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빛을 수집한 사람들>_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가족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미국의 금융가 리먼이 수집한 회화와 드로잉 81점을 선보이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미술 사조라고 하는 인상주의 학파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의 작품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마네, 르누아르, 피에르 오귀스트, 루소, 고흐, 쥘 뒤프레 등의 작가가 그린 빛과 색채의 세계는 총 5부, ‘몸, 초상과 개성, 자연, 도시와 전원, 물결’이란 주제를 따라 감상할 수 있게끔 기획되었다.
미술에 관심이 조금 있는 아들은 입장하자마자 도슨트를 따라갔고(엄청난 인파), 딸 둘은 대여한 오디오 설명을 들으며, 남편과 나는 혼자인 듯 함께인 듯 그렇게 자기 속도대로 감상을 즐겼는데 이것이 우리 가족이 체득한, ‘함께 걸어가는 법’이다. 강요하지 않고, 본인 끌리는 대로~~ 단! 하나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조건만 충실히 지킨다면 말이다. 어렵지 않은 그 단순한 임무는 ‘내 마음에 와닿은 작품 발견해 오기’. 이 미션만 완수하면, 마지막 주자가 관람을 마치기까지 재촉하지 않고, 알아서 쉬면서 기다려야 한다.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교과서였는지, TV에서였는지 정확히 어디에서 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익숙한 그림들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 본 작품들, 이름조차 알지 못한 생소한 작가의 그림들도 많았다. 작가들의 표현 솜씨에 감탄하거나, 관심 가는 작품이 보이면 그림 옆에 나란히 걸린 작품 해설을 읽기도 하고, 겅중겅중 건너뛰기도 하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걸어갔다.
딸 둘이 사진을 찍으며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작품은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이었다. 르누아르의 작품이다. 전시실에는 그의 그림이 제법 많았는데 ‘르누아르’라고 발음할 때의 느낌처럼 작품의 분위기가 아름답고 우아하다. 사랑스러운 소녀들의 즐거운 한때, 뽀얀 얼굴에 발그레한 뺨,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악보를 바라보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작품의 자태가 놀라웠다. 참 이상적인 자매들의 모습이로군!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한 상태로 지나갔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 4, 5부 전시에 갔을 때 왠지 모르게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과 바다, 항구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특히 르누아르가 정원에 앉아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에서 꽤 오래 머물렀다.
여성을 아름답게 그리기로 유명한 그였다. 전성기를 한참 지난 이 늙은 화가는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붉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올려 묶은 부인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느낌 가는 대로 채색하였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지나, 프랑스 정부의 인정을 받는 국민 화가로 명성을 얻고,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그가 인생의 말년에 그린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 전시실에 걸린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중에도 죽기 몇 년 전에 그린 그림들이 유독 많았다. 정교하진 않지만 쉼과 여유가 있고, 여백이 많은 그 특유의 편안함에 내 마음이 끌렸다. 결점 없이 완벽해 누구나 감탄하게 되는 명작이 아니라, 조그만 캔버스에 느낌 가는 대로 소박하게 그린 그림들. 그 안에는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의 인정과 열광, 화가로서의 명성, 그리고 지나온 세월의 무게로부터 한 발 물러나, 비로소 삶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이의 시선, 많은 것을 내려놓은 자의 여유처럼 느껴졌다.
화성시에서 서울 전시회장을 가고, 남산 타워 구경을 하다가 수원 친정집에 가는 하루 코스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작은 다툼도 있었고, 너무 다른 취향과 필요가 부딪히는 순간도 있었으며, 화가 나서 아이를 다그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다섯은 모두 노력했고, 말을 건넸고, 자기를 조금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차를 마시며 자신의 카메라에 담긴 ‘최고의 그림’을 보여주며 소감을 나누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면 박수를 쳐주는 식구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귀하고 고맙다.
La douleur passe la beaute reste.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르누아르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의 생이 어땠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말한 고통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저 문장을 나의 삶에 포개어본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 마음에 와닿은 작품’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간직하기를 바라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통과하여 영광의 무거운 것들을 남기는 삶을 살기를 말이다. 나이 든 화가들의 그림에 끌리는 나도 위 문장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죽기 전에 저런 비슷한 말 한마디쯤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