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배짱

파랑새처럼 비상하기

by 히로

자기 돌봄 이벤트

나는 커피 마니아다. 커피의 향과 맛도 좋지만, 예쁜 찻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그 시간 자체를 특별하게 여긴다. 날이 갈수록 바빠지는 일상 중에서 잠깐 멈추는 시간,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복직을 해서 나의 교실과 나의 책상이 다시 주어지자, 2024년부터 자신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시작했다.

매년 생일에 특별한 찻잔 들이기

그 해를 시작하는 나의 마음, 특별한 의미를 담은 컵을 매년 새롭게 들이기로 했다. 일 년간 사용하여 찻장에 잘 보관해 놓았다가,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집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따스한 차 한잔을 내놓으면 좋겠다 싶었다. 훗날 손주들에게 늙은 할미의 스토리를 들려줄 때 잔에 담긴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

마침 둘째 딸이 선물을 사려고 거금을 모아 놓았다고 하여, 예전부터 백화점 카페 진열대에서 보고 눈독 들이던 찻잔을 ‘네가 사라’고 하였고, 그 컵이 자기 돌봄 이벤트의 시작이 되었다.


Feelconomy

‘필코노미’는 소비자가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제 흐름을 말한다. 감정을 뜻하는 ‘필(feel)’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주요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제시됐다고 한다. 그 해를 시작하는 나의 마음과 감정을 살펴 컵을 구매하던 나는 일찍부터 필코노미를 실천하고 있었던 셈!!


슬픈 감정을 안고

2025년 생일. 정말 슬픈 날로 기억한다. 45년 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고, 너무도 생생한 기억이라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나의 눈에 확 들어오는 컵이 있었다. 선명한 초록색과 강열한 무늬, 짙은 호랑나비 그림. 올해는 부디 무탈하길 바라며,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있겠나, 이젠 좋은 일만 있겠지’하며 집으로 데려왔다. 되짚어 보니, 속상한 일은 그 이후로도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였다. 작년은 신앙 안에서 나의 삶을 일으켜 세우던 해였고, 나의 마음은 훨씬 강하고 담대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컵이 눈에 들어올까

1월 생일은 너무 바빠 2월이 되어서야 백화점에 갈 수 있었다. 지인들과의 약속이 있었는데 1시간 일찍 도착하여 그릇 코너를 구경했다. 이번엔 강렬한 디자인의 컵들이 웬일인지 촌스러워 보였고, ‘아~ 좀 은은한 컵을 찾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봐도 맘에 드는 찻잔이 없어서 늘 가던 그릇 가게로 향했다. 역시나 쨍한 느낌의 찻잔들이 쫙 진열되어 있었다. 그들 사이에 딱! 맘에 드는 컵을 드디어 발견했다. 은 테두리 장식에 겨울 눈밭에 서 있는 것 같은 나무 한 그루.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올해의 컵은 너다!! 작년에 집필했던 책의 출발도 ‘나무’였기 때문에 의미도 컸다. 겨울 한정판이라는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찻잔 두 세트를 예쁘게 포장해 달라고 하였다.

“올해는 좀 편안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교회 사모님께 연초에 이런 말씀을 드렸다. 작년 지독한 교회 문제를 통과한 사모님은 큰 한숨을 내쉰 후 웃으며 “아이고, 그럴 수 있을까요?”라고 답하셨다. 우리가 덕담이라고 흔히 건네는 “맞아요.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거예요.”, “아멘!” 이런 말보다 더욱 내 마음에 진하게 남았다.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최선인 사람들도 있으니까. 내게는 사모님의 말이 “분명히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 힘내서 걸어가 봐요.”라는 다독거림으로 들렸고 그 느낌을 고이 간직했다.


‘무탈한 한 해’의 소망을 잠시 꿈꿔본 것이 무색하게 또 하나의 사건이 간밤에 터졌다. 남편은 갑자기 또 몸살 열감기로 끙끙 앓으며 억지로 잠을 자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걱정하는 얼굴로 뭔가를 감지한 듯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집 정리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베개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또 이런 상황이 왔구나.


겨울나무는 봄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믿음으로 추위를 견딘다.

아픈 남편 대신 책방을 지켜야 해서 혼자 차를 몰고 평택으로 향했다. 찬양을 듣고, 기도를 하니 눈물이 터졌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엉엉, 실컷 쏟아냈다. 컵에 그려진 나무 생각이 났다. 겨울 눈 밭에 서 있는 나무. 외로워 보이거나 하나도 빈약해 보이지 않는 늠름한 나무, 나무는 매서운 추위에도, 분명히 품고 있다. 봄이 올 거라는 믿음을. 봄을 기다리는 나무가 아니라, 봄이 올 거라는 확신을 가진 나무라고 생각하니, 그 나무가 마치 나 같고, 나도 그렇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고, 사람에게 의지할 수 없는 나만의 십자가를 그렇게 다시 짊어지고 나무처럼 선다.

하나님은 갖가지 것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나의 중심을 알려주시고, 눈밭의 나무처럼 믿음으로 두 발 단단히 지탱하라고 격려하신다. 나는 주님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니까! 넉넉히 이길 것이다.

파랑새의 비상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그녀는 내가 찻잔에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과 응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찻잔을 골랐을 것이다. 찾아보니 이 커피잔의 이름은 ‘블루버드(blue bird)’라고 한다. 파랑새는 하늘의 색을 띤 채, 날개를 펼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가진, 행복과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커피잔에 쓰인 메인 색 블루는 바다와 하늘을 연상케 한다고 브랜드 설명에 친절히 적혀있기까지 하다. 나를 돌보고자 한 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이렇게 나에게 힘을 보탠다.

“그래! 난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아!”

올해는 겨울나무의 배짱으로, 파랑새처럼 비상하리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