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 토론토 아파트 렌트 계약 해지 통보

10년의 세월이 5분 만에 정리되다.

by Hiraeth

2015년 10월 말에 토론토에 와서 홈스테이를 했다.

은행을 다니는 흑인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었다.


1층은 부엌과 식탁이 있고, 2층은 집주인, 그리고 난 지하를 혼자 썼다.

내가 유일한 홈메이트였다.


아침과 저녁 제공이었는데, 아침은 빵과 잼뿐이었고 저녁은 마트에서 파는 도시락이었다. 그렇게 그 당시에 850불이나 내고 홈스테이를 했지만, 영어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곳에서 나는 매일 밖으로 밀려났다.


집주인은 본인이 일하는 시간에 나도 나가있기를 원했다.

일찍 들어가는 날엔 어김없이 눈치가 보였다.

그녀는 핸드폰 알람을 통해 출입을 설정해 놨고,

나는 그녀 퇴근 시간 전에 집에 들어가게 되면 항상 문자를 보내야 했다.


어학원은 11월부터 시작이라 아직 친구도 없는데, 내가 간 첫날부터 나가있으라고 얼마나 압박을 하던지..

혼자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추우면 도서관이나 팀홀튼에 가서 죽치고 있었다.


00_도서관.jpg 홈스테이 집 근처 도서관에서


홈스테이.png 홈스테이 하던 방에서


그 당시 적은 돈을 내는 것도 아닌데 여러모로 이점이 하나도 없었다.

2주 정도 지났을 때부터 서둘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혼자 살면 좋겠지만, 수입이 없으니 셰어 아파트 들도 돌아다니면서 집을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느끼던 중,

캐스모(한국인 카페)에 아파트 유닛 하나가 올라왔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집을 보러 갈 예정이어서 두 개 다 예약을 하고 집을 보러 갔다.

하나는 980불에 스튜디오 형식(우리나라 원룸)이었고,

다른 하나는 1020불에 원베드(거실, 방 분리) 형태였다.

심지어 작은 창고와 부엌이 따로 있었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이 아파트에는 양도 정책이 있었다. 기존에 살 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서 집 계약을 넘기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레노베이션(기껏해야 페이트질 같은)을 안 하지만, 이전 세입자와 같은 가격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전 세입자도 양도받아 5년을 살았던 거라서 스튜디오와 원베드 유닛의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상태였다.


어차피 거실과 방이 분리되어 있으니, 돈이 모자라면 차라리 내가 룸메이트를 찾는 게 낫겠다 싶어서 원베드 유닛을 선택하여 계약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토론토에 와서 했던 수많은 결정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다.

이 집 덕분에 내가 10년을 토론토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정책상 일 년에 렌트비를 2 프로정도까지 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에 비해 10년간 토론토 렌트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현재 내가 지불하는 1220불로는 콘도 마스터룸이나 지하 정도를 구할 수 있을듯싶다.


이 집을 구한 후, 초기에 몇 개월 정도는 집을 구하던 어학원 친구 두 명과 같이 살았다.

학원에서 만난 언니와 일 년 넘게 이 집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7년 조금 넘게 혼자 살고 있다.


지하철과 공항열차도 가깝고,

큰 공원과 호수도 가깝고,

바로 옆에 두 개의 큰 마트가 있어 뚜벅이인 나에게는 더 할나위 없는 완벽한 위치다.


지금은 멀리 이사 갔지만, 어학원 다닐 적 가장 친하던 캐네디언 친구도 가까워서 더 친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가장 친한 한국인 언니와 같은 동네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집순이인 나에게는 물리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아주 딱 좋다.


이 집에 살면서 진짜 독립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나도 많이 변했다.


서울에서 자취할 땐 침대하나 넣으면 꽉 차는 작은 원룸이었다. 그땐 내 취향대로 꾸미고 산다는 생각을 못하고 그냥 살았다. 엄마가 보내주는 이불을 덮고, 엄마가 홈쇼핑에서 산 물건들을 가끔 나눔 받으며 그냥 살았다.


이 집에선 이것저것 작은 것들을 바꿔가며 지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불 하나, 쿠션 하나, 액자, 조명 등 새로 구입할 때마다 내 취향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곳의 대부분의 가구들이 전 세입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산 것들이 거나 이사 가는 다른 유닛에서 나눔 받아온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내 색을 차차 입혀왔다. 서울 살 때 고민해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collage.png 점점 변해가는 거실


토론토를 떠난다는 것은,

이 집을 떠나는 것이다.


이사오자마자 3일 내내 구석구석 청소 했던 집.

스무 명이나 불러서 파티를 했던 집.

여러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집.

조금씩 내 취향이 묻어 난 집.

진정으로 독립했다고 말할 수 있던 집.


나와 함께 토론토의 모든 시간을 버텨낸 집.


아파트 오피스에 가서 렌트 종료를 통보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나의 10년이 5분 만에 정리되었다.


일이 쉽게 처리되어 골치 아프지 않아 감사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살면서 많은 것들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이별을 해왔지만,

.. 생소하다.


IMG_8490.JPG



* 메인 사진은 알록달록한 아파트 사람들의 삶입니다.

* 마지막 사진은 예전에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좋아서 찍은 부분입니다. 지금 제 마음과 같아서 넣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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