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남성에 의한 남성혐오

by 힙합스텝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감독: 필립 바란티니 (Philip Barantini)

2025년 공개


커버 이미지 출처: Netflix Tudum.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adolescence-cast-release-date-photos-news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을 리뷰한 글입니다.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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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가 아니다. 남성 혐오다. 남성에 의한 남성 혐오. 자기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 남성은 때때로 그 분노의 화살을 여성에게로 돌린다. 그 결과로 일어나는 범죄는 '여성 혐오'라는 이름을 달고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남성 혐오다. 남자답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기혐오이자 남성혐오. 그들은 못나고 구차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한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은 과잉 행동을 낳는다. 물리적 힘이나 재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약한 내면을 애써 포장하려 시도한다. 자신을 향한 피드백은 모두 공격이다.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남이 내 안의 퀴퀴한 열등감을 눈치챘을까 봐 무서운 것이다. 그 순간 주먹과 발길질이 나간다. 대화보다 몸이 앞선다. <소년의 시간>에서는 안타깝게도 흉기가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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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소년 제이미에게서도 자기혐오의 확실한 징후들이 보인다. 여자들이 자신에게 끌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평가한다. 임상심리사가 그 지점을 파고들자 제이미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제이미는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자아상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는 의자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눈여겨볼 지점은 제이미는 임상심리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임상심리사에게 자꾸만 노트를 보여달라고 한다.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가기 직전까지 판사한테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자신을 좋아하기는 하는지 캐묻는다. 아빠에게는 내가 괜찮다고 말해달라며 고함을 지른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행동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짓을 하든 결국에 남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이는 결코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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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시리즈에 나타난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보면,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남성성 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하고 추상적인 '남성성' 말이다. 이 무형의 가치를 획득해 또래 남성 집단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이 제이미와 그의 친구들의 목표였을 것이다. 제이미는 아버지에게도 ‘좋은 아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꽤 쓸모 있고 남성적인 아들로서 말이다. 제이미의 아버지는 자신이 과거에 겪은 가정 폭력을 제이미에게는 결코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은 더 나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아들의 모습을 은연중에 제이미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운동이라고는 팔자에도 없는 제이미를 축구부로, 복싱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운동을 통해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길 바랐지만, 제이미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외면했다. 다른 아버지들이 축구를 잘 못하는 제이미를 비웃을 때, 그 역시 똑같이 자신의 아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른 남성들이 남성인 제이미를 무시했다. 남성성이 부족했고 남성성을 획득할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제이미는 그래서 케이티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이 남성성을 획득할 최선의 전략이자 마지막 기회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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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한다. 문제는 남성성 '문화'다. 제이미는 극 중 내내 줄기차게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그저 케이티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케이티는 나쁜 년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행동은 남성성 문화에 젖은 다른 남성들에 의해 더 견고해지고 부추겨졌을 것이다. 폐쇄적인 남성 사회 내부의 문화적 경직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전수된 남성성 문화가 현대사회에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성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여성을 약한 존재로 주저앉힘으로써 자신의 강인함과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는 시도는 그릇된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고함을 지르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또박또박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타인의 나체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과 그것이 불러올 결과를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축구나 복싱, 성경험의 여부 따위가 너희들의 가치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남성이 같은 남성을 혐오하지 않고 그들 내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날 소년은 평온의 시간을 되찾을 것이다. 또 다른 희생자는 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hiphop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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