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파리. 스타 드 프랑스 국립경기장. BTS 콘서트에 갔다. 스페인 교환학생을 갔을 때 현지인 친구가 구해다 준 티켓이었다. 케이팝 아티스트의 프랑스 공연 티켓을 스페인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구해다 준 것부터 우선 묘하다. 나의 케이팝 사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oA의 음악이 어디에서나 흘러나왔고 누구나 따라 불렀다. 초등학생 3학년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공책에 가사를 따라 적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요즘에도 케이팝을 듣지만 가사가 온전히 떠오르는 음악들은 죄다 그 시절의 것들이다. 뒤이어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이 데뷔하며 나는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유가 되기 이전의 아이유를 나는 기억한다. 어느 날, 그녀가 이번에 대단한 곡으로 컴백했다며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었고, MP3인지 PMP인지, 아무튼 스마트 기기는 아니었던 그 기기에 두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귀를 기울이며 하굣길에 그녀의 신곡을 들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게 바로 <좋은 날>이었다. 나는 케이팝과 좋은 날들을 보냈다.
2019년의 파리. 그 큰 스타디움에서 내 자리는 맨 뒷 좌석이었다. 소위 아티스트들이 면봉으로 보인다는 그 맨 뒷자리. BTS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전광판에서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바로 그 맨 뒷자리. 내 주변에는 온통 프랑스 사람들이었는데 부모와 함께 온 어린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은 케이팝을 즐겼다. 콘서트 전과 후로 아주 열광적으로 즐겼다. 나만큼이나, 십 수년을 케이팝의 본고장에서, 케이팝에 파묻혀 살아온 나만큼이나 BTS의 음악을 즐겼다. 그들은 떼창을 했다. 외국어를 설렁설렁 흥얼거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글 가사를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외쳤다. 떼창 자체가 한국 문화는 아니지만 떼창과 응원법은 케이팝 문화에 주요하게 내재되어 있으면서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스타디움에 입장할 때 아미로 보이는 두 프랑스인이 종이로 출력한 플래카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공연 막바지에 BTS 멤버들에게 깜짝 팬 이벤트 같은 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플래카드와 응원봉. 팬덤의 결집과 단합. 떼창을 하며 응원법을 외치는 케이팝 문화의 일련의 시스템과 규칙 같은 것들이 넘실넘실 대륙을 넘어온 것이다. 한글과 함께, 음악과 함께.
2019년의 파리. 고작 며칠 간의 여행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파리에서 봤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다고 아주 난리가 난 터라 내가 있었던 극장에 빈자리가 없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나는 아주 기묘한 경험을 했다. 관객들이 늘 나보다 반 박자 늦게 웃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 영화가 외국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보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게 더 좋았다.
매기 강 감독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제98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2관왕을 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예견된 수상에 놀랍지 않았다.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2019년 파리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케이팝 문화에 대한 감각. 그것이 수년의 시간이 지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간 케이팝만 수출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과 다른 것도 함께 나눈 것이다. 케이팝을 즐기고 사랑하는 방식. 케이팝의 팬덤 문화와 시스템. 케이팝의 의미. 케이팝의 가사. 케이팝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정.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한글. 공책에 꾸깃꾸깃 BoA의 노랫말을 쓰며 외던 유년시절 나의 마음이 응원봉을 흔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해맑은 미소로 넘실넘실 넘어왔다.
hiphop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