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힙합스텝 Sep 06. 2023

대통령이 일을 하지 않을 때, Look Up!

영화 <돈 룩 업>에서 일하지 않는 단 한 사람 

돈 룩 업 (Don't Look Up)

감독: 아담 맥케이 (Adam McKay)

2021년 공개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돈 룩 업>.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035


영화 <돈 룩 업>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돈 룩 업>.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035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그냥 일 자체를 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모습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성실함과 능력의 한계를 반영한다.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한데, 능력이 부족해서, 방법을 잘 몰라서, 조언을 해주는 이가 곁에 없어서, 타고나기를 성실하지 못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신념과 가치관이 서로 달라서 내가 보기에 상대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에 따른 업무를 아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실함을 평가할 수 조차 없다. 자신의 역할 수행으로 인해 생산된 그 어떠한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돈 룩 업>.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035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행성과 인류를 아작 낼 혜성을 찾았다. 과학자인 그들은 천문 관측을 했고, 데이터를 분석했으며, 증거에 기반한 결과를 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같은 계산을 반복했고,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이 중대한 결과를 NASA와 지구방위합동본부에 보고했고,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이 내용을 공유했다. 이것이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해야 하는 일. 몇 개월 뒤에 모든 인간을 쓸어버릴 혜성을 찾아낸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과학자로서 지켜야 할 연구 윤리와 책무, 그들의 본분을 다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돈 룩 업>.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035

이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한 TV 쇼에 출연한다. 그들은 침착하게 자신들이 발견한 혜성과 그 파급력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TV 쇼의 진행자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개월 뒤에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진중한 발언에도 그들은 꿈쩍 않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려고만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진행자들이 한심해 보이겠지만, 한편으로 이들은 그저 과거부터 계속해오던 자신들의 일을 했을 뿐이다. 어떠한 주제든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다루고자 하는 자신들의 프로그램의 콘셉트에 매우 충실하게 말이다. 결국 TV 쇼 진행자들도 일을 하기는 했다.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지 출처: www.netflix.com/tudum/articles/mark-rylance-in-dont-look-up-reminds-us-of-these-billionair

거대 IT기업 배시의 창립자 피터 이셔웰은 어떠한가?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솔직한 견해로는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피터 이셔웰이다.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창출일 것이다. 특히 미국과 같은 극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치밀하고 활발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은 되려 장려된다. 인류의 생존보다 기업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 것에 대해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평가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피터는 대기업 오너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했다. 일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에 주어진 일을 하기는 했다. 

출처: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meryl-streep-improvised-cut-dont-look-up-oval-office-scene

영화 <돈 룩 업>에서 일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대통령 재니 올린이다. 그녀는 영화 내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중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일련의 정치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기업 오너에 불과한 피터 이셔웰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대통령으로서 결정해야 할 일을 피터가 대신 결정하고, 사기업이 정부의 행정을 대신 추진한다. 지구로 돌진하는 혜성을 처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연설을 하지만, 연설하는 것 그 자체가 대통령의 일은 아니다. 연설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프로젝트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인데, 우선 재니의 연설 의도 자체가 그것이 아니었을뿐더러 대통령 연설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했다. 사회는 오히려 분열되었고, 진실은 가려졌으며, 재니 올린은 그 점을 이용하여 선거에 이기려고만 한다. 


그래서 결국 대통령이 거대 혜성으로부터 국민과 세계 시민의 안전을 지켜냈는가? 지켜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생존마저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피터에게 의존했다. 그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스스로 한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특히 '대통령으로서' 응당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역할들을 수행하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혜성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행정력, 국제적 협력이 동원되어야 하므로 당연히 대통령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어 부처 간의 협력과 자금 조달을 이루어내야 한다. 영화 <돈 룩 업>은 문제 해결의 핵심 주체 즉, 대통령이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dont-look-up-could-a-comet-destroy-the-earth

일단 일을 해야 그 일의 결과를 그다음에 우리가 평가할 수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대통령 재니 올린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기 때문에 혜성 충돌로 지구가 박살이 난 결과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매우 불분명해졌다. 희귀 광물을 채취하겠다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은 피터였다. 그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될 로켓과 드론을 설계하라고 지시한 것도 피터였다. 심지어 국민들도 이 프로젝트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을 기대했고, 대통령은 앞장서서 이 기대에 바람을 불었다. 그런데 이것이 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게 프로젝트가 성공만 했다면 미국은 어마어마하게 큰 국익을 얻었을 것이고, 실제로도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피터인가? 로켓과 드론을 설계한 사람인가? 대통령인가?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의회인가? 혜성 충돌의 피해를 좀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민디와 케이트? 초기에 이 문제에 주목하지 못한 언론들? 애초에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대통령이 구심점이 되어 이끌어졌어야 했고, 대통령이 그 책임자로서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대통령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달이 일어났고, 책임은 불분명해졌다.


영화 <돈 룩 업>은 Don't Look Up! 과 Look Up! 의 대결로 극이 전개된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을 숨기기 위해 사람들에게 올려다보지 말 것을 주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든 것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올려다볼 것을 권장한다. 어떠한 일의 명백한 책임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다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공유된 자료와 정보가 불투명하고 미심쩍을 때. 우리는 Look Up! 해야 한다. Look Up은 표면적으로는 올려다본다는 의미이지만, '찾아본다'는 의미도 있다. '본다' 앞에 '찾다'가 선행되어 있다. '보는 것'은 눈을 뜨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찾는 것'은 나의 의지를 우선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의심이 들면 찾아서 봐야 한다. 속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며 진실을 찾아야 한다. 먼저 발견한 뒤에야 우리는 그 진실을 볼 수 있다. 


hiphopstep.

작가의 이전글 엑스오, 키티: 그 성의 없는 서사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