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HAPPYEND)
감독: 네오 소라
2024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영화사 진진. https://litt.ly/jinjin_pictures?fbclid=PAZXh0bgNhZW0CMTEAAaeAA6xwQGf0AsnTaju6AzEPi5P-2NVn9iILDlx1jMqkZeI_EL9mV8x6uoKM4A_aem_q1XHeUZGpU7wTLEn5m_TpQ
영화 <해피엔드>를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혁을 외치는 것만이 저항은 아니다. 때로는 나 자신을 지키며 묵묵히 서 있는 것도 용기 있는 저항이다. 영화 <해피엔드>는 서로 다른 저항의 질감과 형태를 보여준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저항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 지진의 공포와 공권력의 감시가 일상이 된 그곳에서, 코우는 분노하기 시작하고 유타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날이 갈수록 망가지는 사회를 향해 울부짖는 사람. 압박과 통제, 그리고 외로움을 견디며 나의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
코우의 분노가 외부로 뻗어나가는 반면 유타의 분노는 내면으로 흐른다. 코우는 시위대와 연대하여 무리의 일원이 된다. 유타는 세상이 엉망일수록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한 사람이다. 코우는 유타를 동굴 밖으로 꺼내려 하지만 실패하고 유타에게 생각 없이 굴지 말라며 소리친다. 유타는 당황스럽다. 악을 쓰며 거리를 휘젓는 그들이 여태껏 바꿔낸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코우는 유타에게 생각 없이 산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는 다만 코우와는 다른 결론에 다다른 것뿐이다. 크리스타 K 토마슨은 자신의 저서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람들이 불의한 일을 볼 때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그들이 불의에 관심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지만, 분노만이 관심을 갖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부당하게 압수당한 엠프를 되찾아 다시 디제잉을 하려 고군분투하는 것이 불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코우는 불의에 대항하는 일에 너무도 몰입한 나머지 인간성을 잃을 뻔할 위기에 종종 처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고 정의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비상시국에 시위를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고, 디제잉을 하러 놀러 가는 것은 생각이 없는 짓이다. 이런 생각은 선민의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애초에 유타와 어울릴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이 아니라,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 만났더라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의롭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긴 시간 자신에게 의로웠던 친구를 순식간에 외롭게 한다.
유타는 생각이 없지 않다.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강당에서의 '그' 일도, 해피'엔드'도 결국 유타에 의해 결정되었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쉬이 할 수 없는 삶의 결정이다. 코우는 코우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서로의 위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유타는 판단했을 것이다. 서로 불편한 상태로 애매모호하게 섞여 있다가는 좋았던 과거의 기억마저 몽땅 더럽혀질지도 모르니까. 유타는 코우의 변화를 깊이 존중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는 길을 선택하며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 앞으로 유타는 더 외로워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우와 함께 더 많은 계절을 보낸다 해도, 외롭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랑하기에 이별한다고 했던가. 유타가 정말로 그랬다.
hiphop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