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퀘벡시티 15일 - 여행 준비
8월 6일,
팀이 없어져서 백수가 되었다.
8월 11일,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다.
비행기보다 기차를 좋아한다. 2016년 겨울에 퀘벡에 갈 땐 기차로 몬트리올에 가서 버스로 퀘벡시티로 이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병 환자! 이번엔 퀘벡시티만 가는 거니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기차로는 몬트리올까지도 5시간 정도 걸리고 퀘벡시티까진 3시간이 또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퀘벡시티가 되게 멀다고 느껴졌었다.
현실은 토론토에서 퀘벡시티까지 한 시간 반 비행.
갑자기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여행이 만만하게 느껴졌다.
토론토에는 피어슨공항(인터내셔널)과 토론토 아일랜드 공항이 있다. 뭐, 토론토의 김포공항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다운타운 한복판에 있기도 하고, 페리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해서 이용을 피해왔는데 이번에는 꼼짝없이 이용해야 했다.
항공사는 포터를 이용했다. 팜스프링스와 캘거리를 갈 때 이용했었는데, 만족도가 높았다. 짧은 비행에도 스낵도 주고 음료수도 줬다.
먹을 거 주는 사람 좋은 사람.
먹을 거 주는 항공 좋은 항공.
포터가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사실 에어캐나다에서 몇 번 지연 지옥에 빠진 후 어지간하면 에어캐나다를 피하려고 한다.
567.96불에 퀘벡시티 왕복 비행 티켓을 샀다. 원래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은 아니라서 제일 싼 등급으로 구입했다.
다음은 숙소였다. 퀘벡도 캐나다니 뭐 특별한 음식은 없을 것 같고, 백수니까 식비를 줄여보자라는 생각으로 에어비앤비를 골랐다. 2016년도에 퀘벡 여행을 갔을 때 핫도그빵과 계란을 사서 계란샐러드빵만 주구장창 먹으며 식비를 아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그럴 심산이었다.
올드 퀘벡은 성수기라 가성비 좋은 곳들은 이미 없었고, 예약 가능한 곳들은 너무 비쌌다. 찾아보다 에어비앤비 숙소들이 많은 지역인 Saint-Roch(생록) 끄트머리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하루 150달러 꼴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단점 중 하나는 1인이나 2인 숙소 가격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2인으로 예약을 한다.
총 2484.43달러였다. 내 한 달 렌트비의 두 배다.
(며칠 후 확인을 했을 땐, 숙소들이 거의 예약이 다 찬 상태였다. 이렇게라도 예약한 게 다행.)
마음이 불편해졌다.
"15일은 역시 오버인가. 어차피 이틀이면 다 볼 텐데… 가서 할 것도 없을 텐데…"
라는 내 안의 속삭임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비행기를 제일 싼 등급으로 이미 사서 예약 바꾸려면 또 돈을 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래, 한국으로 돌아가면 비행기 값만 300이야. 지금이 제일 싸다.
초심을 다잡으며, 엄청나게 불편한 마음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아… 가서 근데 뭐 하지? 관광지를 다 돌고 지루해지면 뭐 하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써야겠다”
비행기와 숙소를 해결하고 나니, 문득 가서 할 게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 현지인처럼 산다며?
그럼 그냥 내 삶을 그곳에서 살아가면 되는데, 진짜 이상한 마음이다.
그러다 문득 마라톤 대회는 가을에 많이 열린다는 게 생각이 났다.
2025년 10월 4일~5일 퀘벡시티 마라톤.
표는 이미 예전에 다 팔리고 없었다. 백만 년 만에 페이스북 퀘벡마라톤 그룹에 가입을 하고 10K 양도표를 구했다. 표를 양도하려는 사람에게서 불어로 메시지가 왔다. 번역기를 사용해서 내 이메일을 넘기고 캐나다 마라톤 공식 예매 사이트에서 양도를 진행했다.
8월 12일,
마라톤 참가비 117.37불
이틀 만에 약 3200불 (한화로 300만원)이 통장에서 나갔다.
(캐나다로 온 후로 할부는 안 하고 체크카드를 쓴다.)
괜찮다.
이제 큰돈 나갈 일은 없으니
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
마라톤을 신청하고 나니, 여행에 대한 설렘이 시작되었다. 퀘벡시티에서의 달리기라니!
9월 28일 일요일,
금토 나이아가라에 다녀온 후 피로감이 심해졌다. 최근 많이 걷고, 뛰고 하체운동도 해서 피곤이 쌓였는지 다리가 무거웠다. 최근 호르몬이 불균형해졌는지 생리 열흘이나 하고 밤낮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그동안 10K는 무리 없이 완주해서, 퀘벡에서 완주를 못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걱정을 뒤로하고 일단 짐부터 좀 챙기려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평소에 신을 운동화도 필요하고, 조깅할 때 신을 신발도 필요하고, 가을철이라 일교차도 크고 날씨도 제멋대로라 반팔부터 긴팔, 코트까지 챙겨야 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캐리온 짐에 다 넣을 수가 없었다.
... 그렇게 101불을 수하물 추가에 썼다.
이 모든 짐을 넣고도 캐리어 자리가 남는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서 짐을 내일 싸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9월 29일 월요일,
짐 들고 다니는 걸 너무 싫어해서 늘 짐을 줄여서 다녔다. 그래서 늘 짐을 쌀 때 엄청 고민을 하며 쌌다. 큰 가방을 가져가니, 고민을 안 해도 되었다.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이래서 내 친구 땡땡이가 맨날 짐을 바리바리 싸는구나 이해가 갔다.
기내용 가방에 넣을 짐을 수하물 캐리어에 넣으니 자리가 넉넉했다. 요가링도 넣고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도 넣었다.
나이아가라 이동할 때 화장실 때문에 몇 시간 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직 데미지가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하지만 얼마 전 다시 정주행 한 도깨비 마지막화를 보며 여행을 위한 마음을 준비했다.
작은 가방에서 큰 가방으로 결정을 한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무언가를 덜어내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생각을 비우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
욕심을 버리는 것
배에 있는 지방을 버리는 것
채우는 것과는 다르지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쓰는 이 긴 글을 짧게 줄이는 것도…
노영심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왠지 해도 해도 내 맘 알아줄 것 같지 않아서
자꾸 겹겹이 칠하다 덧나기만 하는 상처
차라리 그것보단 모자란 게 나아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이 말”
메인 사진은 도깨비 언덕에서 필름 카메라 contax T2, 코닥 골드 필름으로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