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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로 Jun 15. 2023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비결

따스한 공간이 주는 그 포근함

스포일러가 있으니 추후 읽을 계획이 있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라.



어느 때보다 차가운 시기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 정규직은 꿈의 직업이 되어가고, 취준을 포기한 이들도 늘어난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조차 희망이 존재해야 가능하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결국 이들은 실패자 취급을 받고, 끝없는 절망의 늪에 빠진다.


온 힘을 다해 취업에 성공해도 과연 끝일까. 상사, 동기, 후임과 온갖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야근도 비일비재하다. 일이 끝나면 집에서 휴식하기에 바쁘다. 내일 다시 일하기 위해 휴식을 취한다. 혹여나 시간이 남아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고, 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관련 분야 공부를 진행한다. 그 속에 '나'는 없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퇴사자가 늘어나고, 퇴사를 축하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주인공 영주는 객관적으로 성공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기업 정규직을 얻고, 열심히 일해 능력도 인정받았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에 있고, 영주와 마찬가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과 결혼해 자가도 보유하고 있다. 어느 날, 쉴 새 없이 달려온 영주에게 슬럼프가 닥친다. 더 이상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남편과의 이혼 후, 중학교 때부터 꿈꾸던 서점을 열게 된다. 이 서점에 다양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가 된『달러구트 백화점』,『불편한 편의점』,『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비슷한 플롯을 가진다. 현실에 고통받은, 소위 실패자로 취급받는 이들이 모여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백화점, 편의점, 도서관, 서점처럼 공간의 양상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각자 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는 필히 과거의 향수이리라.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친구가 아니더라도, 마음 편이 동네 사람들과 만나 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온라인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위들로는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만의 매력이 존재한다. 익숙한 동네 친구들을 만날 때는 편안함과 친숙함이 몸을 감싼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는 어색하고 낯선 공기가 느껴지지만 이내 공통점을 기어코 찾아내 말의 물꼬를 트게 된다. ‘언어의 온도’는 직접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때에 더 따뜻하다. 만나는 장소의 시끌벅적함, 같이 나누는 술잔의 청량함,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아늑함, 웃음이 터지면서 올라가는 친구들의 눈꼬리.


하지만, 액정에 담긴 언어의 온도는 미지근하거나 차갑다. 0과 1로 이루어진 문자와 익살스럽게 과장된 이모티콘이 전하는 온도는 실제 언어의 온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 경주마처럼, 오직 사회적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일률적으로 달려가는 직선형 구조에서 벗어난다. 경쟁을 위한 경쟁을 멈추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찾아간다. 상처를 피하거나 덮어버리지 말고, 온전히 마주한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경쟁에 치여 묻혀버린 '나'를 구출한다.

 



최근 인생을 게임에 비유한 글을 읽었다. 게임 클리어만이 목적이라면 공략을 보며 최단경로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가성비 있고 최적화된 삶이기에. 하지만 그 방식만이 옳지는 않다.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로도 다녀보고, NPC와 소통하고, 메인 미션이 아닌 서브 미션들을 수행하는 방식도 틀리지 않다.


육성공략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남은 플레이를 즐기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다. 공략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게임은 충분히 재미있다. 삶 또한 마찬가지리라.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적합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이 제시하는 답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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