공원의 벤치마크가 된 것은 중국 서호(西湖)라고 한다. 서호는 옛 문인들이 사랑해서 남아있는 시가 많다. 어쩌면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 이렇게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평생 지금까지 살았던 도시들을 정리하는 글에서 “풍족한 물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행위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라고 썼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집착하는 것들이 물을 바라보면 덧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에, 물은 편안함을 준다. 그런 관점이 올바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 역시 이런 정경에 끌린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일산호수공원이 보이는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날씨가 오랜만에 풀려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핸드드립 커피와 주전부리를 주문했다. 원두는 에티오피아다. 흔한 취향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는 과일 향이 강한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지금 내가 결국 살게 된 집은 일산 호수공원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상황은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운전하고 와 산책로를 걷고 주변 가게들도 들릴 수 있게 되었다. 첫 방문 했던 대학생 시절과는 달라진 점이다.
3. 에세이를 시작하기
글을 새로이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의심이 같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스스로 되묻게 된다. 과연 내가 쓸 글은 그럴 가치가 있는 글일까? 아직 쓰기 전이기 때문에 포기해버릴까 하는 유혹도 가장 강하다. 여기서 절차탁마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데 아직 늘 어렵다.
어느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고 감명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그렇게 어느 후기를 보게 되었는데, 그 후기는 작가의 신변잡기로 이루어진 글이 무슨 가치를 갖는지 의문을 던졌다.
소셜미디어의 시대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그런데 거기에 새로운 글이 추가되야 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유명 작가의 에세이는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된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잡담이 작가의 유명세를 이유로 읽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 책을 내기 위한 출판사의 기획에 맞춘 글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그 에세이의 후기가 짚은 부분이다. 처음 그 후기를 읽고 꽤 오래 생각했다. 우습지만 며칠 동안 내 화두로 남았다.
이 글은 에세이다. 더구나 지금 나는 유명 작가도 아니다. 이 글이 개인적인 이야기의 나열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재잘재잘 떠드는 친구 같은 맛이 없는 글은 읽을 재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이 글쓰기는 사적인 작업이다.
이 글은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의 내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들을 글로 담으려고 한다. 이제 막 결혼 생활을 시작한 30대 초반의 나를 다룰 계획이다. 그렇기에 이는 일종의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이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상상들까지도 쓰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동시에 낯선 신혼 동네에 대한 여행기를 쓸 계획이기도 하다. 새롭게 살게 된 도시, 고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핑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멋진 해외여행을 하지 않아도 여행기를 쓰는 게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장소들까지도 글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관광지보다는 그저 내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을 위주로 다루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박물관이나 갤러리보다는 내가 주말에 들리는 카페나 쇼핑몰들이 대상이다. 일상에 가까울수록 다룰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이제는 기획이다. 각각의 편에서 고양의 어느 장소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적는 형식은 어떨까? 예를 들어 <일산 호수공원: 시작하기>처럼 말이다.
여기까지 오니 글 제목이 가장 고민이다. 늘 무엇이든 제목 정하는 일이 제일 쉽지 않다. 결국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낸 제목은 <고양시 전입신고서>였다. 제목은 무엇보다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뻔한 제목은 피했다. 동시에 고양이란 동네에 관한 글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새롭게 살게 된 동네를 다룬다는 점에서 설레기도 한다. 그 첫 번째가 일산호수공원이라는 점에서는 나름 머리를 썼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고양과의 관계를 시작한 곳이기에 이 글을 시작하기에 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