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추억

by 힙합스텝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감독: 봉준호

200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살인의 추억>. http://t1.daumcdn.net/cfile/130D7C10AD6789CD2C


영화 <살인의 추억>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11110210A7D5D4C9D1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살인의 추억>. http://t1.daumcdn.net/cfile/11110210A7D5D4C9D1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의 개봉을 앞두고 밴쿠버 VIFF 센터에서 봉준호 회고전을 했다. 오래전부터 리스트에만 모셔두고 보지 못했던 <살인의 추억>을 보고 왔다. 정녕 이것이 20년 전의 영화란 말인가. 진정 이것이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란 말인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20년 전의 영화와 오늘날의 현실이 겹쳐 보이는 건 슬프고도 불쾌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 영화 속에 그려진 군부독재 시대의 대한민국은 얼마 전 한국에서 재현될 뻔했다. 비록 몇 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해제되었지만 후유증은 심각하다. 발 빠르게 대처한 야당과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보며 우리는 안도와 위로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앞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현상이 아니다. 진화나 진보, 개혁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똑같은 현상이 시간이 흘러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군인들이 미적거리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이번에도 역시 출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 화염병이던 것이 오늘날에 응원봉이 된 것뿐이다. 진정 우리가 과거로부터 앞으로 나아간 것이라면 2024년도에 불법 비상계엄이 발동되는 일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됐다. 시민들이 추운 겨울에 말도 안 되는 문제로 말미암아 길거리로 나서는 일이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군경의 수뇌부들은 80년대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결정했다. 계엄의 결과가 어찌 되었건, 그들은 모였고, 작당했고, 실행했고, 이번엔 실패했다. 현상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이 모든 현상 아래 숨은 구조는 같았다.

116F1B10AB02477DF2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살인의 추억>. http://t1.daumcdn.net/cfile/116F1B10AB02477DF2

<살인의 추억>에서 두만과 용구는 직감과 무속에 기대어 수사를 한다. 논리나 이성, 과학 따위는 없다. 윤석열은 대선 토론 때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왔다.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윤석열은 유독 무속과 관련된 문제가 많았다. 영화 <더 킹>에서는 검사들이 굿판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또한 검사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비이성에 기대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하기 전에, 우리는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온 사람도 그런 비이성에 기댈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학력과 무속을 믿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학력은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학력은 그저 대입표준시험에서 성적을 잘 받은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살인의 추억>에서 두만은 시종일관 무식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 번은 예리한 관찰과 직감을 발휘하기도 하고, 태윤은 이성과 논리를 동반한 수사를 지향하지만, 결국엔 그 이성을 놓아버리기 직전까지 간다.

116F1B10AB023D19EB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살인의 추억>. http://t1.daumcdn.net/cfile/116F1B10AB023D19EB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용구가 결국 파상풍으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무고하게 잡아온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밟고 짓이겨서 결국 거짓 자백을 받아내게 했던 자신의 그 튼튼한 한쪽 다리를 말이다. 오랜 시간 그런 식으로 형사 일을 해오던 그는 다리가 절단된 후 한동안 방황했을 것이다. 타인을 짓밟는 데 쓰였던 다리가 곧 형사로서의 그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거세처럼 느껴진다. 용구의 다리 절단은 징벌적 거세다. 폭력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세상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그릇되고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거세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기도 하다. 폭력으로 변질되어 대단히 위험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공권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는 이래저래 좀 맞으면서 크는 편이 좋다고 믿는 우리의 이 슬픈 사고방식도 계속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폭력은 어느 순간에도, 그 누구에게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서서히 곪게 하는, 그래서 결국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우리의 어느 한 부분을 아프고, 힘들고, 어렵지만 도려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 말이다.

126F1B10AB0242C0EF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살인의 추억>. http://t1.daumcdn.net/cfile/126F1B10AB0242C0EF

철저하게 집도해야 한다. 그리고 구조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계엄을 겪으며, 2024년의 계엄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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