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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Aug 15. 2023

닫으며: 다정하고 친절한 나의 이웃들에게

영화 그리고 당신 

그 어느 때보다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넘쳐나는 OTT 플랫폼과 콘텐츠의 바닷속에서 영화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오늘은 또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르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적 의식과도 같았던 ‘영화관 영화’의 본질적 특성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는 스크린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한 관객들은 두 시간 남짓한 종교의식에 함께 참여하는 신도들이다. 2차원의 평면 스크린에서 역동적으로 율동하는 모션 픽쳐는 신도들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 동굴 밖 세상으로 나오게 된 그들은 때로는 안도감으로,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슬픔과 연민으로 휩싸인다. 일면식도 없었던 관객들은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부분적으로나마 서로 나눈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을 겪은 인류는 어떻게든 영화관을 지켜냈다. 아주 눈물겨운 사투였다.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바이러스가 근미래에 대규모로 창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오프라인 영화관의 미래를 다시 암울하게 만든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주던 영화관과 영화는 앞으로 또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탄식과 눈물, 웃음과 감동을 공유하게 하며 옆자리에 앉은 익명의 타인을 같은 날, 같은 영화를 본 나의 이웃으로 바꾸어주던 우리네 영화관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도 식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철 지난 캐치프레이즈 같은 이 문장은 우리 모두가 세상을 떠나 사라진 그 순간에도 마치 진리처럼 인간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두 동강 나는 한이 있더라도 지구인은 영화를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역사가 되어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닐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는 영화라는 그 '창문'을 공유해 왔다. 때로는 창문 너머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았다고 너무도 열렬히 주장하는 탓에 곤란을 겪게 된 적도 있다. 자신이 본 것만이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심지어는 건강하기까지 하다. 사회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끼리도 일단은 말을 건네고 의견을 교환하게 하지 않는가. 영화는 우리 사이를 정말로 잇는다.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 몇 편의 영화를 당신과 함께 읽어보았다. 내가 창문 너머로 본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영화를 향한 사랑을 놓을 수가 없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도 놓지 않을 것이다. 


나의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 영화와 당신.



hiphop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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